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철의 백세건강] 시아버지와 며느리

2025-06-17

백세인들은 대부분 배우자를 일찍 여의고 혼자 지낸다. 장수는 좋지만 삼사십년 넘도록 혼자 살아야 한다는 것은 고통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나이 든 여성은 자식들과 어렵지 않게 지낼 수 있지만, 남성 노인은 딸이나 며느리의 돌봄을 받으며 몇십년 함께 지내기는 여러모로 어렵다. 이런 가운데 홀로된 며느리와 서로 의지하며 100세에 이른 남성 장수인을 보면서 감동을 받은 사례가 있다.

경남 거창에서 만난 105세 정규상 할아버지는 일흔다섯이 넘은 며느리와 단둘이 살고 있었다. 모시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할아버지는 목소리도 정정했다. 며느리는 시아버지 성격이 불같아도 마음이 너그러워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열다섯에 시집와서 스물다섯에 청상과부가 된 며느리는 쉰다섯에 홀로 된 시아버지를 모시고 오십년을 살아왔다. 이런 상황에서는 으레 시아버지는 재취하고, 며느리도 재가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어떻게 두 분만 살 수 있었느냐?”고 물었다. 며느리는 “재가해 가버리면 시아버지가 너무 불쌍할 것 같아서”라고 했다. 할아버지 역시 “재취를 하면 며느리가 불편해져. 그래서 그냥 살았지 뭐!”라고 했다. 서로가 살면 얼마나 더 오래 살겠느냐고 참으며 살아온 것이 오십년이 넘었다. 그날 저녁 밥상을 올리는 며느리는 그냥 밥상만 들이는 것이 아니라, 상에 놓인 반찬들을 하나씩 설명하면서 식사를 권했다. “이 감자는 식어서 조금 딱딱해요. 꼭꼭 씹어 드세요. 이 나물은 좋아하시는 가지나물이에요….” 오십년을 한결같이 보낸 며느님의 정성은 그대로 감동이었다.

며느님은 “우리들은 이럭저럭 살다 가면 되니깐 걱정 말아. 젊은 사람들이 잘돼야 나라가 잘되지”라며 떠나는 젊은 조사원들을 격려했다. 며느리는 자신의 행복을 마다하고 늙어가는 시아버지를 한결같이 모셨고, 시아버지는 며느리의 안쓰러운 모습을 보살피며 평생을 살아온 것이다. 이분들의 안타까우나 아름다운 인생 이야기가 현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에게 어떻게 비칠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 이러한 것이 인생이고, 그래서 숭고하고 아름답기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런 모습이 점차 사라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처음 백세인 조사를 하던 2000년대 초반에서 이십여년이 지난 2020년대에 다시 찾은 백세인들의 모습은 전혀 다른 양상을 보여주었다. 우선 자식이 부모를 모셔야 한다는 의무감이 사라지고 있었다. 전통사회에서는 큰아들 큰며느리가 사명감으로 부모 봉양의 일차적 책임을 지고 있었는데 장자 상속 폐지는 이러한 관습을 사라지게 하고 윤리적 책임에서 벗어나게 했다.

이후 각종 노인복지 장기요양 등의 제도는 부모 부양 책임을 자식보다 요양보호사라는 사회적 돌봄체계로 바뀌었다. 장수인들을 찾아오는 가족들을 살펴보면서 변해버린 세태를 절절하게 엿볼 수 있었다.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자식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자식들이 훨씬 많음을 보게 됐다. 전부는 아니지만 찾아오는 자식 중에 며느리란 단어가 사라지고 있음을 보면서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노인 부양의 중추였던 자녀세대의 중책이 벗어지면서 가족 유대가 무너져가고 있었다. 가족 유대의 전통이 돈독하지 못한 일본의 경우처럼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노인 부양의 사회적 문제와 급증하는 무연고사(無緣故死)의 문제들이 이제는 남의 이야기가 아닌 듯해 두렵기만 하다.

박상철 전남대 연구석좌교수·전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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