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장호의 사자성어와 만인보] 만취일수(萬取一收)와 사공도(司空圖)

2025-07-07

만약 능숙한 시인이라면, 다채로운 자연이나 일상의 이런저런 순간을 단 하나의 어휘나 문장으로 응축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시학(詩學) 용어 가운데 ‘함축’은 바로 이 기교를 말한다.

이번 사자성어는 만취일수(萬取一收. 일만 만, 가질 취, 한 일, 거둘 수)다. 첫 두 글자 ‘만취’는 ‘만 가지를 취하다, 즉 세상 만물의 변화와 모이고 흩어지는 규칙을 세밀히 관찰하다’란 뜻이다. ‘일수’는 ‘하나로, 즉 최대한 간략히 거두어들이다’란 뜻이다. 이 두 부분이 합쳐져 ‘뭔가를 세밀히 관찰하거나 충분히 사색한 후, 가장 함축적인 표현으로 개괄하다’란 의미가 만들어졌다.

‘만취일수’는 중국 시인 겸 미학자(美學者) 사공도(司空圖. 837~908)의 ‘이십사시품(二十四詩品)’에서 유래했다. ‘이십사시품’에서 사공도는 ‘함축’의 정의를 ‘천심취산(淺深聚散), 만취일수’로 마무리한다. 비슷한 표현으로 이소총다(以少总多)가 쓰인다.

사공도는 당나라 말기에 지식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자(字)는 표성(表聖)이다. 33세에 진사과(進士科)에 급제하고 관료 생활을 시작했다. 순조롭게 관료 생활과 시작 활동을 병행했으나, 43세에 ‘황소의 난’이 발생했다. 상황이 계속 악화되더니 반란군 세력에 의해 수도 창안(長安)이 함락되는 지경에 이르자, 그도 서둘러 고향으로 피난했다.

이후 매우 어수선한 시절이 계속됐고, 50대 초반부터는 주로 은거하며 생활했다. 당나라 마지막 황제 애제(哀帝)가 살해됐다는 소식을 접한 후, 곡기를 끊고 향년 72세로 세상을 떴다.

그의 시풍은 비교적 담백하다. ‘중추(中秋)’ 등 주로 자연에 둘러싸여 은거하는 생활의 소소한 즐거움을 노래한 시를 남겼다. 송나라 문장가 소식(蘇軾)은 그의 시에 대해 ‘전쟁이 많은 시기에 살았는데도 오히려 작품이 고아하고 태평성세의 분위기마저 느껴진다’라고 호평했다. 청나라 시인 왕사정(王士禎)도 그의 시를 높이 평가했다.

사공도는 ‘이십사시품’ 저술 등 시론(詩論)에도 밝았고, 높은 경지의 저술들을 남겼다. 즉 요즘 기준으론 평론(評論)과 비평 분야에서 매우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

시를 넘어, 문인화(文人畵) 영역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이십사시품’의 원래 제목은 그냥 ‘시품(詩品)’이었다. 웅혼(雄渾), 충담(沖澹), 섬농(纖穠), 침착(沈着), 고고(高古), 전아(典雅), 세련(洗鍊), 경건(勁健), 기려(綺麗), 자연(自然), 함축 등 24개 소제목에 짤막한 설명을 운문 형식으로 기록하였기에, 훗날 제목 앞에 숫자 24가 추가되어 ‘이십사시품’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이십사시품’ 가운데 두 번째에 배치된 ‘충담’은 도연명(陶淵明)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고요하고 깨끗한’ 분위기를 말한다. ‘고고’는 ‘고상하고 예스러운’ 분위기, ‘경건’은 ‘굳세고 강건한’ 분위기를 말한다.

이처럼 사공도는 문인들이 시 창작과 평론에 참고할 수 있도록 다채로운 의경(意境)과 풍격을 마치 한 편 시처럼 개괄해 제시했다. 주관적인 소제목들 하나하나를 일종의 질문으로 가정하고서, 이어지는 설명을 읽어보면 흥미로운 체험을 하게 된다. 놀랍게도 머리 속에 따로따로 선명히 구별되는 이미지가 그려지기 때문이다.

8글자씩 6묶음인 운문 형식이라 낯설지만 일부 인상적인 문구들은 기억에 꽤 오래 머문다. 어쩌면 바로 이 특징이 소제목을 빼고 총 1,152자로 이루어진 ‘이십사시품’의 쓰임이요 숨은 매력이 아닐까 싶다.

이 강점을 극대화하기 위해 ‘이십사시품’과 그림을 결합한 서화첩(書畵帖) 형식도 꾸준히 제작됐다. 조선 후기에 정선(鄭敾)이 그림을 그리고 이광사(李匡師)가 글씨를 쓴 ‘이십사시품서화첩’이 유명하다.

순간적 충동을 추진력으로 삼아 작품을 빚어내는 창작 영역과, 상대적으로 차분한 비평 영역은 다를 수밖에 없다. 비평은 아무래도 분석 영역이고 냉철함이 필수다.

‘이십사시품’을 다른 이의 저술로 보는 견해도 존재한다. 사공도가 다른 재능이 요구되는 영역을 절묘하게 결합했기 때문일 수 있다. 비록 한 시인의 내면에서 일어난 기적이지만, 다름의 공존은 늘 신선한 자극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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