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발 폭풍에도 전기차 ‘불씨’ 살아 있다…“어떻게든 다시 지펴낼 것”

2025-01-28

설 연휴를 맞아 귀성길에 오른 A씨는 지난 26일 세종~포천 고속도로의 처인휴게소를 찾았다.

올해 새로 개통한 ‘신상’ 고속도로인 데다, 일견 미확인비행물체(UFO) 같기도 하고 미국 애플 본사 건물도 떠올리게 하는 ‘랜드마크 휴게소’가 들어섰다는 소식을 들었던 터라, 궁금했던 까닭이다.

전기차 소유주인 그는 여기서 뜻밖의 경험을 했다. 한국자동차환경협회가 이동식 전기차 충전 서비스 사업자 (주)티비유 등과 손잡고 지난 24일부터 일주일간 ‘이동식 전기차 충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A씨는 약 100km 주행 가능한 충전량(20kWh)을 무상으로 받았다.

한국자동차환경협회는 장거리 이동에 나선 전기차 이용자의 충전 편의 향상 차원에서 28일부터 사흘간 호남고속도로 익산미륵사지(천안 방향)휴게소에서도 같은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국면을 탈피하려는 전방위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전기차가 대중화되려면 앞서 언급한 충전 인프라 확산 외에도 차량 관리의 개념과 방식까지 통째로 바뀌어야 한다. 내연기관차가 엔진, 변속기, 연료 시스템 등 복잡한 기계 부품으로 구성돼 주로 마모와 부품 교체를 중심으로 한 관리를 필요로 했다면 엔진 대신 전기모터와 배터리가 핵심 부품인 전기차는 배터리 성능 최적화,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등이 주요 관리 항목이어서다.

차량 구매부터 사후 관리로 이어지는 통합 모빌리티 서비스를 제공하는 ‘차봇모빌리티’와 같은 기업들이 주목받는 배경이다. 차봇모빌리티 관계자는 “차량 구매와 관리 플랫폼을 통합 운영하면서 축적된 데이터와 기술을 통해 전기차 정비 및 사고 수리 견적 산출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며 “인공지능(AI) 기반의 소비자 맞춤형 차량 관리 솔루션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화재 시 최대 100억원의 손해액을 지원하는 ‘전기차 화재 안심 프로그램’을 내놨다. 전기차 화재에 따른 다른 사람의 재산 피해가 불 난 차주의 자동차보험 대물 배상 한도액을 초과했을 경우 최대 100억원의 손해액을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출고 후 10년 이내인 현대차·기아·제네시스 차량이 대상이다. 안전 점검도 강화한다. 기존 8년간 8회 받을 수 있었던 ‘블루 안심 점검 서비스’를 10년간 연 1회씩 총 10회로 늘리기로 했다.

중국 업체들의 공격적인 해외 진출에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내연기관차 회귀 정책까지 더해져 세계 자동차 시장은 올해도 격변이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워 전 세계를 상대로 보편관세 부과를 예고한 상태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최근 ‘2025년 자동차 시장의 주요 트렌드’를 발표하면서 “서방 국가와 중국 간의 무역 분쟁이 트렌드의 핵심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로 인한 글로벌 불확실성이 전기차 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리란 분석이다.

유럽연합(EU)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오는 30일(현지시간) 출범하는 ‘유럽 자동차 산업의 미래에 관한 전략대화’의 첫 회의를 주재하고 전기차 보급 확대 방안을 포함해 유럽 제조업의 핵심인 자동차 산업을 되살리기 위한 대책 논의를 본격화한다.

세계 각국의 보호무역주의가 새로운 국제 질서로 자리 잡으면서 한국 자동차 업계에도 빨간 불이 켜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첫날 ‘전기차 의무화’ 정책 폐기 행정명령을 발동한 게 대표적 사례다. 그에 따른 후속 조치로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예산 집행을 일부 중단시켰다. 다만 IRA 관련 모든 예산이 아닌, 행정부의 에너지 정책에 어긋나는 ‘그린 뉴딜’ 지출만 끊으라고 지시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IRA에 따른 세액 공제는 유지되리란 관측도 나오지만, 국내 완성차·배터리 업계는 좀처럼 마음을 놓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승조 현대차 기획재경본부장은 지난 23일 지난해 4분기 및 연간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IRA 폐지 여부는 의회 통과 사안인 만큼 일러야 9월께 결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은 살아남은 전기차 보급의 ‘불씨’를 어떻게든 다시 지펴 난국을 돌파해야 하는 상황이다. 정부는 지난 15일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 등에서 관계부처 합동으로 ‘친환경차·2차전지 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수입차보다 국산차에 유리한 방향으로 친환경차 세제 혜택 기준을 조정해 궁극적으로 국내 업체의 대형 전기차 신규 모델 출시를 독려하는 내용을 담았다. 올해 1조5000억원을 들여 전기차 보조금 지원도 확대한다. 또 운전면허 시험을 전기차로 치를 수 있도록 올해 시험 차량의 10%를 전기차로 배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국내 완성차 업계는 올해도 경쟁력 있는 신차 출시를 이어간다는 구상이다. 지난해 9월 광명 이보 플랜트(EVO Plant)를 구축해 EV3를 공급 중인 기아는 올해 하반기에는 기아 화성 이보 플랜트를 완공해 전기 목적기반모빌리티(PBV)도 본격적으로 생산할 계획이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는 “올해 전기차 캐즘 극복은 엔트리급 가성비 전기차들의 활약이 관건”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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