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즉시공 공즉시생’ 구마라습 스님을 만나다

2024-11-10

[우리문화신문=안동립 기자]

# 11일 차, 2024년 5월 18일, 토요일(전용 버스)

숙박 : 야커쑤 阿克苏华龙酒店 0997-6755999

기온 : 17°~35°(황사), 3시간 시차

이동 거리 : 305km

도로 물청소 차량이 다니고, 전기차가 많이 보인다. 일반도로 좌우로 나무를 심었는데 미루나무가 주종으로 밭을 만들어 물을 대고 5줄로 심었다. 큰 나무는 15~20m 정도 자랐고 나무와 나무 사이로 밭을 경작하고 사막의 바람과 먼지를 막아준다. 오아시스를 만드는 노력이 대단하다.

키질천불동 입장권을 사고 굴로 들어 가는데 입구 계단 아래에서 직원들이 물과 카메라를 못 가지고 가게 한다. 슬기말틀(스마트폰)은 입장이 가능한데, 카메라를 보관소에 맡기고 들어가라고 한다. 사진을 찍지 말라고 취한 조치인데. 참 어이없다. 카메라를 따로 보관하라니, 도록을 팔기 위하여 카메라를 압수하다니…. 참 어이없다. 후진국을 면하지 못하는 행위이다. 기분이 나빠서 도록을 사지 않았다.

○ 키질천불동(克孜尔千佛洞 17굴 벽화) : 구마라습(鳩摩羅什, 344~413년) 인도의 승려로 구자국에서 대승교 포교 활동을 벌였다. 인도말로 된 경전을 중국어로 번역한 ‘색즉시공 공즉시생’이 현재까지 내려오고 있다. 번역서는 《성실론》, 《십송률》, 《대품반야경》, 《묘법연화경》, 《아미타경》, 《중론》, 《십주비바사론》 등 74부 380여 권을 펴냈다. 401년 구마라습을 장안으로 데리고 가 국빈으로 대우하였다.

- 당나라 현장(玄奘, 602~664년) 법사와 신라 혜초(慧超, 704~787년) 스님, 당나라 고선지(高仙芝) 장군이 안서절도사로 서역 원정길에 사마르칸트를 공격하기 위하여 이곳을 들렀다. 이후 탈라스강 전투(751년)에서 이슬람 연합군에 패했다.

- 27호 굴 : 5세기 수, 당시기에 만들어졌다. 불경 책을 보관한 곳이다. 89개의 작은 석불이 있었다. 벽화 그림은 입체로 인도풍으로 그린 것이다. 비천상이 없는 것이 이 지역의 특징이다. 국가에서 그린 것이다. 본존불이 있었는데 사라졌다. 지진으로 부처상과 벽화가 무너졌다. 사암이라 살살 문지르면 파여 손가락 자국이 있다. 13~14세기에 이슬람이 들어오면서 훼손되었다.

- 32호 굴 : 5세기 위진남북조 때 조성, 본존불이 없다. 뒤쪽 회랑 굴이 있다. 정면 벽면에 구멍은 나무를 뚫어 입체적으로 수미산을 그렸다. 천장 벽화는 81개의 장면이 있었는데 지진으로 훼손되었다. 벽화는 수미산과 부처님 일생을 그렸다. 그림 중 돌로 부처님을 때리는데, 부처님 동생 디포타도이다. 그는 지옥 18층으로 내려갔다는 이야기의 그림이다. 꽃을 나누어주는 화동이 있다.

34호 굴 : 좌우에 있는 벽화는 원본이 아니고 독일, 일본, 이탈리아, 러시아 등지에서 가져간 것을 영인본으로 만들어 전시했다. 그림의 형태는 파키스탄풍으로 그려진 것이다. 천장화는 부처님의 여러 모습으로 그려졌다. 얼굴에서 눈 코 입이 없는데 14세기 이슬람의 침공으로 훼손되었다. 코발트블루 색은 터키석으로 그려져 있다. 비싼 물감이다. 회랑 뒷면에 와불상이 있었다. 천장이 검은 것은 양몰이꾼들이 불을 피워 훼손되었다.

- 38호 굴 : 보존이 잘 되었다. 악기가 제일 많이 그려진 곳으로 음악가들이 많았다. 본존불은 광배만 그려져 있다. 뒤로 들어가는 회랑에 그림이 있다. 보존이 잘되었다. 앞면 벽에 있는 부처님의 벽화는 훼손되었으나 무척 아름답고 규모가 크다. 본존불이 있었는데 훼손되었고 그림이 화려하고 보리수와 부처님 일생 화를 그렸다. 팬티 차림의 그림이 매우 정교하고 그려져 아름답다. 한쪽에 태양이 그려졌다.

- 8호 굴 : 굴의 크기와 그림의 크기가 다른 굴에 견줘 크다. 회랑 굴 그림은 독일에서 가져갔다. 천장화는 가사는 금으로 그렸는데 떼어갔다. 천장에 비천상과 앞면 벽면에 비파를 든 비천상 남녀가 있어 대승 불교이다. 본존불은 벽화로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부조가 있었다.

- 10호 굴 : 승방인데 긴 회랑을 통과했다. 스님들이 잠자는 곳. 방풍 방안이 잘돼 있다. 이 굴은 한낙연 기념관 전시장이다. 연변 조선족 한낙연 씨가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석굴 복원에 힘쓰다가 1947년 난주로 가는 비행기 사고로 죽었다. 벽면에 있는 글자는 한낙연이 60살에 쓴 글을 제자가 벽에 암각했다.

- 47호 굴이 16m로 가장 큰데 지진으로 무너지고 많이 훼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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