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제끼다 수렁 빠졌다…노태우, 총선 폭망 3대 오판

2025-02-18

노태우 비사

제1부. 잘못 끼워진 6공 첫 단추

2회. 헌정사상 최초 ‘여소야대’ 정국의 등장

노태우 대통령이 편안하게 한마디 던졌다. 13대 총선을 한 달여 앞둔 1988년 3월 17일 허겁지겁 청와대로 올라온 채문식 민정당(여당) 대표는 귀를 의심했다. 채문식은 막 신문에서 공천 관련 기사를 읽고 깜짝 놀라 청와대에 면담을 신청했다. 자신도 몰랐던 ‘권익현 고문(전 민정당 대표) 공천 탈락’이 기사로 나왔기 때문이다.

“권 고문 탈락한다고 신문에 났는데 사실입니까?”(채문식)

“그게 신문에 났어요?”(노태우)

대통령은 특유의 딴전을 피웠다. 이어 “채 대표는 새로운 정치 구도에 대해 이해를 못 해요”라며 핀잔을 주었다. 채문식은 전두환 대통령이 임명한 5공 마지막 당 대표였다.

대선 승리에 도취한 노태우의 판단착오

‘충분히 당선된다’는 노태우의 낙관은 총선 참패의 출발점이었다. 노태우 대선 승리 3개월, 대통령 취임 20여일 지난 시점이었다. 대선 승리의 기세를 이어 총선에서도 압승을 확신했다.

대선 승리에 취해 있던 노태우는 총선 과정에서 세 가지 악수를 연거푸 두었다.

첫 번째, 1988년 2월 초로 예정됐던 총선을 4월 말로 미룬 것이다. 대통령 취임식은 2월 25일. 전두환 대통령은 자신의 퇴임 직전에 치러질 총선에 대비해 정치자금 1100억원을 따로 챙겨두었다.

그러나 노태우의 생각은 달랐다. 전두환 대통령이 재임하는 상태에서 총선을 치를 경우 공천권을 전두환이 행사할 것이 분명했다. 노태우는 자신의 권력을 전두환과 나누고 싶지 않았다. ‘총선은 어차피 이긴다’고 낙관하는 상황이었기에 ‘전두환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일’이 최대 관심사였다. 그래서 자신의 대통령 취임 이후, 전두환의 퇴임 이후, 가능하면 시간이 많이 흐른 다음 총선을 치르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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