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기적’에 분노하는 사람들

2024-10-13

민음사의 유튜브 방송은 구독자가 25만 명에 이르는 유명 채널이다. 출판사 채널답게 지난 10일 저녁엔 해외문학팀 담당자가 3명 출연해 노벨문학상 발표를 기다리며 생방송을 했다. 그들이 소개한 유력 후보는 모두 외국 작가들이었다. 8시 정각, 스웨덴에서 수상자를 발표하는 영상에서 한강과 사우스코리아가 얼핏 들렸다.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한강? 한…강?” 입을 손으로 틀어막고 얼음처럼 굳었던 출연진은 5초쯤 지나서야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감격에 앞서 충격이 큰 것 같았다. 한 출연자는 “노벨문학상을 소개하며 ‘해외 현대문학’이란 말을 반복해 썼는데 우리 문학이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노벨문학상마저 이념 논쟁 대상

축하 못 한다면 차라리 놓아두라

연말 시상식 한강의 소감에 관심

예상하지 못한 낭보에 잠깐의 얼떨떨함과 긴 환호를 보낸 것은 온 국민이 비슷했다. 딱 이틀 만에 온·오프라인 서점 3곳에서 30만 권이 팔릴 정도로 ‘한강 신드롬’이 일었다. 서점 앞에 긴 줄이 서고, 매대는 채워지기 무섭게 비워졌다. 신문과 방송도 ‘한강’으로 도배했다. 저마다 가입한 단체채팅방마다 난리가 났다. 고구마 먹고 체한 듯 답답하고 암울한 뉴스에 지친 시민들에게 ‘한강의 기적’은 사이다 같았다.

하지만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언론사의 댓글 창은 때아닌 이념 논쟁이 불붙었다. 한강의 수상이 못마땅한 사람들의 분노가 창을 가득 메우고, 그에 대한 반박이 이따금 따라붙었다. 분노는 한강의 작품이 4·3과 5·18을 피해자의 입장에서 서술했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비뚤어진 역사의식에서 나온 왜곡된 작품”이 지구촌 가장 큰 문학상을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도, 축하할 수도 없는 것 같았다. 분노는 한강과 작품을 선택한 노벨상위원회로까지 향했다. “선풍기 앞에서 원고를 날려 (가까이 떨어진 순으로) 정했나”라는 1980년대식 비아냥까지 등장했다. 노벨상위원회는 한강이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며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을 쓴 점을 높이 샀는데, 댓글러들은 트라우마를 더욱 벼려 혐오의 무기로 키운 듯하다.

그들의 분노를 보며 한강에게 맨부커상을 안겨준 『채식주의자』가 떠올랐다. 꿈에서 본 트라우마 때문에 육식을 거부하는 주인공 영혜에게 사람들의 핍박이 쏟아지고, 결국 정신병 증세로 빠져들어 가는 과정을 세 사람의 시각에서 세심하게 그린 연작 같은 작품이다. 영혜는 고기에 끌리지 않았을 뿐인데, 사람들은 이유를 이해하려 하기보다 비정상이라고 부르며 ‘채식주의자’라는 이름표를 붙인다. 허윤진 평론가는 초판 말미에 붙인 해설에서 “생각보다 타인의 습성과 문화에 대해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며 “그럴 땐 그/녀를 그저 자연스럽게 움직여가도록 놓아주는 것도 이해의 방편 중 하나”라고 썼다. 역사적 사실을 피해자 입장에서 다시 들춘 작품이 탐탁지 않을 수 있다. 큰 상을 탔다고 모두가 나서 축하할 의무도 없다. 다만 굳이 남의 집 잔칫상을 뒤엎을 필요까지는 없지 않을까.

“거대한 파도처럼 따뜻한 축하”와 “그에 대한 완고한 거부”가 맞서고 있는 동안 또 하나의 소식이 전해졌다. 한강의 아버지 한승원 작가는 “전쟁이 치열해서 날마다 모든 죽음이 실려 나가는데 무슨 잔치를 하고 즐거워서 기자회견을 할 것이냐”는 딸의 뜻을 전했다. 역사적 사건에서 개인과 집단이 겪는 상처와 트라우마에 천착해 온 작가의 감수성은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에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아울러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나 하마스의 기습을 빌미로 민간인도 가리지 않고 가혹한 공격을 퍼붓는 이스라엘에 침묵해 온 세상을 향한 따끔한 일침이기도 하다. 한강은 12월 10일 스웨덴에서 열리는 노벨상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을 밝힐 것으로 전해졌다. 그 자리에서 현재의 큰 전쟁에 대해 언급할지는 본인만 아는 일이다. 하지만 노벨상 수상자로서 언급한다면 그 울림은 작지 않을 것이다. 벌써부터 12월이 기대된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