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선 이후 정부조직법을 바꿔 일명 ‘기후에너지부’를 신설해 기후 정책이 에너지 정책을 주도하게 되면 우리나라 산업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민간 에너지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왔다. 에너지 산업 고도화에 발맞춰 전기위원회의 규제 기능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조언도 제기됐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23일 ‘대한전기협회 제41차 전력정책포럼’에서 “산업 정책과 에너지 정책의 결별은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이처럼 강조했다. 인공지능(AI)과 첨단 반도체, 2차전지 등 미래 먹거리 산업들이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요구하고 있어 산업과 에너지 정책의 유기적 연결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유 교수는 정책 일관성을 생각하면 기후·에너지 정책을 합치자는 주장도 틀린 말은 아니다”라며 “꼭 그래야 한다면 산업 정책 기능도 아우르는 부총리급 부처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탄소 중립 정책과 에너지 정책 모두 환경 규제 측면만 부각되지 않도록 경제 정책 기능을 함께 둬야 한다는 의미다. 조홍종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도 “에너지 정책은 경제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한다”며 “에너지 정책에서 기후가 앞서나가면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에너지 정책과 기후 정책을 융합해 온 유럽 국가들이 최근 산업 정책과 에너지 정책의 결합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도 유념해야 할 대목이다. 기후 정책에 초점을 맞춘 결과 전기요금이 비싸지고 제조업 경쟁력이 추락하자 뒤늦게 산업 정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실제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유럽연합(EU)의 ㎿h당 전력 가격은 200유로로 미국(75유로)의 2.7배에 달했다. 반면 미국을 100으로 놓고 측정한 영국·프랑스·독일의 AI 산업 경쟁력지수는 26.65~29.85점으로 중국(53.88)에도 밀렸다.
이에 독일은 기후·에너지·환경 정책을 모두 다루는 경제기후보호부(BMWK)가 그동안 탄소 중립에 너무 치중한 탓에 에너 정책 효율성이 떨어졌다고 보고 정부 조직 개편을 준비하고 있다. 2008년 에너지 정책과 기후변화 대응 기능을 합쳐 에너지·기후부(DECC)를 창설했던 영국은 2016년 DECC를 기업 정책을 포함하는 기업·에너지·산업전략부(BEIS)로 확대 개편했다.

재생에너지의 부상과 함께 에너지 산업이 복잡해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규제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진흥 정책과 규제 정책 사이에 이해 충돌이 있을 수 있는 데다 규제 정책 집행 과정에서 상당한 전문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물 정책은 한국수자원공사와 물관리위원회로, 방송·통신 산업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로 나뉘는 등 네트워크 산업은 대개 진흥과 규제 기능이 분리돼있다는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에 전기위원회가 있지만 규모가 작고 전문성·독립성이 약하다는 점이 문제다. 유 교수는 “다른 나라 사례를 봐도 프랑스를 제외하면 모두 에너지 소관 부처 산하에 독립적인 규제 정책 기관을 두고 있다”며 “영국의 가스·전력 시장 규제 당국 직원은 약 1900명이다. 지난 1년 사이에 추가 채용한 인원만 400명”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유 교수는 “반면 산업부 산하 전기위 공무원은 9명 뿐이다. 상당히 후진적인 구조”라며 “전기위를 가스 시장 규제 기능까지 포괄하는 차관급의 에너지규제위원회로 승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