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간판급 정보 기관인 국가정보원(국정원)의 시초는 1961년 5·16 군사정변 직후 창설된 중앙정보부(중정)다. 영문 명칭 이니셜인 KCIA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군사정권 지도자인 박정희 장군(훗날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꼽히던 김종필이 초대 부장을 맡은 점만 봐도 중정의 위세를 짐작할 수 있다. 1979년 중정 부장이던 김재규가 박 대통령을 살해한 10·26 사건으로 잠시 위상이 떨어지긴 했다. 하지만 이후 전두환 장군(훗날 대통령)의 신군부를 주축으로 출범한 5공화국에서 문패만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로 바뀌고 그대로 유지되며 무소불위의 권력 기관으로 계속 군림했다.

서울 남산 기슭에 있었던 중정의 부훈(部訓)은 저 유명한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라는 문구다. 미국 역사상 최고의 대통령으로 평가되는 프랭클린 루스벨트(1933년 3월∼1945년 4월 재임)가 백악관 참모진의 노고를 치하하며 사용한 ‘익명의 열정’(passion for anonymity)’이란 표현에서 착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것이 안기부 시절까지 포함해 무려 30년 넘게 쓰였다. 1995년 안기부 청사가 남산에서 내곡동으로 옮긴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가 1998년 김대중(DJ)정부가 출범하며 안기부는 지금의 국정원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동시에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 대신 ‘정보는 국력이다’라는 문구를 새로운 원훈(院訓)으로 채택했다.
2008년 취임한 이명박(MB) 대통령은 ‘정보는 국력이다’라는 원훈이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MB 정부가 탄생시킨 새 원훈이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이다. 그 뒤로도 국정원 원훈은 ‘소리 없는 헌신, 오직 대한민국의 수호와 영광을 위하여’(박근혜정부), ‘국가와 국민을 위한 한없는 충성과 헌신’(문재인정부) 등 정권마다 달라졌다. 윤석열정부 때는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라는 옛 원훈이 깜짝 부활하기도 했다. 지난 6월 이재명 대통령 취임 후 국정원의 원훈은 DJ 정부 때 만들어진 ‘정보는 국력이다’로 되돌아갔다. 원훈 교체에도 국민의 ‘혈세’가 들어갈 텐데, 앞으로 이런 예산 낭비는 제발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조직 이름이 무엇이고 또 원훈이 무엇인지와 무관하게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정보 기관 요원들의 위험한 임무와 그로 인한 희생이다. 오늘날 국정원 중앙 현관에 들어서면 ‘이름 없는 별’로 불리는 조형물이 있다. 거기에 새겨진 은빛 별은 비공개 활동 도중 목숨을 잃은 요원을 뜻한다. 28일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 후 첫 국정원 방문 때 공개된 조형물 사진을 보니 별이 총 21개다. 2024년만 해도 19개였는데 1년 새 2개가 늘었다. 지난해 9월 네팔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국정원 요원 2명이 순직했기 때문인 듯하다. 이 대통령은 국정원 ‘이름 없는 별’ 조형물에 헌화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며 “대한민국의 위상을 만든 조용한 헌신”이라고 적었다. 가슴 한 켠이 숙연해질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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