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대 대통령 선거까지 19일이 남았다. 기후변화·저출산·고령화·지역소멸 등 해결이 시급한 사회문제가 산적한 가운데 이를 풀어갈 새 정부에 거는 국민적 기대도 커지고 있다. 우리 사회가 지속가능한 공동체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변화는 무엇일까. 새 정부는 어떤 법제도와 정책을 마련해야 할까. 국내 주요 비영리단체 19곳이 새 정부를 향한 공동의 목소리를 냈다. 이들은 기부문화 활성화, 아동 권리 강화, 위기 청소년 지원, 시민사회와의 ODA 협력 확대, 장애인 지원 체계 개선 등 ‘5대 과제’를 중심으로 법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1. 기부문화 활성화를 위한 세제 혜택 확대

비영리단체들은 위축된 기부 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국내 기부 참여율은 매년 낮아지는 추세다. 통계청 사회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연간 기부 참여율은 2013년 34.6%에서 2023년 23.7%로 매년 감소하고 있다.
기부를 장려하기 위해서는 개인 기부에 대한 세제 혜택을 확대해야 한다는 게 기부 단체들의 중론이다. 현행법상 일반 기부금은 1000만원 이하에 15%, 초과분에 30%의 세액공제가 적용된다. 미국(최대 60% 소득공제), 독일(최대 20% 소득공제), 일본(최대 50% 세액공제) 등 주요국보다 한국의 세제 혜택은 낮은 편이다. 굿피플·바보의나눔·초록우산 등 모금 단체는 ▶기부금 공제 방식 선택권 부여 ▶공제율 상향 ▶부동산·주식 등 현물기부에 대한 세제 개선 등의 방안을 제안했다.
고령화 사회를 맞아 유산기부 활성화를 위한 제도 개선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선진국에서는 유산기부가 하나의 기부 문화로 자리 잡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유류분 제도와 기부처에 대한 규제 등 여러 제약으로 활성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유산기부가 확산하기 위한 법적 보완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2. 아동의 성장과 발달에 관한 국가 책임 강화

아동의 기본 권리를 지키기 위한 법률 제정도 주요 단체들이 강력하게 요구하는 부분이다. 아동을 ‘보호 대상’으로 보는 현행 아동복지법의 한계에서 나아가 아동을 ‘권리를 가진 주체’로 보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는 유엔아동권리협약에도 명시된 내용으로, 아동의 건강한 성장에 대한 책임을 국가에 부여하는 법적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각 단체는 이를 토대로 ▶아동 생활 공간의 안전시설 설치 및 관리 기준 강화(굿네이버스) ▶아동수당 대상 연령 확대(세이브더칠드런) ▶아동 친화적 재난 대응 체계 구축(월드비전) ▶아동의 마음건강 지원(유니세프 한국위원회) ▶디지털 환경에서의 아동 권리 보호(초록우산) 등에 관한 정책을 제안했다.
아동 정책을 총괄할 전담 부처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이전 정부에서는 교육부·보건복지부·여성가족부 등 여러 부처가 아동·청소년 관련 업무를 나눠 맡아왔지만, 정책이 분산되고 중복되는 한계가 있었다. 아동정책을 통합적으로 기획하고 조정할 수 있는 전담 부처를 설치해야 한다는 것이 아동 단체들의 의견이다.
3. 위기 청소년 보호를 위한 맞춤형 지원 마련
현 정책이 놓친 아동·청소년의 복지 사각지대도 새 정부가 풀어야 할 숙제다. 영케어러(가족돌봄아동), 가정밖청소년, 이주배경 청소년 등 취약한 상황에 놓인 이들을 위한 촘촘한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먼저 ‘신청주의’ 방식의 복지 전달체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아동·청소년은 복지서비스 탐색 능력이 성인에 비해 부족해 지원 대상에서 누락되기 쉽다. 시간 빈곤을 겪는 영케어러의 경우 접근성은 더욱 떨어진다. 아동·청소년이 자주 방문하는 온라인 플랫폼에 정책 정보를 제공하고, 시군구 기초 단위에 전담 인력을 배치하는 방안 등이 해결책으로 제시됐다.
지원 대상을 넓게 포괄하는 법안 제정도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청소년 자립 지원의 경우 현 제도에서는 아동양육시설, 공동생활가정, 가정위탁 보호종료청년만을 ‘자립준비청년’으로 인정한다. 청소년 쉼터, 소년원 등 다른 보호 체계에서 나온 위기 청소년은 제외된다. 열매나눔재단은 “이들을 포괄하는 ‘위기 아동·청소년 자립지원 기본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문화 정책도 혼인과 출산을 기반으로 형성된 가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기아대책을 비롯한 주요 단체는 난민 아동, 미등록 이주 아동, 이혼이나 해체된 이주 가정의 아동 등은 제도적 보호에서 배제된 현실을 지적하며 체류 자격과 무관하게 이주아동의 권리를 보장하는 ‘이주아동보호법’을 제정할 것을 요구했다.
4. 시민사회 협력 강화를 위한 ODA 구조 개편

공적개발원조(ODA) 분야에서는 시민사회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올해 정부 ODA 예산은 6조5010억원으로 전년보다 3.8% 증가했다. 이 가운데 한국국제협력단(KOICA)에서 집행하는 민관협력사업 예산은 650억원(약 1%)에 불과하다. 국제사회에서도 이에 대한 지적이 나오고 있다. OECD 개발원조위원회(DAC)는 지난해 보고서에서 “한국의 시민사회 협력 구조는 정책 선언에 비해 실행력이 떨어진다”고 평가했다.
국내 NGO들은 ODA의 질을 높이고 글로벌 리더십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전문성 있는 단체와의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짚었다. 특히 글로벌 인도주의 활동 수요를 폭발적으로 증가시킬 기후위기에 대응하려면 NGO와의 협력은 필수라고 주장한다. 국제구조위원회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ODA 자금을 필요한 지역에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인도적 개발 재원과의 연계를 강화하고 유연한 파트너십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컨선월드와이드는 “정부와 NGO의 관계에서 NGO의 협력 수준을 격상하고, 시민사회가 개발협력 정책 수립 과정에 참여할 것”을 요청했다.
5. 장애인 복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지원 확대
기존 제도로는 보호받기 어려운 장애인을 위한 별도의 지원 체계 구축도 업계가 요구하는 개선점이다. 선진 복지국가로 나아가려면 복합적인 취약성을 가진 소수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관점에서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시청각장애인이 꼽힌다. 시청각장애는 시각장애와 청각장애를 동시에 겪는 중복장애 유형이다. 국내에 약 1만 명의 시청각장애인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부는 시청각장애를 별도의 장애 유형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밀알복지재단은 “시청각장애인은 단순히 시각장애와 청각장애가 합쳐진 유형이 아니라, 시청각장애인으로서 겪는 특수한 어려움이 따로 존재한다”며 “시청각장애를 독립된 장애 유형으로 인정하고, 이들의 권리와 삶의 질을 보장하기 위한 특별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고가의 필수 치료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인공와우’ 지원이 대표적이다. 인공와우는 보청기로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청각장애인이 듣고 말할 수 있게 해주는 필수 장치다. 하지만 귀 한쪽 수술에 1000만원, 소모품인 외부 장치 교체에 매번 1000만원의 비용이 든다. 해외 선진국은 최소 3년마다 외부 장치 교체 비용을 지원하지만, 우리나라에선 평생 1회의 지원만 받을 수 있다. 사랑의달팽이가 지원 확대를 요청하며 진행 중인 서명 캠페인에는 지난달 말 기준 5만 명이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