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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교육청이 학생의 정치참여를 제한하는 학생생활규정을 전수조사해 개정했다고 밝힌 뒤에도 여전히 ‘집회 참여 금지’ 등 참정권을 침해하는 생활규정을 둔 고등학교가 다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교육청의 전수조사가 형식적으로 이뤄졌고 학생들의 정치참여를 단순히 투표권 행사에만 국한해 접근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7일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 내 다수의 고교는 생활규정에서 학생들의 집회 참여·단체 가입을 금지했다. 학교에 따라 해당 규정을 어기면 퇴학까지 시킬 수 있도록 규정했다.
서울 은평구의 A여고는 최근 개정한 생활규정에 ‘불법 집회에 참석하거나 불량 단체에 가입한 학생’ ‘학교 질서를 문란시킬 목적으로 집단행동을 선동하거나 그런 모임을 주도한 학생과 이에 가담한 학생’을 징계 대상에 포함했다. 불법 집회나 불량 단체, 집단행동의 정의나 기준은 생활규정에 제시되지 않았다.
이외에도 강남·송파·동작 등의 고교에서 불법 집회 참석 시 특별교육이수, 집단 행동 선동 시 최대 퇴학 처분까지 가능하게 한 생활규정이 발견됐다. 강남구에 있는 B고교는 ‘허가 없이 단체나 동아리를 조직하거나 가입해 교칙을 문란하게 한 학생’을 징계 대상으로 명시했다.
여전히 학생들의 정치참여를 제한하는 규정이 여럿 발견되면서 서울시교육청의 정치관여 금지조항 전수조사가 무색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17일 서울에 있는 고교 364곳의 생활규정을 전수조사한 결과 34교(9.3%)에서 고교생의 정치참여를 막는 규정을 발견해 개정했다고 밝혔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해 12월 A고교가 ‘정치 관여 금지’ 조항을 근거로 12·3 비상계엄 사태를 규탄하는 학생들의 시국선언문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삭제하게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뒤 전수조사를 실시했다.
서울시교육청의 조사가 좁은 범위로 이뤄지면서 집회 참여 제한, 단체 가입 조항 등은 조사 대상에서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 기자가 입수한 서울시교육청의 2023~2024년 생활규정 전수점검결과를 보면, 교육청은 장학사가 학교별 생활규정을 보고 공직선거법·정당법 등 상위규정에 어긋나는 요소가 있는지를 ‘예, 아니오’로만 표기하도록 했다.
전문가들은 교사와 학생 모두 정치적 사안에 목소리 내는 것을 금기시하는 분위기가 학교 생활규정에도 반영됐다고 본다. 김형철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는 “불법 집회를 금지한다고 하면서도 정확한 정의를 제시하지 않는 것은 결국 학생들의 정치적 행동을 막으려는 의도가 담긴 것”이라며 “학생들이 정치적 이슈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줘야 한다”고 했다.
학교가 ‘정치적 무균실’을 지향하는 것이 대화와 토론을 막아 오히려 극단적 사고의 토대를 만들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청소년 인권행동 ‘아수나로‘의 수영 활동가는 “미신고 집회와 신고 집회가 있을 뿐인데 학교가 무엇을 기준으로 불법집회라고 말하는지 모르겠다”며 “지금 학교는 정치적 대화가 금지된 소위 ‘입틀막’ 학교에 가깝다. 정치적 논쟁이나 정치교육이 이뤄지지 않는 학교는 극단적 사고방식에 더욱 취약한 공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