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대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 운동이 시작되었다.
이런 가운데 선거 운동 중 대통령 후보에 대한 테러, 암살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예전 같으면 ‘질 나쁜 농담’이라고 하겠지만, 최근 사례를 보면 그렇지 않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24년 대선 기간에 두 번 암살 위기를 겪었다.
출처-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는 2022년 선거운동 중 목숨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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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도 2023년 선거 운동 중 폭탄 테러가 발생한 적이 있다.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브라질 룰라 대통령도 2022년 대선 기간 갖가지 암살 시도에 시달렸다. 군사 정권 출신의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진보 후보인 룰라를 제거하기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했는데, 여러 가지 면에서 한국과 비슷하다.

군부 출신 보우소나루 대통령와 룰라 후보
출처-<연합뉴스>
1. 검찰의 표적 수사로 부정부패 기소
2. 대선 3개월 앞두고 1심 법원 유죄판결, 체포 수감
3. 대선 1개월 앞두고 선거법원에서 제38대 대선 출마 자격 박탈
4. 3년 뒤 무죄판결 후 제39대 대선 출마 선언
5. 룰라의 대통령 당선 후 취임 2개월 앞두고 룰라 암살 시도
6. 암살 실패하자 폭동 유발 후 계엄 시도
룰라의 파란만장한 정치 인생은 이전 기사를 참조하시라.
룰라의 정치 인생
1. 법치는 어떻게 민주를 죽이는가 :
죽이려는 극우, 죽지 않는 야당 지도자
2. 똑닮은 한국과 브라질 :
정적 제거를 위한 부정선거론과 비상계엄
3. 내란을 일으킨 극우 대통령 :
군부가 명령을 거부한 이유
4. 내란 척결은 지난한 과정이다 :
내란 주도층을 상대하는 자세
그런 점에서 룰라가 2022년 10월 대선을 코앞에 두고 어떤 암살 시도를 당했으며, 암살 음모는 어떻게 이뤄졌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모든 자료는 앰네스티 브라질 선거 감시 보고서 및 브라질 연방경찰 수사 기록을 참조했다.
드론으로 화학 물질 투척
2022년 6월, 룰라 소속당인 노동자당 유세장에 드론이 나타나 화학물질을 뿌리는 사건이 있었다. 현장에는 룰라의 측근이자 미나 제라이스 주 주지사인 알렉산드르 칼릴이 참석 중이었다. 체포된 범인은 ‘하수구 물과 오줌’이라고 주장했으나, 화학 물질의 정체는 밝혀지지 않았다.
알렉산드르 칼릴(왼쪽 두 번째)와
함께 유세 중인 룰라
출처-<게티이미지>
룰라 주변인 암살 시도도 이어졌다. 2022년 7월 이구아수 지역 노동자당 총무가 현직 교도관에게 총격 살해당하는 등 대선 기간에 룰라 지지자 4명이 보우소나루 지지자에게 살해당했다.
9월에는 노동자당 소속 의원 파울로 게레스가 유세 중 총격을 받았으나 살아남았고, 사브리나 베라스 주의원 후보 운전기사가 유세 중 총을 맞아 사망했다.
이 사건 후 룰라 선대본부는 노동자당 유세장에 방탄벽을 세우고, 입구에는 금속탐지기를 설치했다. 룰라 본인도 자택에 거주하는 대신 매일 숙박 장소를 바꿔가며 철통 경호 속에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룰라는 10월 1차 본선 투표, 2차 결선 투표에서 모두 승리해 대통령 당선자로 확정되었다. 그리하여 2개월 후인 2023년 1월 1일에는 룰라의 대통령 취임식이 열릴 예정이었다.
패배한 (당시) 현직 대통령 보우소나루는 룰라 암살 공작에 착수했고, 보우소나루 휘하 군인들이 그 공작에 참여했다. 이들이 ‘왓츠앱’ 등으로 나눈 메시지는 2024년 쿠데타 수사 결과 고스란히 드러난다.
‘블랙 옵스’ 부대가 움직였다
11월 12일 브라가 네토 브라질군 합참의장은 특수부대 ‘블랙 키드’ 지휘관 라파엘 데 올리베이라 소령, 보우소나루 군사보좌관 마우로 시드 중령을 불러 회의를 가졌다.
브라질군 합참의장 브라가 네토(왼쪽)와
보우소나루 대통령
출처-<게티이미지>

보우소나루의 군사보좌관 마우로 시드 중령
출처-
올리베이라 소령은 1,500명으로 구성된 특수부대 블랙키드의 중간 지휘관이었다. 블랙키드는 '블랙 옵스'라고 불리는 비공식 비밀 작전을 수행하는 부대였다. 특수부대원끼리 연락은 외국 명의 ‘대포폰’을 통해 이뤄졌다.

특수부대원들이 사용한 채팅방에 등록된
휴대전화 목록과 정보
출처-<브라질 연방검찰 수사 기록>
회의 내용은 남아있지 않으나 회의가 끝난 후, 보우소나루 군사보좌관과 ‘블랙옵스’ 지휘관이 한 ‘왓츠앱’ 채팅 대화는 검찰에 입수되었다.

출처-<브라질 연방검찰 수사기록>
지휘관 : 비용을 얼마 정도 보낼 수 있나?
보좌관 : 10만 헤알(약 1만 4,000달러) 정도? 어디에 쓰려고?
지휘관 : 리오(리오데자네이루)에 누군가를 보내려고 한다.
보좌관 : 곧 송금해 주겠다.
파견된 특수부대원들은 룰라 대통령 당선자와 러닝메이트 제랄도 알쿠민, 그리고 룰라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리던 대법원 판사(대법관)를 미행하기 시작했다.

룰라와 대법원 판사를 미행, 감시한 특수부대 차량
출처-<브라질 연방검찰 수사 기록>
휴대전화 위치 추적 결과, 특수부대 지휘관(중령과 소령) 2명은 11월에 대법원 판사와 정치인 거주지를 맴돌며 납치 또는 암살 기회를 노렸다. 경찰은 이들이 렌터카를 이용한 기록도 확보했다.

출처-<브라질 연방경찰 수사보고서>
위 특수부대원 지휘관 올리베이라 소령의 휴대전화 위치추적 기록은 특수부대원들이 대통령궁과 정부 청사, 정치인들의 주변을 미행했음을 보여준다.
11월 29일, 로베르토 크리스콜리 예비역 준장은 재차 쿠데타와 암살 공작 실행을 재촉했다.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앞으로 상황은 더 나빠진다. 지금 내전을 벌이느냐, 나중에 벌이느냐 문제일 뿐이다. 지금은 내전 상태다. 사람들이 거리로 나오고 있고, 우리 편(보우소나루 지지자)이 많아지고 있다.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그자(룰라 대통령)가 군을 무너뜨릴 것이다.”
레지날도 비에라 중령도 군부에 ‘실행’을 재촉했다.
“헌법 따위는 개나 먹으라고 해라. 우리는 지금 전쟁 중이고, 전쟁은 거의 승부가 나고 있어. 그런데 우리(군대)는 총 한 발도 못 쏘고 있어. 너희들이 겁쟁이들이기 때문이지.”
12월 6일, 특수부대 지휘관 올리베이라 소령이 정부종합청사를 방문했다. 같은 날 같은 장소, 보우소나루 대통령 비서실장이 ‘녹황색 단검’ 작전 문서를 출력했다. 이 문서에는 룰라 암살 공작에 필요한 군사 장비 목록이 포함되어 있었다.

‘녹황색 작전’ 보고서에 담긴 무기 목록
출처-<브라질 연방경찰 수사보고서>
“첫째, 전투 중 특수 상황 화력 지원에 필요한 M249 경기관총이 필요하다. 둘째 40mm 유탄 연속 발사가 가능한 유탄 발사기가 있어야 한다. 셋째, 차량 또는 시설 파괴를 위한 AT4 로켓 런처를 필요로 한다.”
취임식 직전 암살하라
룰라 대통령 취임이 한 달도 남지 않은 12월 10일, 보우소나루 군사보좌관은 군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보낸다.
“대법관과 정치인들이 룰라 취임식 참석 때 사용할 통근로를 알려주겠다.”
사실상 룰라와 대법관, 정치인들 암살을 실시하라고 명령한 것이었다. 군사보좌관은 나중에 이 메시지를 삭제하지만, 연방경찰은 클라우드를 통해 이 메시지를 복구했다.
그러나 암살은 실행되지 않았다. 기다리자 지친 군사보좌관은 이틀 후인 12월 12일 다시 군인들에게 ‘왓츠앱’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군사보좌관 : 무슨 일 없나?
특수부대 지휘관1 : 아직이다.
특수부대 지휘관2 : 그들(군인)이 겁먹고 있다.
그러나 보우소나루를 포함한 내란 세력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다음 날인 12월 13일 연방경찰 간부가 보우소나루 군사보좌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룰라가 취임식을 앞두고 윈저호텔에 묵고 있다. GSI(브라질 국가정보국) 요원이 같은 호텔에 묵고 있지만, 아직 정체는 밝힐 수 없다. 요원의 지원이 필요하면 연락하라.”
12월 15일, 보우소나루 군사보좌관은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보냈다.
군사보좌관 : 무슨 일 없나?
비서실장 : 대법관이 도둑놈(룰라)의 취임식에 참석할 것이다. 상황이 바뀌면 연락하겠다.
같은 날 특수부대 ‘블랙옵스’도 암호화 채팅앱 ‘시그널’을 통해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실행 요원의 암호명은 ‘오스트리아’ ‘저팬’ ‘가나’ 등 국가명이었다.
오후 8시
“목표물 가까운 위치로 이동했다.”
오후 12시
“목표에 근접했다. 실행할 건가, 중단할 건가?”
오후 8시 33분
“위치 확보, 준비 완료.”
그러나 20분 후인 오후 8시 59분,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날아왔다.
“작전 중단하라. 오스트리아, 회수 시점으로 이동하라.”
“가나는 저팬을 지원하라.”
“브라질은 이미 구출 지점으로 향했다.”
“모터사이클은 현 위치에서 대기.”
“탄약을 제거하고 포장을 덮어두라.”

암살 요원에게 작전 중단을 지시하는
시그널 채팅앱 메시지
출처-<브라질 연방경찰 수사보고서>
룰라와 대법관 암살 공작은 취임식을 불과 2주 앞두고 실행될 예정이지만, 극적으로 중단되었다.
이유는?
‘대통령 당선자 암살’이라는 엄청난 짓을 바로 앞에 둔 시점에서 군부가 결국 몸을 사렸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2023년 1월 1일 룰라가 마침내 무사히 브라질 대통령에 취임했다.

룰라가 취임한 이상, 암살 음모가 드러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룰라 취임 불과 4일 후, 올리베이라 특수부대 지휘관은 연방경찰 간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군부가 100명의 히트맨(암살자)를 고용해 암살에 나선다는 내용이 언론에 새어 나갔다. 대책이 있냐?”
그러나 보우소나루는 대책이 있었다. 메시지가 나간 후 불과 4일 만에 사건이 터졌다.

친 보우소나루 시위대 수천 명이 폭동을 일으켜 브라질 정부 청사, 대법원, 국회의사당을 때려 부수고 점령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암살과 쿠데타 관련 기록이 얼마나 파괴, 인멸되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손바닥으로 진실을 가릴 수는 없었다. 룰라 취임 2년 만인 2024년 11월, 연방경찰은 룰라 암살 공작과 쿠데타 음모 수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리고 연방 검찰은 2025년 4월 보우소나루와 고위 장성들을 쿠데타 음모로 정식 기소했다.
이에 대해, 보우소나루는 현역 국회의원인 아들을 통해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밝혔다.
“말로만 하는 암살과 쿠데타가 어디 있나. 실제로 실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무죄다.”

2025년 3월 브라질 검찰의 암살 음모 기소 직후,
브라질과 미국 국기를 내걸고
무죄를 주장하는 보우소나루
출처-<게티이미지>
이재명 암살 공작?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대비해야 한다
브라질 룰라 대통령 암살 공작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1. 룰라 암살 공작은 불과 2년 전 사건이다. 언제든 어디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
2. 특수부대 투입, 암살조 조직, 총기 반입 등도 실제로 실행되었다.
3. 드론 등을 사용한 신개념 테러도 실행되었다.
4. 암살조는 실제로 몇 개월 전부터 ‘목표’의 주변을 돌고, 위치를 선정하고 있었다.
5. 군부와 대통령, 암살조 사이에 군자금이 오갔으며, 일회용 휴대전화와 렌터카를 사용하였다.

방탄복을 입은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
이재명 후보는 이미 암살 시도를
한 번 겪은 바 있다.
출처-<연합뉴스>
한국의 대선후보 공식 선거 운동이 시작되었다. 후보자들과 대중 접촉이 높아지면서, 경비 수준에 대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대선 후보 암살이라는 사건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된다. 그러나 미국, 일본, 브라질도 최근 몇 년간 정치인 암살 또는 암살 시도를 겪었다.
브라질 룰라 암살 시도의 사례처럼, 현대의 정치 테러와 대통령 암살 수단은, 할리우드 영화 수준을 넘어서 나날이 발달하고 있다.
“한국 정치 상황에 암살 가능성은 전혀 없다”라고 무시할 것이 아니다. 브라질도 대선 후보 혹은 당선자 암살은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우리나라라고 해서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확신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도 최악의 사태를 대비할 필요가 있다. 만약 정치 테러 및 암살로 유력 대선 후보의 신변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 파장은 대선뿐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커질 수 있다. 차라리 좀 무리하더라도 그 전에 만반의 대비를 하는 게 현명한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