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태 차 역주행 빠져나와"
산청~합천 흙탕물 차로 구분 못해
합천 호산마을 뻘밭 차 못 다녀
19일 경남도민들은 하늘에 구멍 뚫린 줄 았다. 산청·합천을 비롯한 경남 곳곳에 극한호우가 쏟아진 가운데 산사태·침수 등 피해 현장을 목격한 주민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만 했다.
진주시에 사는 박모(57) 씨는 이날 오전 함양군에 문상을 갔다가 차를 몰고 귀가하던 중 산사태를 간발의 차로 피했다. 박씨는 낮 12시 15분께 산청군 신안면 홍화원휴게소 인근 도로를 주행하던 중 불과 수 미터 앞에서 순식간에 토사가 왕복 6차로 도로를 뒤덮는 것을 목격했다.
그는 이날 언론과 통화에서 "이런 비는 생애 처음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비가 너무 많이 왔다"며 "산사태 때문에 길이 막혀 역주행해서 빠져나왔고, 다행히 집에 무사히 도착했는데도 너무 놀라서 진정이 안 된다"고 말했다. 민모(27) 씨는 이날 산청군 신안면에서 부모님과 함께 인근 지역으로 이동하려다가 수마가 할퀸 산청과 인근 합천지역의 모습을 생생히 목격했다.
실제 민씨가 산청에서 합천 쪽으로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촬영한 영상을 보면 도로 전체가 몇 개 차로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흙탕물이 들어찼고, 그 옆으로는 폭우에 불어난 강물이 세차게 쏟아져 내려온다.
또 폭우가 휩쓸고 간 합천 호산마을은 거대한 뻘밭처럼 변해 사실상 사람들이나 차량 통행이 불가능한 상태다. 어디가 땅이고 어디가 도로인지 분간할 수 없을 지경이다. 한때 침수된 것으로 보이는 차 1대는 물구나무서듯 도랑에 처박힌 채 있었다.
민씨는 "아침부터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비가 퍼부었다"며 "일이 있어 부모님을 모시고 경북에 가야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곳곳이 통나무와 흙더미로 막혀서 도저히 갈 수가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쪽으로도 막히고 저쪽으로도 갈 수가 없어서 지금은 집으로 돌아온 상태"라며 "이렇게 비가 많이 내리는 걸 본 적은 처음"이라고 덧붙였다. 합천군 가회면에는 이날 집중호우로 불어난 하천이 둑을 넘으면서 면 소재지 대부분이 물바다가 됐다. 가회면 소재지 전체에 자동차가 물에 반쯤 잠길 정도로 물이 들이닥쳤다. 주민들은 마을회관으로 대피해 다행히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창녕군 도천면 고령의 한 주민은 "오전 10시쯤부터 범람한 하천이 마을을 삼키기 시작했다"며 "80년 넘게 이곳에서 살았지만, 이 정도로 물이 넘치기는 처음이다"고 말했다.
이날 경남에서 시간당 강수량이 가장 집중된 곳은 산청 시천면이다. 낮 12시 25분께부터 1시간 동안에만 98.5㎜의 비를 퍼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