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횡포

2025-09-14

미국 조지아주의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공장에서 벌어진 이민 단속은 단순한 법 집행이 아니다. 수백 명의 한국 기술자들이 수갑을 찬 채 끌려 나오는 장면은 동맹과 투자라는 화려한 수사 뒤에 숨은 제국의 오만을 드러낸다. 미국의 요청에 따라 대규모 투자를 이어온 한국은 깊은 충격과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은 불과 8년 만에 완공되었고 신전의 조각상들은 그 후 6년 만에 마무리됐다. 공사가 끝난 뒤 수천 명의 장인들은 어디로 갔을까? 파르테논 예술 감독을 맡은 조각가 피디아스는 곧 올림피아의 제우스 상 제작을 위해 떠났다. 파르테논을 설계한 건축가 이크티노스는 이후 아르카디아 산골 바사이로 옮겨가 아폴론 신전을 건립했다. 그러나 그와 함께 움직였을 장인들의 행방은 기록에 남아 있지 않다.

한 세기 뒤의 조각가 스코파스는 그리스 테게아에서 활동을 시작했지만, 곧 소아시아 카리아의 할리카르낫소스로 건너가 페르시아 제국 속주의 통치자 마우솔로스를 위해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히는 웅장한 무덤 건축을 맡았다(마우솔레움·장대한 영묘).

문명과 제국은 이동하는 숙련 노동자의 손끝 위에 세워졌다. 그러나 땀을 흘리며 돌을 다듬은 수많은 장인들의 역사는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그들의 유랑적 삶은 국수주의적 시선 아래 불안과 두려움에 가려졌다.

미국 전기차 산업의 미래를 떠받치는 조지아의 한국 기술자들이 법의 이름으로 하루아침에 “불법”이 되는 현실은 맹목적 이윤추구가 빚어낸 오류이다. 기술자의 비자 문제는 섬세한 협상을 통해 해결되어야 한다. 민주의 핵심은 국체의 자존이다. 참된 국민주권 정부라면 미국의 횡포에 대한 강력한 항의를 제기해야 할 것이다. 우리 국민도 떳떳하게 슬기롭게 항변해야 한다. 이런 조치는 이로울 게 없다는 것을 미국 시민들은 깨닫고 있다.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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