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험생 98%가 ‘2류’가 된다면…중국판 수능 가오카오의 그늘

2025-06-06

7일부터 대입 시험 가오카오 실시

1335만명 응시…9만명만 명문대

취업경쟁 격화 속 ‘공정’과 ‘차별’

중국에서 ‘인생대사(人生大事)’라고 불리는 몇 가지가 있다. 먹고 마시는 일, 결혼, 집 구매 등과 함께 중국판 수학능력시험인 ‘가오카오’는 대표적 인생대사로 꼽힌다.

올해 가오카오가 7일부터 시작된다. 가오카오는 매년 6월 7~8일 치러지며 지역에 따라 9일 또는 10일까지 열리기도 한다. 중국 교육부에 따르면 올해 응시생은 1335만명으로 역대 최다였던 지난해(1342만명)보다 7만명 줄었다. 응시생 감소는 2018년 이후 7년만에 처음이다. 2006~2007년 출생아 수가 전년도보다 감소한 것이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응시생 수는 줄었지만 가오카오 열기는 올해도 뜨겁다. 융허궁 등 사찰은 한 달 전부터 자녀의 고득점을 비는 부모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홍콩 인기가수 재키 청(장학우)은 이달 6~8일 중국 남부도시 둥관에서 콘서트를 계획했다가 학생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지적에 8월로 연기했다.

가오카오 당일 아침에는 많은 학부모들이 행운을 의미하는 빨간 색 옷을 입고 고사장까지 자녀를 배웅한다. 치파오의 ‘치’가 ‘깃발을 펼치자마자 승리를 얻는다’(旗開得勝)는 성어를 연상케 한다며 치파오를 입고 응원하는 것도 유행이 됐다. 특히 아버지나 남교사가 여성 치파오를 입어야 효과가 좋다고 여겨진다. 후배들의 용춤, 사자춤 공연으로 수험생을 격려하는 학교도 있다.

반면 시험이 끝나면 학생 자살도 속출한다. 가오카오 시즌에는 인민일보 등에 ‘대학입시는 인생대사지만 성공은 입시 한 번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라는 내용의 기고도 실린다.

가오카오에 쏠린 관심 뒤에는 중국의 입시와 취업경쟁 현실이 있다. 중국 전역의 대학입학 정원은 약 450만명으로 수험생 900만명이 대학 문턱조차 못 넘는다. 3000개 넘는 대학 가운데 ‘985대학’, ‘211대학’으로 불리는 100개 남짓한 명문대 정원은 대학 전체 정원의 2%에 불과하다.

985대학과 211대학이라는 명칭은 ‘1998년 5월’ 장쩌민 당시 국가주석이 발표한 ‘985공정’과 1990년대 중국의 21세기 100대 명문대학 육성 계획인 ‘211공정’에서 따온 명칭이다. ‘985’와 ‘211’은 대중에게 ‘명문대’를 일컫는 말로 각인됐다. 985 또는 211대학, 그 밖의 유명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학생들은 ‘이본(二本)학생’이라 불린다. ‘2류’ 혹은 ‘2급’ 학생이라는 뜻이다.

중국에서도 대졸 인구가 증가하고 청년 취업난이 격화되면서 학력 차별 문제가 커다란 사회적 이슈로 부상했다. 졸업 시즌이 되면 SNS에서는 ‘2류 대학’ 학생이 겪는 열악한 교육환경에 대한 불만과 차별 경험을 토로하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985·211이 아니면 원서를 받아주지도 않더라” “취업박람회 입장도 제한됐다” “2류 대학 진학은 인생의 수치” 등의 글이 올라온다.

반면 ‘명문대생 우대는 합당하다’는 주장도 부쩍 강해졌다. 한 연구에 따르면 1980년대에는 베이징대 신입생의 30% 이상이 농민 출신이었지만, 2000년대 이후 베이징대 신입생 중 농촌 호적을 가진 비율은 10~15%로 감소했다. 온라인에서는 “대도시 학생들이 농촌 학생보다 똑똑한 것은 사실”이라며 결과를 정당화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게 들린다. 소위 ‘2류’ 학교 학생들도 “분위기부터 나쁘다. 아무도 수업에 집중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올리기도 한다.

중국 정부는 2010년대 중반부터 ‘985공정’, ‘211공정’이란 표현을 쓰지 않고 있다. 하지만 지원은 ‘1류 학교’에 몰아준다. 펑파이신문에 따르면 산시성 내 명문대인 시안교통대의 2024년 예산은 160억9800만위안(약3조원)으로 성내 ‘2류 대학’의 10배이다.

선전의 한 대학에서 강의하는 황덩 작가가 2020년 낸 책 <나의이본학생>은 엘리트 육성을 중시하는 중국 교육제도에서 ‘2류’로 분류된 학생들의 삶을 조명한 책이다.

책에는 한 달에 4~5일의 휴가와 약간의 수입이 있는 직장을 찾고 연애를 하고 싶어하지만 ‘2류’라는 꼬리표 때문에 좌절을 겪고 정신질환을 앓은 학생이 등장한다. 여학생들은 꿈을 펼쳐 보지 못하고 부모가 소개해 준 사람과 결혼하게 될 것이라는 불안감에 더욱 시달린다. 웨이터, 택배 분류원, 경비원 등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구직을 시도해다 학력을 묻지 않는 공무원 시험에서 희망을 보기도 한다.

황덩은 자신의 학생 70% 가량이 농촌 출신이라며 등록금 빚과 도시 생활비, 가족 부양비 등으로 사회에 본격적으로 발 딛기 전에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중국청년보는 “‘이본학생’이야말로 중국 일반 대학생의 대다수를 차지한다”고 평했다.

중국 정부는 가오카오 위주의 대학입시 제도를 손질하고 싶어한다. 과도한 경쟁을 부추겨 학생들의 신체·정신 건강을 위협한다는 점이 특히 문제라고 꼽힌다. 하지만 마땅한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공정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 여론은 최근 불평등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을 보인다. 지난달 29일 하버드대 졸업식에서 케네디스쿨(공공정책대학원) 졸업생 장위룽이 중국 유학생 최초로 졸업생 대표 연설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중국에서는 장위룽의 배경을 지적하며 되려 분노하는 여론이 일었다. 장위룽은 고등학교는 영국에서 다녔으며 미국 듀크대에서 학부를 시작했다. 아버지는 국무원이 승인한 비정부기구 고위 임원이다. 장위룽을 교육 혜택을 누린 전형적인 특권층으로 본 것이다.

가오카오는 불평등 만연한 세상에서 ‘공정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처럼 인식된다. 문화대혁명으로 가오카오가 폐지됐던 1966~1976년에는 정치 성향, 계급 출신, 노동 경력 등을 기준으로 추천해 대학이 결정됐다. 대다수 중국인은 당시의 입시 제도가 불공정하고 부당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자녀가 이번에 가오카오에 응시한다는 한 베이징 시민은 “자녀가 고등학생이 되면 과외 권하는 전화가 하루 10통씩 걸려온다. 비용은 시간당 2000위안(37만원)인 것도 있다. 대도시 학생들 대부분 과외를 한다”며 불평등이 심한 상황에서 가오카오도 결코 공정할 수 없다고 전했다.

가오카오를 비롯해 교육 불평등에 주목하는 이들은 한국 사례도 중요하게 보고 있다. 사회학자 오찬호씨가 2013년에 쓴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가 지난 2월 중국에 번역 출간됐다. 신경보는 “동아시아 교육 모델의 완고한 일면을 다른 시각에서 살펴볼 수 있도록 한다”고 소개했다.

서평 사이트에는 “10년도 더 전에 쓴 책이 오늘날 중국 현실에 유효하다” “마침내 누군가 청년들이 구직에 겪는 어려움과 높은 실업률의 진실, 그리고 사회의 후진 구조의 인과에 대해 설명해줬다”는 등의 평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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