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의 에너지 계열사인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 법인이 1일 출범한다. 자산 100조원, 매출 90조원에 육박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최대의 민간 에너지 기업의 탄생이다. 이번 합병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SK는 그룹 차원의 고강도 리밸런싱(조직개편)을 계속해서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통합 SK이노베이션은 합병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시너지는 극대화하기 위해 ‘한 지붕 두 가족’ 형태로 운영된다. SK이노베이션은 정유 석유화학 분야에서, SK E&S는 천연가스 분야에서 독자적인 사업 영역을 구축해온 만큼 독립경영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에서다. SK이노베이션의 사명은 유지되며 SK E&S의 사명은 ‘SK이노베이션 E&S’로 바뀌고 사내 독립기업(CIC)으로 운영된다. SK이노베이션 대표는 박상규 사장이, 추형욱 사장은 CIC의 대표를 맡게 된다.
25년 만에 다시 한 회사로
SK이노베이션은 1962년 국내 최초 정유사로 출발, 석유화학·배터리·소형모듈형원자로(SMR) 사업 등으로 포트폴리오를 확장해 왔다. SK E&S는 1999년 SK이노베이션에서 분할돼 도시가스 지주회사로 출범, 국내 1위 민간 LNG사업자로 자리매김했으며 최근에는 수소 등 그린 포트폴리오로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두 기업은 25년 만에 다시 합쳐지면서 SK E&S가 가진 전기 사업 역량과 SK이노베이션의 연구개발(R&D) 역량을 합해 미래의 에너지는 물론 배터리·ESS(에너지저장장치) 등 전기화 사업 밸류체인을 아우르는 종합 에너지 기업으로 진화하겠다는 계획이다. 합병 법인은 자산 기준 아태 민간 기업 중 1위, 국영 에너지 기업을 포함하면 이 지역 9위다.
SK온 살리기
이번 합병은 SK그룹이 추진해온 리밸런싱의 핵심이었다. 포트폴리오 경쟁력 강화, 성장 모멘텀 확보 등의 명시적인 목표 뒤에는 11개 분기 연속 적자인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자회사 SK온을 살리자는 목적이 있다. 배터리 사업은 그룹 내 손꼽히는 미래 먹거리인 동시에,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이후 성장이 기대되는 분야인 만큼 ‘SK온 살리기’는 그룹의 숙제였다.
E&S는 매년 1조~2조원의 안정적인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을 내며 그룹의 캐시카우(현금 수익원) 역할을 해온 만큼 누적 적자 2조원 이상인 SK온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투자 재원에 힘 보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합병으로 인한 시너지를 통해 SK이노베이션은 2030년 기준 전체 EBITDA 20조원 달성을 목표로 삼고 있다.
SK온은 재무구조 개선 차원에서 SK이노베이션의 알짜 자회사인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과 SK엔텀과도 합병한다. SK온과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도 1일 CIC형태로 합쳐지며 SK엔텀은 내년 2월 1일 자로 흡수합병될 예정이다.
인적 구조조정 마친 이노베이션
SK이노베이션은 인적 구조조정까지 완료하며 새 출발 채비를 완료하는 중이다. 지난 24일 3개 계열사의 최고경영자(CEO)를 모두 이공계 출신으로 교체했다. SK지오센트릭의 경우 어려워진 화학 업황을 고려해 임원 수를 기존 21명에서 18명으로 14% 줄였다. 또한 내부 협업과 소통을 강화해 경쟁력 회복에 나서기 위해 내달부터 매주 토요일 임원들을 회사로 소집하는 ‘커넥팅 데이’를 시행한다.
한편, SK이노베이션은 지난 30일 통합법인의 재무안정성 강화계획과 주주환원 등을 골자로 하는 기업가치 제고 계획(밸류업 프로그램)을 공시했다. 회사는 2024∼2025년 주당 최소 배당금을 2000원으로 설정했으며 통합 법인의 시너지 효과가 예상되는 2027년 이후 자기자본이익율(ROE) 10%를 달성, 주주환원율 35% 이상을 목표로 세웠다. SK이노베이션은 “향후 정유·화학 및 배터리·소재에 이르는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기반으로 안정적인 수익 창출과 합병법인의 통합 시너지 효과가 가시화되는 2027년 이후 이를 충분히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