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 한국사회를 살아 가면서 절대 예상치 못했던 일들을 속속 겪으면서 사는 시대이다. 한국영화가 미국 아카데미상에서 작품상 감독상 등을 휩쓰는 걸 보게 될 줄은 오랜 영화 경력을 가진 사람들도 전혀 예상치 못했다. 내 평생 한국 작가가 노벨상을 타는 걸 보게 될 줄은 꿈도 꾸지 못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일본도 오에 겐자부로 이후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토록 수상을 노렸으나 번번히 실패했다. 미국의 폴 오스터도 그렇게 큰 인기에도 불구하고 상을 타지 못했다. 그러나 한국의 현대사에 있어 통틀어서 전혀 예상을 못했던 일로 쿠테타 만한 일은 없다. 그런 점에서, 곧 화제와 이슈 면에서, 윤석열은 감독 봉준호와 작가 한강을 뛰어 넘었다. 실로 위대한(?) 인물이 아닐 수 없다. 유명이 아니라 오명과 악명이지만.
한국 영화계가 비교적 전혀 예상을 못한 일 중의 하나는 젊은 층 관객을 프로야구에 뺏길 줄 몰랐다는 것이다. 요즘 프로야구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 하다. 젊은이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선수들 유니폼 하나쯤은 다 갖고 있을 정도이다. 프로야구 팬들 가운데는 2~30대 여성이 압도적이고 40대 이상의 ‘줌마’ 관람객들도 상당수이다. 여성들은 한국의 극장가를 좌지우지 했던 핵심 관객들이다. 그 관객들이 요즘 죄 야구장으로 가고 있다. 극장의 위기는 컨텐츠 퀄리티의 위기도 있지만 기존의 자신들을 지지했던 관객들, 청중들을 잃고 있다는 정치적 위기가 본질이다.
KBO 관객은 지난 해 이미 천만을 넘어섰다. 2022년 600만, 2023년 800만에 이어 2024년에 1088만이 됐다. 대통령 후보든 국회의원 후보든 영화든 야구든, 중요한 것은 트렌드이다. 야구가 무서운 것은 관객수의 증가 속도에 불이 붙었다는 것이다. 이런 추세라면 그 어떤 문화나 다른 스포츠 경기도 이기지 못한다. 영화가 야구를 당분간은 이기지 못하게 됐다. 심지어 일부 영화감독들도 영화보다는 야구를 보는 걸 선호하고 있을 정도다.
이렇게 된 데에는 대체 불가라는 개념이 개입되고 있다고 미디어산업 평론가 조영신 박사는 얘기한다. 극장은 OTT든 VOD든 대체 가능한 플랫폼이 즐비하게 생겨나고 있지만 야구란 컨텐츠를 담아 내는 ‘야구장’은 현재로서는 대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치어리더들의 쇼가 있고, 약간 흥분해도 될 만큼의 치맥이 제공되고 있으며, 무엇보다 자신들을 연대시키는 동질의 문화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걸 대체할 공간은 지금으로서는 전혀 없다는 것이다. 야구장은 야구장이로되 극장은 더 이상 극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야구가 영화를 이기든, 영화가 야구를 이기든 크게 보면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대중이 즐기는 문화나 스포츠는 같은 목적을 지니는 것이다. '대중은 과연 그것으로 행복한가'에 달려 있다. 요즘의 영화가 대중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있는가. 그 질문에 영화는 진지하게 답을 해야 하는 시기이다. 많은 영화들이 사람들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예술도 안되고 돈도 못버는, 두 마리 토끼는 고사하고 한 마리도 잡지 못하는 범작들이 양산되고 있다. 야구에서 배워야 한다. 사람들을 흥분시켜야 한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소리치게 만들어야 한다. 한국의 영화가 흥분을 잊었다. 안타까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