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공인인증기관 4곳이 금융결제원과 카카오뱅크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했다. 이들이 사업자용 인증서를 무료 혹은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며 가격차별과 부당염매행위를 유발했다고 주장했다. 전자서명법 개정 이후 전자서명인증 시장 경쟁이 촉진되며 시장 갈등이 지속 심화하고 있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구 공인인증기관 한국무역정보통신, 한국정보인증, 한국전자인증, 코스콤 4곳은 공정위에 금결원과 카카오뱅크를 불공정거래행위로 신고했다. 4개 사업자가 1999년부터 건당 10만원에 발급하던 사업자용 인증서를 금결원과 카카오뱅크가 조달청 나라장터에 각각 4400원, 무료로 제공하기로 하면서 전체 인증 시장이 붕괴 위기에 직면했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금결원과 카카오뱅크는 지난 10월 7일부터 조달청 자세대 나라장터를 이용하는 사업자를 대상으로 인증서 판매를 개시, 기존 인증서 발급 가격인 4400원과 무료에 인증서를 발급하기로 했다.
인증업계는 이러한 행위가 '가격차별'과 '부당염매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가격차별은 부당하게 거래지역 또는 거래상대방에 따라 현저하게 유리하거나 불리한 가격으로 거래해 시장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다. 부당염매행위는 정당한 이유 없이 공급에 드는 비용보다 현저히 낮은 가격으로 계속 공급하는 등 시장 경쟁을 제한하는 것을 의미한다.
조달 인증 시장은 인증업계 주요 수익창출구이기도 하다. 업계는 사업자인증 시장 규모를 연간 1000억원 규모로 추산, 이 중 57%인 570억원 가량(조달업체 57만개, 인증서 단가 10만원 기준)을 조달청 나라장터 관련 시장으로 추산한다. 공인인증서 폐지 이후 사업자인증 시장을 주요 수익원으로 삼아온 업계에 무료 가격 정책은 타격일 수 밖에 없다.
인증업계 관계자는 “공인인증서 폐지로 소비자 선택권은 넓어졌으나, 영세 사업자들은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며 대기업과 비영리기관들만 인증 사업을 지속 영위할 수 있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2020년 전자서명법 개정 이후 전자서명인증시장 경쟁이 촉발되며 갈등도 심화하는 모양새다. 시장 개방으로 이용자 선택권 보장, 편의성 향상 등 다양성이 확보됐지만 경쟁이 심화하며 갈등의 골도 깊어지고 있다. 실제 카카오뱅크가 지난 4월 사업자 인증서를 출시하며 은행가입자를 대상으로 무료 발급을 실시하자 한국무역정보통신과 한국정보인증, 코스콤은 즉각 항의 공문을 제출하고 면담을 요청했으나 답변받지 못한 상태다.
반면 이는 전자서명법 개정 취지에 걸맞은 자연스러운 시장 흐름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금융결제원 관계자는 “폐쇄적으로 유지되며 높은 가격 정책을 유지하던 인증시장이 전자서명법 개정에 따라 개방되기 시작했고, 정부와 공공기관도 사용자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하기 위해 전자서명인증 확산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한동안 시장 갈등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금결원과 카카오뱅크 외 다수 시중은행도 가격 무료 정책으로 조달청 사업자인증서 공급에 참여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 판단에 따라 내년 초 정식 오픈 예정인 차세대 나라장터 인증수단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정다은 기자 dand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