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범 교수의 세상을 보는 눈

[동양뉴스] 인생은 나그네길. 삶(生)은 여행의 시작이고 죽음(死)은 여행의 종착역이라 한다. 우리의 삶은 한번 왔다가 반드시 본향(本鄕)으로 돌아간다, 파랑새의 저자인 벨기에의 모리스 마테를 링크(1862~1949)는 “인생은 한 권의 책이요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매일 그 한 페이지를 창작”한다 하였다. 간 혹 지난 세월의 책장을 넘기며 삶의 가치(價値)의 변화 속에서 우리는 하루하루 기적(奇蹟)을 맞보며 매일 한 페이지씩 책을 쓰고 있는 것이다. 결코 남이 써줄 수 없는 재판(再版)이 불가능한 초판(初版)의 일회적(一回的)인 삶 속에서 명작(名作)과 졸작(拙作)의 운명(運命)이란 종이 한장 차이가 아닐까. 지난 세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보다 마음에 보이지 않는 죄를 짓고 살았는지, 나의 계획, 나의 판단, 나의 책임 아래서 부끄러움은 없었는지 진정한 나의 삶을 즐기고 살아왔는지 질문을 던진다. 물론 삶에 있어 자신(自身)보다 소중(所重)한 것이 없으며 존엄(尊嚴)한 것이 없으리라 하지만 한번 밖에 쓸 수 없는 우리의 인생이란 책에 명작(名作)과 졸작(拙作)을 논(論)하기 앞서 진정한 가치의 삶 속에 신념(信念)과 언어(言語)가 살아있는지 한 번 돌이켜보자.
인생은 짧다. 시간(時間)은 멈춰서 우리를 기다리지 않는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시간은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의 흐름은 이처럼 평범(平凡)한 이치(理致)를 담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지성(知性)과 감성(感性)을 무시하며 극단적(極端的) 흑백의 논리(論理)속에 시간의 존재(存在)가치를 망각(忘却)한 체 값있게 인정(認定)하지 않는다. 자기개발(自己開發)을 위해서도 많은 시간을 투자(投資)하는 것은 인생의 길잡이를 찾아 나서는 것이다. 만약 우리에게 삶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예측하는 사고(思考)가 존재(存在)한다고 생각되면 반드시 오늘을 잡아야 한다. 지금 이 시간 할 수 있는 일을 내일로 미루어서는 안 된다. 오늘이 없으면 내일도 없기 때문이다. 주어진 시간 안에서 배움에 깊이를 더하면 인생은 풍요해지고, 명상(瞑想)은 지혜(智慧)를 늘리고, 사람을 만나 유익(有益)한 말을 나누면 좋은 길이 열리고, 자선(慈善)을 베풀면 덕(德)이 쌓이듯이 소중한 시간을 잡아야 한다. 나무는 그 열매로 알려지듯 우리는 시간 속에 주어진 각자(各自)의 노력(努力)으로 평가(評價)되는 것이 인생(人生)이기 때문이다.
인생 그 삶의 변화. 세월 속에 우리는 시행착오(試行錯誤)를 겪으며 수 많은 시간 동안 마음의 밭을 갈고 일구어간다. 농부(農夫)가 밭을 갈고 일구는 것은 좋은 수확(收穫)을 얻기 위한 노력의 한 과정(過程)일 것이다. 이는 자연의 어떤 어려움 앞에서도 포기(抛棄)하지 않는 어리석은 시도(試圖)일지 모르겠지만 끊임없이 경주(競走)하는 이유는 겸손(謙遜)하면서도 소박한 꿈을 이루기 위함일 것이다. 삶에 있어서 선택(選擇)이란 결코 일시적(一時的) 일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각자 주어진 환경(環境)과 여건(與件)에 따라 수용(受容)하는 모양(模樣)과 색깔은 다른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스스로 자기 자신(自身)을 가장 잘 알 것 같아도 잘 알지 못하는 것이 인간(人間)이기 때문이다. 불완전(不完全)한 삶 속에서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처럼 답답한 일은 없다. 그렇기에 자신과의 관계(關係)에서도 스스로 논쟁(論爭)과 시비(是非)를 가리려 하는 것이 아닐까. 일상생활 속에서 너무 많은 상황(狀況)과 조건(條件)에 부합(符合)하게 일을 만들지 말자 일에서 빠져나오려 해도 피할 길이 없어지기 때문에 일이 많으면 항상 실수(失手)가 따른다. 일과 함께하는 아름다운 공존(共存)의 삶을 꿈꾸자.
우리는 행복(幸福)할 때 불행(不幸)을 잊고 불행할 때 행복을 잊는다. 이처럼 스스로의 삶에 대한 기준(基準)은 변하고 있다. 다시 말해 굴곡된 삶 속에서 나 이외에 다른 나로 바뀌는 자기혁명(自己革命)을 통한 끊임없는 새로운 가치(價値)에 변화를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지난 세월 추억은 시간(時間)에 묻고 아픔은 가슴에 담고 살겠지만 혹여나 가치의 기준(基準)점이 미완성(未完成)된 자아(自我)를 성취(成就)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道具)로 전락(轉落)되는 것은 아닐까. 나무는 그 열매로 평가되겠지만 세월 속에 변화(變化)한 올바른 가치(價値)의 형성(形成)은 사람을 평가(評價)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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