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균의 Zoom-人] 기업인들의 '나눔의 미덕'

2025-01-11

기부(寄附)의 사전적 정의는 자선 사업이나 공공사업을 돕기 위해 돈이나 물건 따위를 대가 없이 내놓는 것이다.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사회 취약 계층에게 나눔과 배려는 삶을 버터내는 버팀목이 된다. 또한 부(副)의 편중 문제를 보완하는 공공선의 구현 등의 실질적 플러스(+) 효과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경기 침체와 성장 둔화로 인해 타인에 대한 배려와 관심이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통계청 사회조사에 따르면 2023년 5월 기준 직전 1년간 기부자 1인당 평균 현금 기부액은 58만9800원으로 2021년(60만3000원)과 비교해 1만3200원(2.2%) 줄었다. 1인당 평균 현금 기부금이 줄어든 것은 2011년부터 2년 단위로 통계가 집계된 이후로 처음이다. 고액 기부액이 줄고 소액 기부가 늘면서 1인당 평균 현금 기부액이 줄었기 때문이다. 2022년 영국 자선단체 CAF가 발표한 ‘세계기부지수’에서도 한국은 119개국 중 88위로 하위권에 머물렀다

자신이 일구어온 자산을 더 많은 이들을 위해 쓰기로 자발적으로 결정하는 기업인들이 있다. 이들의 선(善)함이 우리의 기부문화 개선에 마중물(펌프질을 할 때 물을 끌어 올리기 위해 위에서 붓는 물)이 되길 바란다.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 "AI 종주국으로 키워달라"

원양어선 항해사 출신으로 동원그룹을 일군 김재철 명예회장은 2019년 경영 일선에서 은퇴한 후 인재 양성에 집중하고 있다. 김 명예회장은 카이스트(KAIST)에 인공지능(AI) 교육과 연구 인프라 강화를 위해 44억원을 추가로 기부했다. 지난 2020년 500억원을 기부한 데 이어 두 번째 지원으로, 김 회장이 KAIST에 기부한 총액은 544억원에 달한다.

2020년 당시 김 명예회장은 기부금으로 ‘KAIST 김재철 AI대학원’을 설립하고 KAIST가 AI 분야에서 셰계 최고 수준의 인재 양성을 주문한 바 있다.

카이스트 측은 1차 기부액 사용 잔액과 2차 기부금액을 합한 483억원을 투입해 지상 8층, 지하 1층 규모의 교육연구동을 2028년까지 완공한다는 계획이다.

완공 후에는 교수 50명, 학생 1000명이 상주하게 된다. AI 연구 경쟁력이 가장 탁월한 학교로 평가받는 미국 카네기멜런대(CMU)의 AI 분야 교수가 45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김재철 AI대학원이 최고 수준의 AI 교육 및 연구 허브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김 명예회장은 창업 10주년이던 1979년 사재 3억원을 연해 교육재단인 ‘동원육영재단’을 설립했다. 이 재단은 40년간 장학사업, 연구비 지원, 교육 발전기금 지원 등 420억원에 가까운 장학금으로 인재 육성에 힘쓰고 있다.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 회사 핵심 지분 공익재단 기부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은 국가 인재 육성을 위해 자신의 미래에셋컨설팅 지분 25%를 미래에셋희망재단에 기부하기로 약속했다. 현행 공익법인의 주식 보유와 관련한 규제 등이 완화되는 시점에 향후 미래에셋컨설팅 주식을 미래에셋희망재단에 기부할 예정이다. 현재 박 회장은 미래에셋컨설팅 지분 48.63%를 보유하고 있다.

박 회장의 가족 기업 격인 미래에셋컨설팅은 미래에셋그룹 지배구조의 핵심 회사다. 미래에셋그룹의 지배구조는 ‘박 회장→미래에셋컨설팅→미래에셋자산운용→미래에셋캐피탈→미래에셋증권→미래에셋생명’으로 이어진다.

국내에서 창업주가 회사 핵심 지분을 공익재단에 기부하는 조치는 매우 이례적이다. 미래에셋희망재단은 박 회장이 부모님의 유지를 받들어 1998년 설립했다. 국내 대학생에 장학금을 지원하는 등 다양한 사회 공헌 사업을 벌이고 있다. 박 회장은 미래에셋캐피탈, 미래에셋자산운용 주식도 향후 가족 간 협의를 거쳐 기부할 계획이다.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 1억 기부클럽 '전도사'

1억원 이상 고액 기부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회원인 진옥동 신한금융그룹 회장은 '기부 전도사'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힘든 유년 시절을 보낸 진 회장은 취약계층이 꿈을 키울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생각에 남몰래 ‘조용한 기부’를 이어왔다.

진 회장은 신한은행장으로 취임한 2019년부터 학대피해아동, 부모의 양육이 어려워 위탁가정에서 지내고 있는 아동 등 열악한 가정환경으로 인해 학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동들에게 교육비, 학습교구 등 맞춤형 후원에 앞장섰다.

진 회장이 은행장 시절 도입한 마리지지 기부 방식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나눔 문화'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진 회장의 제안한 '아름다운 마일리지' 제도는 임직원이 자원봉사활동 내용이나 기부금을 등록할 경우 해당 시간과 금액에 비례하는 마일리지를 개인 계정에 적립해주는 신개념 사회가치 창출 모델이다.

진 회장은 2020년에 이미 굿네이버스를 통한 개인 기부금이 1억원을 넘어, 1억원 이상 고액기부자에게 주어지는 ‘더네이버스아너스클럽’ 대상이 됐지만 조용히 선행을 전하고 싶다는 생각에 가입하지 않았다.

그의 선행은 연예·스포츠 분야 스타들의 동참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탁구 국가대표 신유빈 선수와 프로골퍼 장유빈 선수가 진 회장의 권유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억원을 기부하며 아너소사이어티에 가입했다. 진 회장은 신 선수와 장 선수를 지난달 신한금융의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이웃사랑성금 160억원 기탁식에도 초청해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 된 것을 축하했다. 아이돌그룹 2PM 출신 가수 겸 배우인 이준호도 지난해 6월 신한금융과 함께 아너소사이어티에 가입했다.

●김호연 빙그레 회장 부부, 적십자 고액기부자 클럽 동시 가입

빙그레 김호연 회장과 배우자인 김미 백범김구기념관장 부부가 동시에 적십자 고액기부자 모임인 ‘레드크로스 아너스클럽(Red Cross Honors Club)'에 가입했다. 김 회장 부부는 긴급한 도움을 필요로 하는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계층 위기가정을 지원하기 위해 대한적십자사에 각 1억원을 기부하고 아너스클럽에 가입했다.

아너스클럽은 적십자사에 1억원 이상 기부한 고액 기부자 모임으로, 현현재 회원은 총 285명이며, 부부가 함께 가입한 21번째 사례다.

빙그레는 2013년부터 적십자사를 후원해 왔으며 지난해에는 법인·단체 고액기부 모임 레드크로스 아너스기업 10억 클럽에 가입했다.

백범 김구의 손녀사위인 김 회장은 독립운동 선양 사업에 대한 관심으로 적십자사 인도법연구소가 주최하는 국제 인도주의 학술대회를 꾸준히 후원하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 근·현대사 속에서 국제적십자운동의 역할을 학문적으로 규명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김미 관장은 백범 차남의 3남1녀 중 막내다.

●'샐러리맨의 신화' 권오갑 HD현대 회장, 나눔문화 확산 앞장

권오갑 HD현대 회장은 평사원으로 입사해 회장에까지 오른 '샐러리맨의 신화'로 잘 알려졌다. 특히 기업의 위기 때맏 구원투수로 등장한 전문경영인으로 명성이 높다.

권 회장은 지난 2021년 한국경영학회가 주최한 ‘대한민국 기업 명예의 전당’에 전문경영인 최초로 헌액됐다. 지난해에는 모교인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며 나눔 문화를 확산해온 공로를 인정 받아 명예 경영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경영학회는 2016년부터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에 큰 기여를 한 기업인을 매년 명예의 전당에 헌액해오고 있다.

권 회장은 최근 사재 2억원을 한국외대에 발전기금으로 기부했다. 권 회장이 기부한 2억원은 향후 한국외대의 교육환경 개선과 장학금 지급을 위한 재원으로 사용될 예정이다.

권 회장은 2011년 임직원 급여의 1%씩을 기부하는 ‘HD현대1%나눔재단’, 조선소 중대 재해 피해 유가족을 지원하는 ‘HD현대희망재단’ 설립 등을 해왔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고모 유지 받들어 두을장학재단 이사장 맡아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고모인 고(故)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의 유지에 따라 두을장학재단의 이사장직을 넘겨받았다. 이 사장은 지난 2023년 두을장학재단의 이사장으로 임명됐다. 2019년 작고한 이인희 고문은 이부진 사장이 재단 이사장직을 맡아달라는 유지를 남겼고,이 사장이 고민을 거듭하다 이를 수락했다.이 사장은 사재를 재단에 기부하는 등 재단 활동에 책임감을 보이고 있다.

두을장학재단은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 배우자인 고 박두을 여사의 유산을 바탕으로 삼성그룹 장녀인 이인희 고문이 2000년 설립한 국내 최초 여성 전문 장학재단이다 재단은 삼성, 한솔, CJ, 신세계 등 범삼성가가 함께 출연했으며 여성 인재 양성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초대 이사장인 이인희 고문이 오랜 기간 재단을 운영했다.

재단은 매년 1학년에 재학 중인 여대생 30여 명을 선발해 졸업까지 등록금 전액과 자기계발비를 지원한다. 25년간 700명의 대학생에게 116억 원의 장학금을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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