인공지능 붐에 취하지 마라, ‘빅쇼트’ 버리가 나타났다

2025-12-05

“가끔 거품이 보일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플레이’ 하지 않는 것입니다.” (마이클 버리가 지난10월31일 자신의 X 계정에 남긴 말)

10년 전 화제를 모았던 영화 <빅쇼트>를 기억하십니까.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직전, 이 ‘비극’을 미리 내다보고 역이용해 떼돈을 번 남자가 있었습니다. 영화 <빅쇼트>의 주인공, 의사 겸 투자가 마이클 버리입니다.

그가 돌아왔습니다. 이번 표적은 ‘인공지능(AI) 붐’입니다. 버리는 최근 유료 뉴스레터와 X를 통해 이번 AI 붐이 과열 단계에 있으며 거품 징후가 보인다는 지적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미국만의 얘기일까요.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한국에선 환율이 급등하고 코스피가 반 토막 났으며 기업어음 시장이 얼어붙는 등 금융·실물 경제가 큰 충격을 받은 바 있습니다. 글로벌 거품 붕괴는 남의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의 말을 허투루 듣기 어렵습니다. 오늘은 버리가 무엇을 경고하고 있는지를 살펴봅니다.

■닷컴 버블과 닮았다

버리는 지난 두 달간 일련의 X 게시물·뉴스레터를 통해서 이번 AI붐이 과거 닷컴 버블과 닮아가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그는 미국 IT·통신 기업들의 자본 지출(Capex·설비 투자) 증가율이 1999년~2000년 닷컴 버블 때와 유사하게 치솟았다는 그래프를 제시하고 이렇게 말합니다. “이건 당신이 찾는 차트는 아니겠죠.” 암울한 전망은 못 본 척 하려는 빅테크·금융사들을 비꼬는 말입니다.

AI 관련 기업들이 Capex를 늘리는 이유는 향후 이 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질 것이라는 기대 때문입니다. 데이터센터,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인프라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해도 나중에 더 큰 수익으로 회수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는 거죠.

만약 이런 낙관적 판단이 빗나가 수요보다 공급이 많은 것으로 드러난다면 어떨까요. 버리는 “거품의 핵심 신호는 공급 폭주”라고 말합니다. 대부분 거품이 이런 패턴으로 형성됐다는 거죠. 닷컴 버블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게다가 주가는 Capex 집행 속도를 앞지르고 있습니다. 버리에 따르면, 과거 거품 현상엔 기업들의 Capex이 절반도 이뤄지지 않은 시점에 주식 시장이 정점을 찍는 패턴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 AI 붐에서도 그런 패턴이 보인다는 게 그의 주장입니다. 이러다 ‘공급 과잉’이 확인되는 순간 주가는 폭락할 수 있습니다.

버리는 지금의 AI 붐에 대한 이러한 기본 전망을 토대로 세 기업을 저격하고 있습니다. 엔비디아, 팔란티어, 테슬라입니다. 세 기업의 주가가 지나치게 고평가돼 있다는 게 핵심적 주장입니다.

■엔비디아

엔비디아에 대해 버리가 지적하는 것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닷컴 버블 때 주가가 폭락한 ‘시스코’와 닮았다는 지적입니다. 1990년대 후반에는 인터넷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통신·인터넷망 인프라 수요가 어마어마할 것이라는 전망이 대체적이었습니다. 시스코가 시가총액 1위를 찍었던 이유입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관련 수요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고 전반적으로 공급과잉 상태인 점이 확인됐습니다. 시스코 주가가 80% 폭락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둘째는 엔비디아 GPU와 관련한 ‘회계 착시’ 문제입니다. 버리는 엔비디아 GPU를 사가는 빅테크들이 기존 GPU 감가상각 기간을 인위적으로 부풀리고 있다고 말합니다. 새 GPU를 산다면 기존 GPU 가치는 하락할 것임에도 이를 장부에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만들어진 ‘장부상 이익’으로 다시 엔비디아 GPU를 사고 있습니다. 버리는 나아가, 엔비디아가 거액을 투자한 기업들이 그 자금으로 다시 GPU를 사는 구조까지 겹쳐져 비정상적인 자본순환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는 점도 함께 지적합니다.

셋째는 ‘고점에서의 자사주 매입’을 통한 주가 부양 문제입니다. 엔비디아는 주가가 최고점을 찍고 있던 시기 500억 달러의 자사주 매입을 발표했는데요. 이것은 회삿돈으로 주가를 떠받치는 행위라고 버리는 지적합니다. 정상적인 자사주 매입은 주로 주가가 저평가됐다고 판단될 때 주주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 이뤄집니다. 하지만 엔비디아가 단행한 ‘고평가 시점의 매입’은 주가 방어 목적으로 봐야한다는 거죠.

■테슬라, 팔란티어

버리는 테슬라와 오랜 ‘앙숙’입니다. 과거에도 테슬라에 대해 공매도를 시도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번에 잇따라 내놓은 AI붐 경고에서도 테슬라가 등장합니다. “터무니없이 고평가되어 있다(ridiculously overvalued)”(지난 1일 뉴스레터)는 주장입니다.

버리는 테슬라가 임원들에게 현금 대신 주식을 지급(주식기반보상·SBC)함으로써 매년 3.6%씩 주주 가치를 희석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주식 수가 늘어나니 투자자들이 들고 있던 주식 한 주의 가치는 그만큼 떨어진다는 얘기입니다. 최고경영자인 일론 머스크에 대한 1조 달러 보상안(매출목표 등 달성 때마다 주식 지급)까지 더하면 지분은 더 희석될 것이라고 봅니다.

버리는 그저 테슬라의 도덕적 해이를 지적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그는 주식기반보상(SBC) 처리 방식이 ‘고평가 유지’ 수단으로 쓰이고 있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의 주장을 다소 거칠게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버리가 보기에 테슬라 SBC는 회계에 ‘비용’으로 제대로 반영이 안 되고 있습니다. 만약 제대로 반영된다면 주가순익비율(PER)은 지금보다 더 높게 계산될 것이라는 게 버리의 시각입니다.

그래서 무슨 문제가 생기는 걸까요. 보통 PER이 높으면 ‘성장 잠재력이 높다’ 혹은 ‘주가가 과대평가돼 있다’ 둘 중 하나로 받아들여집니다. 테슬라 PER은 시장이 보기에 심하게 높지는 않은 수준을 유지함으로써 ‘성장 잠재력이 높다’로 해석되고 있다는 겁니다. 즉 SBC가 충분히 비용으로 반영되지 않기 때문에 테슬라 ‘과대평가’가 시장에서 분명히 드러나지 않고 있다는 게 그의 시각입니다.

버리의 팔란티어에 대한 비판 역시 같은 맥락입니다. 그는 팔란티어도 SBC 비중이 높다고 봅니다.

■버리가 맞을까, 틀릴까?

버리는 현재 엔비디아, 팔란티어 주가 하락에 거액을 베팅한 상태입니다. 엔비디아에 대해선 1억8700만달러 규모(약 2700억원·명목가치 기준)의 풋옵션(주가 하락 시 이익)을 보유 중이고 팔란티어에 대해서도 920만달러(1350억원·매수가격 기준)를 들여 풋옵션을 매수했다고 합니다. 테슬라에 대해서는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베팅했는지 공개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버리의 비관론에 대한 세 기업의 대응은 제각각입니다. 엔비디아는 최근 투자자들에게 보낸 비공개 메모를 통해 버리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습니다. 팔란티어는 조금 더 직설적이었는데요. 최고경영자 알렉스 카프는 언론 인터뷰에서 “팔란티어를 공매도하는 것은 완전히 미친 짓”이라고 말했습니다. 버리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풋옵션 보유가 공개된 직후의 발언이라 사실상 그를 비난한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테슬라는 아직 ‘무대응’ 중입니다.

버리가 두 달 전 만든 X 계정의 이름은 ‘사슬에서 벗어난 카산드라(Cassandra Unchained)’입니다. 워런 버핏이 그에게 카산드라라는 별칭을 지어주었다죠. 과연 카산드라 ‘버리’의 예언은 실현될까요? 적어도 AI붐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그의 문제 제기를 지켜볼 가치는 충분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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