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육상 전설' 우상혁 "바 넘을 때마다 짜릿…죽을 때까지 높이뛰기 할래요" [이사람]

2025-11-12

“배우분들도 피와 땀을 흘려가면서 영화를 만들고 개봉 때 작품을 보면서 즐기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높이뛰기를 잘하기 위해 더 많은 땀을 흘리고 그 결과가 경기장에서 좋은 결과로 나오면 그만큼 즐거운 때는 없는 것 같아요.”

현재 한국 육상의 아이콘은 단연코 ‘스마일 점퍼’ 우상혁(29·용인시청)이다. 한국과 아시아권에서는 불모지와 같던 남자 높이뛰기 종목에서 세계 최강자 대열에 합류해 각급 국제 대회에서 빠지지 않고 시상대에 오르고 있다. 9월 16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실외)에서는 종아리 부상을 안고도 은메달을 차지하며 다시 한 번 국민들에게 크나큰 감동을 선사했다. 그의 도약 하나 하나가 한국 육상의 역사가 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에서 만난 우상혁은 “올 시즌은 진짜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고 해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후회 없는 경기들을 펼쳤다. 그래서 아쉬움보다는 만족이 더 큰 것 같다. 많은 응원을 보내주신 분들 덕분에 성공적으로 시즌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그의 말처럼 올해 우상혁은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올 시즌 3개 실내 대회(체코 대회 2m 31, 슬로바키아 대회 2m 28, 중국 난징 세계선수권 2m 31)를 우승했다. 실외에서도 4개 대회(왓 그래비티 챌린지 2m 29, 구미 아시아선수권 2m 29, 로마 다이아몬드 2m 23, 모나코 다이아몬드리그 2m 34) 정상에 올랐다. 종아리 부상을 안고 출전한 도쿄 세계선수권(실외)에서도 ‘절친’ 해미시 커(뉴질랜드)에 이어 은메달을 목에 걸었고 지난달 전국체육대회에서는 육상 남자 일반부 높이뛰기 종목에서 6회 연속이자 통산 열 번째 우승을 채웠다.

우상혁은 “부상 이전의 일곱 개 대회에서 목표를 잘 이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편안한 마음으로 준비하니까 오히려 회복 속도가 빨랐고 다시 시상대 위에 서는 좋은 결과가 나왔다. 다시는 부상을 당하면 안 되겠지만 이번 대회를 통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잘 대처하는 방법을 배운 것 같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한 우상혁과 육상의 인연은 ‘달리기’에서 시작됐다. 그저 뛰는 게 좋았던 11세 소년은 윤종형 당시 대표팀 코치(현재 신일여고 코치 겸 대전육상연맹 실무국장)의 권유에 따라 높이뛰기로 전향했다.

전향과 동시에 우상혁에게는 신체적 불리함을 딛고 일어나야 하는 ‘미션’이 주어졌다. 그는 높이뛰기 선수로는 작은 신장(188㎝)과 유년 시절 당한 교통사고로 갖게 된 짝발 등을 극복하기 위해 남들보다 더 많이 달리고 더 자주 날아 올랐다. 우상혁은 “운동을 시작한 후 오로지 높이뛰기만 생각하면서 살았다. 좀 더 높이 점프할 수 있도록 높이뛰기 외에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훈련에만 집중했다. 항상 반복되는 훈련 자체를 지루해 하는 선수들이 많다. 오히려 난 재미있었다. 지루한 싸움을 좋아하는 성격이 지금의 우상혁을 만드는 데 한몫했다”고 회상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우상혁은 2021년 열린 2020 도쿄 올림픽에서 4위를 차지하며 세계 정상급 점퍼로 성장했다. 당시 그는 2m 35를 넘어 1996년 이진택이 기록한 2m 34을 뛰어넘는 한국 신기록을 세웠다.

도쿄 올림픽 이후 세계 정상을 향한 우상혁의 본격적인 질주가 시작됐다. 2023년 항저우에서 자신의 두 번째 아시안게임 은메달을 목에 걸었고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실내외를 가리지 않고 매번 시상대에 올랐다. 지난해 파리 올림픽에서는 7위에 그치며 한 차례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만 올 시즌 부활하며 그의 전성기가 끝나지 않았음을 선언했다.

“큰 대회 성적은 마치 파도와 같다고 생각해요.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도 있는 거죠. 파리 올림픽 직후에는 힘든 시간도 있었지만 한 대회를 잘 못했다고 해서 마냥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파리에서 잘 못했던 부분은 피드백을 통해 바로잡았고 올 시즌 다시 좋은 성적을 거뒀습니다. 올림픽 경력 중 2016년 리우 때는 좋지 않았고 도쿄 대회 때는 좋았어요. 파리 때 좋지 않았으니 다가오는 2028 LA 올림픽에서는 반드시 좋은 성적을 낼 것입니다.”

우상혁은 한국 육상의 미래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고 고민한다. 한동안 한국 육상은 종목을 대표하는 스타 선수들을 발굴하지 못해 국민들의 외면을 받았다. 우상혁이 세계적인 선수로 급부상하며 전보다는 관심이 커졌지만 황영조·이봉주 등 선배들이 활약하던 때와 비교하면 현저히 적은 게 사실이다.

이 때문에 그는 나마디 조엘진(예천군청) 등 ‘무서운 후배’들의 성장이 반갑다. 나이지리아 출신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조엘진은 올해 5월 경북 구미에서 열린 아시아육상대회 400m 계주에서 한국 대표팀이 38초 49로 한국신기록을 세우며 사상 첫 금메달을 획득하는 데 힘을 보탰다. 7월에는 독일에서 열린 라인-루르 하계 유니버시아드에서도 같은 종목에서 38초 50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잇따라 국제 대회에서 성적을 내는 유망주가 나오면서 한국 육상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도 많이 달라졌다.

우상혁은 “매일 한국 육상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내가 후배들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 생각한다. (후배들이) 정말 잘하고 있고 결과도 좋았으니 지금처럼 자신들이 생각하고 있는 방향을 꿋꿋하게 밀고 나가면 더 좋은 기록들이 나오면서 한국 육상에 대한 국민들의 사랑이 더 커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고 했다.

우상혁은 다음 시즌 단 하나의 목표만 바라보고 있다. 바로 세 차례 도전에도 한 번도 가지지 못한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이다. 첫 도전이었던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는 10위에 그쳤고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와 2023년 항저우 대회에서는 각각 중국의 왕위와 카타르의 무타즈 에타 바르심에 밀려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우상혁은 “아시안게임에 세 번 나갔는데 지금까지 금메달을 따지 못했다. 이번에는 반드시 금메달을 목에 걸고 싶다. 일단 아시안게임만 보고 달릴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제20회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은 내년 9월에 열린다.

한국 육상 역사에 큰 획을 긋고 있는 ‘현재 진행형 전설’ 우상혁. 수많은 대회에 출전하고 숱한 좌절을 맛봤지만 그가 여전히 쉬지 않고 바를 넘고 있는 것은 자신이 하고 있는 종목이 바로 사랑하는 높이뛰기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바를 넘을 때마다 처음 이 종목을 시작한 열 한 살 때 표정이 나와요. 목표로 한 높이를 성공했을 때 짜릿하고 신나는 표정이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저는 높이뛰기를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생각 같아서는 죽을 때까지 운동장에서 높이뛰기를 할 수 있으면 소원이 없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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