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스마트폰의 뒤를 이을 자는 누구인가

2024-07-05

※화학물질 규소(Si)를 뜻하는 실리콘은 ‘산업의 쌀’ 반도체의 중요한 원재료입니다. ‘실리콘밸리’처럼 정보기술(IT) 산업 그 자체를 뜻하기도 합니다. ‘김상범의 실리콘리포트’는 손톱만 한 칩 위에서 인류의 미래를 이끄는 전자·IT 업계 소식을 발빠르게 전하는 칸업 콘텐츠입니다. 더 많은 내용을 읽고 싶으시면 로그인해 주세요!

#평범한 뿔테 안경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한때 유행해 디자인이 낯이 익다. 그런데 이 안경, 오픈AI의 최신 인공지능(AI) 모델 ‘챗GPT-4o’를 탑재한 굉장히 똑똑한 녀석이다. 미국 스타트업 솔로스가 이달 출시 예정인 지능형 안경 ‘에어고 비전’이다. 카메라를 통해 사용자 시야를 그대로 인식하며, 외국어로 된 메뉴판을 읽어주거나 내비게이션 역할도 해준다.

#남성의 귀에 걸린 동그란 기계, 언뜻 보청기 같다. 여기에도 생성형 AI가 탑재돼 있다. 구글 자회사 ‘이요(IYO)’의 지능형 이어버드 ‘이요 원(One)’이다. 오백원짜리 동전만 한 이어버드에 내장된 마이크는 무려 10개. 사용자 명령을 제대로 듣고 정확히 수행하기 위해서다. ‘오디오 컴퓨터’를 표방한다. “화면은 없습니다. 그냥 말로 하세요”가 모토다.

생성형 AI는 업무·일상에서 혁신을 일으키고 ‘물리적 하드웨어’에 대한 상상력도 자극하고 있다. 올해 들어 AI를 탑재한 안경·이어폰·반지·배지 등 수많은 폼팩터(외형) 제품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 배경에는 이런 물음이 깔려 있다. “AI와 소통하고 이를 활용할 최적의 도구는 과연 스마트폰뿐일까?”

2007년 아이폰 등장 이후 17년간 인류는 스마트폰에 완벽하게 적응했다. 그래서 얼마나 ‘번거로움’을 요구하는 기계인지 종종 잊고 산다. 주머니에서 기기를 꺼내고, 잠금을 풀고, 애플리케이션(앱)을 열고, 명령어를 입력하는 등 정말 많은 자잘한 행동과 주의 집중이 필요한데도 말이다.

AI는 스마트폰이 수반하는 숱한 번거로움을 걷어내줄 수 있을까. 현재 유력한 대체품은 ‘지능형 안경’이다.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창업자는 “5년 후에도 스마트폰이 AI를 구현하는 가장 유용한 폼팩터일지 의문”이라며 “사용자가 처한 상황을 파악해 일상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AI가 적용된 ‘안경’ 같은 새로운 폼팩터가 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증강현실(AR)을 제공하는 안경 형태의 장치, 사실 새롭지는 않다. 공상과학(SF) 영화의 단골 소품인 데다 실제 상용화된 제품도 있다. 소비자 눈높이에 못 미쳐 빠르게 사라졌을 뿐이다. 2013년 구글이 ‘스마트글래스’를 내놓았는데 짧은 배터리 수명과 열악한 음성인식 때문에 2년도 못 가 단종됐다.

생성형 AI가 적용된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사용자 말(자연어)을 찰떡같이 알아듣고 적절한 해답을 내놓으며 10년 전보다 훨씬 똑똑해질 수 있다. 메타 ‘레이밴’이 대표적이다. 대형언어모델(LLM) ‘라마’를 기반으로 한 챗봇이 실려 있다. 외국어 간판을 읽고 식물 종류도 구분하며 거울을 보며 옷차림 조언을 받을 수도 있다. 영상 통화도 된다.

구글도 지난 5월 스마트글래스를 착용하고 AI 비서와 대화하는 장면을 공개하며 스마트글래스의 복귀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경전 경희대 빅데이터응용학과 교수는 “말(음성)로 기계에 명령을 내리면서 화면을 (스마트폰보다) 더 수월하게 보고자 하는 니즈(수요)는 분명 존재한다”며 “외향적인 세련됨도 갖추면서 프라이버시도 보호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고 말했다. 손이 자유로워지는 대신, 거추장스러운 장치를 얼굴에 항시 두르고 다니는 심리적 장벽을 넘어야 한다는 얘기다. 메타 레이밴은 그 기능보다도 실제 레이밴 선글라스를 닮은 유려한 디자인 덕에 더욱 주목받았다.

귀에 꽂는 웨어러블 장치도 여러 가능성 중 하나다. 이요 원 이어버드는 시끄러운 환경에서도 중요한 음성만 증폭시켜 받아들이도록 음성인식 기능을 극대화했다. 메타도 카메라를 탑재한 AI 이어폰 ‘카메라버드’를 개발하고 있다.

마치 “내가 스마트폰을 계승할 적임자”라며 경쟁하는 것 같다. 물론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유망주로 떠오른 AI 기기 스타트업이 ‘거품’으로 판명난 사례가 부지기수다. 애플 출신 개발자들이 차린 휴메인의 ‘AI 핀’이 대표적 사례다. 옷에 부착하는 배지 형태의 웨어러블 기기로, 마이크·스피커·카메라는 물론이고 이미지를 투사할 레이저 프로젝터까지 신용카드 크기의 작은 장치에 탑재됐다. 하지만 지난 4월 출시되자마자 동문서답만 늘어놓는 똑똑하지 않은 AI와 짧은 배터리 수명으로 인해 혹평 세례에 시달렸다.

스타트업 래빗의 ‘R1’도 손바닥에 쏙 들어오는 자그마한 하드웨어다. 사람들을 스마트폰에서 해방시켜주는 ‘주머니 속 동반자’라고 홍보해 선주문 10만건을 받는 대박을 터뜨렸다. 하지만 빨간 강아지 인형을 토마토로 착각하고, 음악을 틀면 음성인식은 먹통이 돼 노래를 멈출 수가 없는 사태를 낳는 등 숱한 오류를 내자 많은 리뷰어들은 “이럴 거면 스마트폰을 쓰겠다”고 결론지었다.

기업들이 AI 붐에 편승하려고 설익은 제품을 무리하게 내놓는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하지만 정보기술(IT)업계가 ‘빠른 실패’를 거듭하며 최적의 AI 폼팩터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들 웨어러블 기기는 당분간 스마트폰의 보조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다 어느 순간 AI 하드웨어의 발전이 임계점에 도달하면 전통적인 스마트폰에서 새로운 디바이스로 헤게모니가 넘어갈 것으로 보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음성의 중요성도 부각되고 있다. 스마트홈 솔루션업체 와츠매터의 김학용 대표는 “PC 시절 마우스·키보드가 스마트폰에서 터치로 바뀌었고 AI 시대에는 음성이 주된 인터페이스로 떠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초 국내 스타트업 브이터치가 AI 음성 대화 반지 ‘위스퍼링’을 공개한 바 있다. “시리야, 빅스비야”처럼 호출하지 않고도 즉시 명령을 내릴 수 있으며, 주위 소음을 배제하는 능력 역시 뛰어나다. ‘대충, 소근소근’ 말해도 AI가 사람 말을 원활히 알아듣게 설계한 것이다.

음성 인터페이스가 자리잡는다면 비즈니스 모델도 변혁이 일어날 수 있다. AI와 결합한 하드웨어로 ‘대규모 행동 모델(LAM)’이 일반화된다면 말이다. LAM은 AI가 인간의 패턴을 학습, 사용자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작업을 자동으로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스마트폰에서 일일히 여행 혹은 배달 앱을 켜고 최저가 서비스를 검색할 필요 없이, 말 한마디로 모든 검색 작업을 해내기 때문에 기존의 앱 기반 비즈니스 모델이 완전히 뒤바뀔 수 있다. 김 대표는 “카카오톡 같은 플랫폼 앱도 상당 부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며 “여러 군데 흩어져 있던 역할이 AI 에이전트로 다 넘어가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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