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공자는 몇몇 제자들에게 각자의 뜻을 말하게 했다. 자로가 냉큼 나서서 먼저 말하고 이어서 염구, 공서화가 말했는데, 이들은 다 제 역량을 벗어난 정치적 포부를 털어놓았다. 반가운 답이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증점(曾點:증자의 아버지)이 “저는 늦봄에 새로 지은 봄옷을 입고서 마음에 맞는 친구 대여섯 명과 심부름할 만한 어린 학동 예닐곱 명과 더불어 기수에 가서 목욕을 하고, 무우(舞雩)에 가서 바람을 쐰 다음에 흥얼흥얼 노래를 읊조리며 돌아오고 싶습니다”라고 답했다. 공자는 “증점이라면 능히 그리 할 수 있을 것이다”라며 기뻐했다. 중국에서는 공자 이전부터 관직에 나아가는 것보다 자연산수 속에서 유유자적하는 삶을 오히려 높이 평가해 왔기에 공자는 증점을 대견스럽게 여긴 것이다. 증점이 토로한 이 말은 『논어』 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구절이며, 이후 ‘욕기수(浴沂水)’, ‘풍무우(風舞雩)’, ‘영귀(詠歸)’ 등은 세속에 얽매이지 않는 은자적 삶을 대변하는 말이 되었다.
은거하려면 조용히 떠날 것이지, 요란한 ‘기자회견’을 하는 경우가 있다. 1년도 안 되어 세상으로 도로 나올 사람이다. 도심에 살아도 가끔 증점과 같은 소풍을 할 수 있다면 제왕도 부러워할 행복을 느끼는 진정한 은자리라.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