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장호의 사자성어와 만인보] 회독남화(悔讀南華)와 온정균(溫庭筠)

2025-08-04

이번 사자성어는 회독남화(悔讀南華. 뉘우칠 회, 읽을 독, 남녘 남, 빛날 화)다. 앞 두 글자 ‘회독’은 ‘읽은 것을 후회하다’란 뜻이다. ‘남화’는 ‘도교 철학자 장자(莊子)’다. ‘남화’가 그를 가리키는 존칭으로도 쓰인 경우다. 이 두 부분이 합쳐져, ‘장자의 ‘남화경(南華經)’ 읽은 것을 후회하다. 즉 깊고 다양한 지식을 쌓은 것이 오히려 순탄한 삶에 큰 장애물이 되고 말았으니, 이를 후회한다’란 의미가 만들어졌다. 당나라 말기 시인 온정균(溫庭筠)의 자조적 표현에서 유래했다. ‘당시기사(唐詩紀事)’ ‘온정균’편에 이 네 글자가 등장한다.

당나라 말기에 왕성하게 활동한 시인 온정균의 정확한 생몰년(生沒年)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어려서 부친과 사별했고, 이후 집안 형편이 어려워졌다. 온정균은 성장하면서 문학에 심취했고, 요즘 기준으론 노랫말에 가까운 사(詞) 창작에도 힘썼다. 그는 학문에 있어서도 차츰 높은 경지에 도달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빈부 격차가 벌어지고 부패가 만연하던 시기에 태어나고 성장했다. 당연히 과거 시험도 투명하지 못했다. 시험문제가 암암리에 누출되는 것은 물론이요, 시험 당일에도 부정 행위가 심했다. 그도 여러 차례 응시했으나 합격하지 못한다. 이로 인해 안정적 직업을 가진 기간이 일정하지 않았고, 풍족한 생활과 평생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실력을 갖추고서도 온정균이 과거에 합격하지 못한 진짜 원인은 따로 있었다. 하루는 재상 영호분이 그를 불렀다. 박학다식하고 고전에 밝다고 소문이 자자한 온정균에게 평소 궁금히 여기던 어떤 고사(故事)에 관해 질문하기 위해서였다.

온정균이 바로 답을 말해준다. “그 이야기는 ‘장자’에 실려있습니다.” 여기까진 순조롭고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장자’가 뭐 그리 특별한 책도 아니잖아요. 업무가 많이 바쁘시겠지만 휴식 시간에 옛 서적도 조금 읽고 그러세요.” 이어진 온정균의 이 가벼운 말이 고위관료 영호분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말았다.

이 ‘언중유골(言中有骨)’ 사족에 기분이 상한 영호분은 어느 날 황제와 대화하다가 잠시 화제를 바꾸더니 시인 ‘온정균’을 험담한다. “온정균이란 자가 시 쓰는 재주는 조금 있는지 몰라도, 만나보니 덕(德)은 아주 형편없더라구요.” 시인으로 꽤 유명했지만, 이렇게 황제와 고위층의 블랙리스트에 오르고 말았으니 과거 합격은 요원해졌다. 이 소문을 접한 온정균도 관료 등용 희망을 접는다. 그는 후회하며 이렇게 읊조렸다. “회독남화로다, 만약 내가 일찍이 ‘장자’를 읽지 않았더라면, 이 불행도 없었을 것이다!”

시 분야에서, 온정균은 이상은(李商隱. 813~858)과 함께 ‘온이(溫李)’로 병칭되며 만당(晩唐. 825~907) 시대의 시인을 대표한다. 흔히 이상은의 시풍을 유미주의(唯美主義), 온정균의 시풍을 ‘염시(艶詩)’로 구분한다. 온정균이 ‘망강남(望江南)’ 등 화려하고 농염한 작품을 많이 창작했기 때문이다. 그는 사랑에 빠진 여성의 심리 묘사에 탁월했다.

물론 마치 일기장처럼 소소한 일상의 소회를 담아낸 작품도 많이 남겼다. 날이 갈수록 국운(國運)이 쇠하고 개인적으론 안정된 직업을 소망하기조차 힘들어지자, 비교적 자유분방하게 생활하며 오롯이 창작에 매진했다.

‘꼭두새벽에 기상해 수레 움직이는 소리 들으니(晨起動征鐸), 고향 생각에 나그네는 서럽고(客行悲故鄕). 객사의 새벽 달 아래 닭 울면(鷄聲茅店月), 찬 서리 가득한 작은 다리 위에 행인 발자국 새겨지는데(人迹板橋霜).’ 그의 대표작 ‘상산조행(商山早行)’ 도입부다.

중년 이후라면, 세평이나 이런저런 구속에 갇힌 거짓 인격체가 아닌, 진짜 자신의 내면 응시가 중요해진다. 바로 이 각성에서 출발한 내면 속삭임의 늦가을 분위기와 차가운 고요가 이 작품에 가득하다.

문인이면서도 예인(藝人)에 더 가까운 삶을 살았던 온정균의 섬세한 작품 몇 편을 간간이 휴식 시간에 감상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현대인에겐 다양한 직업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지만, 누구라도 온정균이 겪은 고독, 상실감 등 불편한 감정 상태로 내몰리는 냉혹한 삶을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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