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미대사가 ‘미국법 위반’ 자인한 이유

2024-10-21

지난 1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주미대사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조현동 대사는 “현지 채용 직원들의 급여가 DC의 최저임금보다 낮아 구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외교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인력 충원의 어려움을 호소한 말이다.

그런데 조 대사는 해당 발언을 하면서 “이 내용은 현안보고엔 빠져있다”고 했다. 그의 말은 사실 ‘대한민국 정부가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는 실토에 가까운 의미이기 때문이다.

법으로 정한 DC의 최저시급은 7월부터 17.5달러가 됐다. 1년 52주, 주 40시간 근무한다는 전제로 단순 계산한 최저연봉은 3만6400달러다. 이를 12달로 나눈 월급은 3033달러가 넘어야 한다. 대사관 현지 인력의 초급인 ‘3000달러 전후’보다 높다. ‘불법 구인’을 해야 하는 대사관엔 구멍이 뚫리고 있다. 당장 영사관 민원 창구 6개 중 1개가 폐쇄됐고, 남은 5개도 정년이 도래한 직원 2명을 설득해 간신히 운영하고 있다.

현지 변호사에게 자문했더니, 항소법원의 판결문을 제시했다. 주미 캐나다 대사관에서 근무하던 현지 채용자가 다친 뒤 캐나다 정부를 상대로 미국법에 따른 보상을 요구한 사건이었다. 1심 법원은 ‘외국 주권 면책법(FSIA)에 따라 미국법에 따를 필요가 없다’고 판결했지만, 항소법원은 이를 기각하고 ‘고용 관계에선 대사관도 미국법이 적용된다’고 결정했다. 변호사는 “판례가 있기 때문에 부당 노동 행위에 대한 소송이 제기되면 한국 정부가 책임을 지게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했다.

문제는 또 있다. 익명을 원한 외교관은 “대사관에선 민감한 정보가 다뤄진다”며 “예산 때문에 고급 인력을 뽑지 못하면 자칫 보안에 치명적인 인사가 의도적으로 유입하는 것을 막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토로했다. 실제 기자는 북한과도 동시 수교한 국가에 부임한 외교관을 취재한 적이 있다. 그는 차량 이동 내내 “말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 “비용 때문에 채용한 현지인 운전기사를 믿지 못한다”는 이유였다.

현지 채용과 관련한 비용 문제는 외교부 공관장 회의 때마다 제기돼 왔다. 그러나 매번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올해 국감에서도 야당의 한 초선 의원은 임금과 물가 등을 무시한 채 “해외 업무를 하는 공기업의 미국 채용자 중엔 1억 연봉자가 많은데 인도에서 채용한 직원의 연봉은 876만원에 불과해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며 고물가 지역에서 채용한 직원의 임금을 깎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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