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변은정의 ‘무시무종(無始無終) “청초한 슬픔의 방식으로 빚어낸 전통의 정수

2025-12-02

 ▲한국무용가 변은정의 다섯 번째 춤 이야기 ‘무시무종(無始無終)’

 지난달 23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명인홀에서 펼쳐진 이번 무대는 전북 무용계에 오랜만에 깊은 사색과 정갈한 미학을 선사했다. 실체 없는 작품들로 현장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는 현 시점에 변은정 무용가는 한국인의 오랜 정서인 ‘한(恨)’을 가장 청초하고 절제된 방식으로 승화시키며 한국 전통 춤의 진정한 가치를 되새기게 했다.

 ▲스승의 정통성 위에 세워진 ‘춤꾼’의 내면의세계 

 변은정 무용가는 스승이신 널마루 장인숙 선생님의 춤을 깊이 있게 수련하며 그 정통성을 계승한 동시에 자신만의 진지한 내면 세계를 춤으로 묵묵히 채워나가는 진정한 ‘춤꾼’의 길을 걷고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한 기교보다는 춤의 근본과 정신을 신중하게 탐구하는 예술가적 태도는 오랜 시간 집중해서 바라보게 만드는 힘을 지닌다.

 그녀의 레퍼토리에서 엿볼 수 있듯 전주 부채춤과 논개 충절무는 한국 전통 춤의 계보를 잇는 그녀의 확고한 뿌리를 보여준다. 특히 전주 부채춤에서는 청초한 외모에서 뿜어져 나오는 유려하고 섬세한 부채의 움직임이 고고한 아름다움과 우아함을 극대화하며 수많은 춤사위 속에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단아한 품격이 돋보였다.또한 충절무에서는 청초함 속의 강인함‘이 명확히 드러나 나라를 향한 충성심과 곧은 절개를 담은 춤이 부드러운 선 안에 묵직하고 절도 있는 힘을 숨겨 춤추는 이의 강직한 정신이 오롯이 묻어났다.

 ▲‘무시무종’ 절제된 언어로 승화시킨 담백한 미학 

 이번 무대에서 새롭게 올린 ‘무시무종’은 “춤은 시작이 있어도 끝이 없다”는 깊은 뜻을 담고 있으며 변은정 무용가의 현재 작품 세계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그녀가 춤을 단순한 기교가 아닌 삶 그 자체이자 끊임없이 정진해야 할 수행의 영역으로 인식하고 있음이 그려진다.전통을 기반으로 스스로를 채워나가는 진중한 자세가 창작으로 승화된 결과물인 것이다.

 그녀의 춤 ‘무시무종’은 벚꽃이 떨어지듯 섬세하고 긴 호흡 속에서 느릿하게 이어진다. 무용가 본인은 슬픔이나 고통과 같은 강렬한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출하는 대신 한복 소매 끝자락의 떨림 혹은 바닥을 쓸고 지나가는 발끝의 언어로 그 깊이를 담아냈다. 이러한 ’절제된 언어‘는 관객에게 오히려 더 깊은 울림을 선사하며 보는 이로 하여금 감정의 뿌리까지 고요하게 침잠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겉으로는 청초하고 정갈하지만 그 안에는 춤에 대한 흔들림 없는 신념과 진지함이 흐르고 있어 관객에게 깊은 사색을 전달했을 것이다.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한 위로와 성찰 

 그녀의 슬픔을 삭여 담아낸 담백한 미학은 한국 전통 무용이 단순한 춤이 아니라 한국인의 정신적 유산을 맑고 투명하게 담아내는 그릇임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우리 시대의 청중은 이토록 담백하고 깊은 슬픔의 방식 앞에서 과연 어떤 고요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지 그녀의 다음 무대가 더욱 기다려진다.

 글 = 강명선(무용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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