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석회석 덩어리들을 촘촘하게 쌓아 올려 벽을 만들고 암갈색 석회 슬레이트를 원뿔 고깔 모양으로 쌓아 지붕을 덮었다. ‘트룰리’라는 이 단순하고 특이한 구조물 1600여 개가 줄지어 늘어서 한 마을을 이루었다. 이탈리아 남부 풀리아 지역의 알베로벨로는 동화 같은 풍경으로 ‘스머프 마을’이라 불린다.
트룰리는 접착제를 일절 쓰지 않는 건식 쌓기 공법으로 전 세계에서 이 지역 아트리아 계곡에만 존재하는 희귀한 구조물이다. 원래 농사용 창고나 대피소로 쓰던 가설물이었으나 봉건 영주가 지배하던 15세기부터 살림집으로 지어졌다. 세금조사관이 나오면 건식 지붕을 해체해 주택세금을 피하기 위해서였다고 전한다. 그러나 지붕 해체와 쌓기는 고난도 작업이라 이 설을 믿기 어렵다. 알베로벨로는 ‘아름다운 나무’라는 뜻으로 원래 울창한 숲인 봉림지역으로 목재 사용을 금지해 간략한 석조 건물을 지었다는 설이 더 그럴싸하다.
암반을 파서 채취한 돌덩이들을 쌓아 두께 1~2.7m, 높이 1.6~2m의 벽체와 원뿔 지붕을 만든다. 파낸 구덩이는 지하 수조가 되어 지붕에서 흘러내린 빗물을 저장해 생활용수로 쓴다. 원뿔 지붕의 꼭지에 사암으로 만든 뾰족봉을 씌워 마무리하고 종종 기독교적 상징을 지붕에 그려 장식한다.
트룰리 하나에 작은 방들을 덧붙이면 최소의 집이 되지만, 가장 큰 집 ‘트룰리 소라노’는 9개를 연결해 저택을 이루기도 한다. 온통 돌구조라 여름에 시원하나 겨울은 무척 춥고 밀폐된 공간이라 난방도 어렵다. 지붕 속 다락은 있으나 구조상 2층은 불가능하고 창이 없어 내부는 컴컴하다. 겉모습은 예쁘나 생활공간인 내부는 동굴과 같다. 현재 거주하는 집은 25% 정도이고 나머지는 관광용 상업시설이거나 비어있다. 한집 한집은 단순하고 가난하나 구릉을 따라 구불거리며 수백 집이 모이니 풍부하고 환상적인 장관을 이룬다. 알베로벨로는 민가 건축이 갖는 이 ‘집합의 힘’으로 세계 유일의 명소가 되었다.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