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utter] "디지털 공간은 아동보호 사각지대" 범죄에 노출된 아이들

2024-10-09

초록우산×더버터 공동기획

온라인 세이프티 프로젝트 ①

열다섯 살 준우(이하 가명)는 한동안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같은 반 친구가 쉽게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호기심에 시작한 온라인 도박이었다. 평소 부족했던 용돈을 조금 채우자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간단한 게임으로 돈을 벌다 보니 재미가 들었다. 처음엔 운이 좋았지만 점점 돈을 잃으면서 약이 올랐다. 모아둔 용돈 100만원을 잃고 말았다. 지금은 도박 중독 치료를 받고 있지만, 여전히 충동을 참기 어렵다.

중학생인 수아는 인스타그램에서 모르는 남성에게 DM(다이렉트 메시지)을 받았다. 친근하게 답장을 하고서 몇 개의 메시지가 더 오갔다. 시간이 지나자 상대는 ‘얼굴을 보고 싶다’며 영상통화를 하자고 했다. 용돈을 주겠다며 점점 수위 높은 사진과 영상을 요구했다. 고민 끝에 사진을 보냈고, 이내 후회했지만 상황을 돌이킬 순 없었다. 상대는 사진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하면서 더 무리한 요구를 했다.

두 사례 모두 최근 아동보호전문기관을 통해 초록우산에 접수된 아동 피해 사건이다. 김재홍 초록우산 아동옹호본부 옹호사업팀 과장은 “최근 성범죄·도박·마약 등 온라인에서 아동들이 피해를 본 사례 급증했다”고 말했다.

10대 청소년의 하루 평균 인터넷 사용 시간은 8시간. 평균 수면시간(7.2시간)보다 길다. 아이들의 일상은 온라인과 연동돼 돌아간다. 디지털 공간에서 친구를 만나고, 공부하고, 영화와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을 본다. 이런 온라인 공간에 ‘어린이 보호구역’은 없다. 낯선 사람이 접근해 아동에게 말을 걸고, 도박과 마약을 권하는 일마저 아무렇지 않게 일어난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방

“어디 살아?” “속옷은 무슨 색이야?” 지난 5일 기자가 ‘같이 수다 떨 사람?(09년생 여자)’라는 제목으로 오픈채팅방(공개대화방)을 개설하고 받은 메시지다. 10분 만에 15명이 대화를 걸었다. 상대방 연령은 최고 38세까지 다양했다.

누구나 익명으로 참여할 수 있는 채팅방에서의 대화는 범죄의 영역으로 쉽게 넘어간다. 이를 막기 위해 정부는 휴대전화 인증, 대화 저장, 신고하기 기능을 갖추지 않은 오픈채팅 플랫폼을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2021년에는 이른바 ‘N번방 방지법(전기통신사업법 및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시행돼 일정 규모 이상 플랫폼은 불법촬영물 필터링 기술 적용이 의무화됐다. 다만 일대일 채팅방은 사생활 침해를 이유로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문제는 아동 대상 성범죄가 주로 일대일 채팅을 통해 일어난다는 점이다. 보통 오픈채팅방에서 대화를 하다가 친밀감이 형성되면 일반 채팅방으로 공간을 옮기기 때문이다. 2022년 여성가족부 조사에 따르면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발생한 성범죄의 33.7%가 온라인 채팅에서 시작됐다.

중학생 하영이는 오픈채팅방에서 만난 성인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부모님과 싸우고 홧김에 가출한 날 채팅으로 알게 된 사람이었다. 지금은 병원에 입원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김재홍 과장은 “가족과 싸우거나 힘든 일이 있으면 채팅에 접속해서 감정을 토로하는 아이들이 많은데, 이때 누군가가 잘 들어주면 쉽게 마음을 열어 버린다”고 말했다. 이어 “사람들은 방임된 아이들의 이야기인 줄 알지만, 평범한 아이들도 온라인 범죄에 쉽게 노출되고 있다”고 했다.

온라인에도 ‘어린이 보호구역’을

청소년들의 온라인 도박 중독도 심각한 문제로 꼽힌다. 경찰청이 지난해 9월부터 올해 3월까지 실시한 사이버도박 특별단속에서 적발된 2925명 중 1035명(35.4%)이 청소년이었다. 가장 어린 검거자는 9세였다.

온라인 도박 사이트의 문턱은 매우 낮다. 청소년들이 무료로 영화, 드라마, 스포츠 경기를 보기 위해 자주 찾는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에 배너광고가 도배돼 있다. 휴대전화에는 수시로 도박 사이트 접속을 유도하는 스팸문자가 온다. 터치 한 번이면 접속할 수 있다. 가입 시 요구하는 성인 인증 절차도 허술하다. 통장 계좌번호를 사이트에 등록해 돈을 베팅하기도 쉽다.

어른들이 손쓰지 못하는 사이 도박을 접하는 연령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 2022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 초중고 학생 중 도박 경험이 있는 비율은 38.8%였다. 도박을 처음 경험한 연령은 평균 11.3세로, 2020년(12.5세)보다 낮아졌다. 김승현 초록우산 아동옹호본부장은 “오프라인에서 낯선 사람이 아이를 붙잡고 성적인 이야기를 하거나 도박을 유도하고, 마약을 권하는 일이 흔히 일어난다면 엄청난 논란이 될 것”이라며 “온라인에서는 이런 일이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는데도 여전히 안전장치에 대한 논의는 지지부진하다”고 말했다.

초록우산은 아동의 디지털 안전망 논의를 공론화하기 위해 올해부터 ‘온라인 세이프티(Online Safety)’ 캠페인을 진행한다. 온라인 서명 운동을 벌이는 동시에 아동 당사자의 의견을 모으고 있다. 김승현 본부장은 “우리 사회는 N번방·딥페이크 사건처럼 문제가 터지면 땜질식으로 법안을 개정하고 처벌을 강화하는 식으로 온라인 범죄에 대응하고 있다”며 “온라인에서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을 전 사회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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