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인들이 지금 독일어를 쓰고 있지 않은 것은 미국 덕분이다.” 지난 3월 미국 백악관 캐롤라인 레빗 대변인이 출입 기자들과의 문답 도중 내뱉은 말이다. 이는 프랑스 출신 라파엘 글뤽스만 유럽의회 의원이 미 행정부를 겨냥해 “자유의 여신상을 반환하라”고 요구한 것에 대한 반응이었다. 뉴욕의 랜드마크에 해당하는 자유의 여신상은 19세기 말 프랑스가 미국 독립 100주년을 축하하며 미국에 건넨 선물이다. 글뤽스만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반(反)이민 정책 등을 비판하며 ‘미국은 자유의 여신상을 소유할 자격이 없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다. 이에 레빗은 제2차 세계대전 초반 나치 독일에 패망한 프랑스가 미국 도움으로 겨우 국권을 되찾은 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응수한 셈이다.

2차대전 당시 프랑스가 왜 그토록 쉽게 무너졌는지는 지금도 호사가들의 관심사다. 프랑스의 동맹인 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는 ‘세계 최강의 육군을 보유한 프랑스와 역시 세계 최강의 해군을 거느린 영국이 손을 잡으면 나치 독일과 싸워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확고했다. 하지만 1940년 5월 프랑스 공격을 개시한 독일군은 불과 6주일 만에 프랑스군을 완파하고 항복을 받아냈다. 독일군 장병들은 “‘세계 최강’이라더니, ‘종이 호랑이’에 불과하다”며 프랑스 육군을 비웃었다. 독일군 점령 하의 파리를 찾은 아돌프 히틀러 총통이 에펠탑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촬영하는 모습은 지금도 프랑스 국민에겐 부끄럽고 뼈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많은 이들은 제1차 세계대전 때 프랑스가 겪은 참상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4년 넘게 이어진 전쟁 끝에 프랑스는 승전국이 되었으나 전사자만 140만명에 달했다. 이는 동맹인 영국 전사자(약 75만명)의 두 배 가까이 된다. 1차대전 기간 20세부터 32세까지의 프랑스 남성 중 거의 절반이 죽거나 다쳤다는 끔찍한 통계도 있다. 전후 프랑스 젊은이들 사이에는 전쟁을 증오하는 염전(厭戰) 여론이 들불처럼 확산했다. 나치가 집권하며 독일이 군비 증강에 나섰으나 프랑스는 국민 다수의 반발 속에 국방력 확충의 기회를 놓쳤다. 2차대전 발발 전야에 프랑스군은 장성부터 병사까지 대부분 ‘우리는 독일을 이길 수 없다’는 패배주의에 사로잡혀 있었다.

최근 우리 합참의장에 해당하는 프랑스 국방참모총장의 발언이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프랑스군 서열 1위인 파비앙 망동 참모총장(공군 대장)은 민간인 대상 연설에서 “프랑스의 가장 큰 약점은 전투 의지가 부족하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앞으로 러시아와 사이에 벌어질 수 있는 전쟁에서 우리 자녀들을 잃을 각오를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계기로 유럽 안보가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프랑스도 병력 확충 등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하는 도중 나온 말이었다. 당장 진보 진영을 중심으로 ‘위험천만한 전쟁광(狂)의 논리’라는 등 비난이 빗발쳤다. 전쟁은 예방이 최선이지만 일단 터지면 무조건 이겨야 하고, 그러자면 일정한 희생이 불가피하다. 세계 모든 나라가 직면한 딜레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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