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달 규칙적으로 들어오는 월급은 안정된 삶의 상징이다. 이제 금융시장에서는 이 개념이 새로운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투자자에게 매달 일정한 현금흐름을 제공하는 ‘월지급식 펀드’가 그 주인공이다.
주식시장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시세차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투자자에게, 예측 가능한 월 배당은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는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제공한다. 특히 은퇴를 앞둔 세대에게는 “자산을 얼마나 불릴 수 있느냐”보다 “얼마나 꾸준히 생활비를 마련할 수 있느냐”가 더 절실한 질문이다.

일본은 월지급식 펀드의 가능성을 가장 먼저 보여준 사례 중 하나다. 고령화·저성장·저금리라는 삼중고 속에서 이 펀드는 개인 투자 시장의 주류로 자리 잡았다. 대만도 유사한 흐름을 보인다. 초저금리와 부동산 규제로 흘러나온 자금이 금융자산으로 이동했고, 양안 긴장이 고조되면서 해외 자산에 분산 투자하는 월지급식 펀드가 인기를 끌고 있다. 일본과 대만의 월지급식 펀드 시장 규모는 각각 약 200조 원, 120조 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한국도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은퇴세대의 관심이 바뀌고 있다. 국내 월배당형 펀드 잔고는 불과 2년 만에 3조 원대로 늘었고,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에서도 관련 상품이 속속 출시되고 있다. 과거 적립식 펀드가 주류였던 시장에서 월배당형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가는 셈이다.
국내 월지급식 펀드들은 글로벌 고수익채권, 투자등급채권, 신흥국채권 등을 중심으로 연 6~8% 수준의 배당을 제공한다. 배당 재원은 채권 이자, 주식 배당, 리츠 배당금 등 비교적 안정적인 수익원에서 나온다. 최근에는 글로벌 배당주, 사모대출, 사모주식 등으로 투자 대상이 확대되며, 변동성 국면에서도 현금흐름을 유지할 기반이 강화되고 있다. 또한 매월 배당을 분산 지급하는 구조 덕분에 장기 투자 시 금융소득 종합과세 부담을 줄이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월지급식 펀드를 은퇴 자산 관리의 핵심으로 평가한다. 직장의 월급이 생계의 기반이었다면, 이 펀드는 은퇴자의 ‘제2의 월급’ 역할을 할 수 있다. 특히 국민연금이나 퇴직연금만으로 부족함을 느끼는 이들에게는 추가 소득 수단으로 적합하다.
월급의 가치는 액수보다 리듬에 있다.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는 흐름이야말로 노후의 진짜 안정을 보장한다. 다만 ‘월급’이라는 이름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월지급식 펀드는 어디까지나 투자상품이며, 원금 손실 가능성과 배당 변동 위험이 항상 존재한다. 안정적인 현금흐름은 분명 매력적이지만, 그 대가로 감수해야 할 리스크도 잊어서는 안 된다.
양원택 한국투자증권 투자상품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