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미래 복지지설서 일하는 주인공
세대 갈등·이주민 문제 등 그려
노인도 부에 따라 극단적 계층차
초고령사회 한국선 이미 현실로

스물 아홉 살 유나라의 일기로 이뤄지는 소설이다. 저출생 고령화의 여파로 인구의 상당수가 노인이다. 인구 구성상 청년은 ‘소수자’의 지위에 놓인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회일까. 나라의 일기 한 대목을 보자. “나이 들어서까지 재력을 유지한 사람. 그런 사람은 존경받는다.”
소설 속 세상에서 모두가 꿈꾸는 유토피아는 카밀리아 레드너라는 인물이 만들어낸 시카모어섬이다. 플라스틱 폐기물이 쌓여 폐허가 된 땅을 재정비해 태어난 이 섬은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슈퍼 리치 시니어들이 호화로운 서비스를 누리며 노후를 보내는 곳이다. 심사에 통과한 35세 이하 청년들도 섬에 입도할 수 있는데, 이들은 시니어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젊음의 나라
손원평 지음
다즐링 | 292쪽 | 1만9800원
배우를 꿈꿨으나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나라는 시카모어섬에 입도해서 엘피다 극단의 일원이 되는 것이 목표다. 어느 날 기회가 찾아온다. 국내 최대 노인복지시설인 유카시엘에 입사한 것이다. 유카시엘은 시카모어섬과 업무 협약을 맺고 있어 이곳에서의 경력은 시카모어에 입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
유카시엘은 유닛A(사파이어 레이크), 유닛B(선샤인 마운틴), 유닛C(뉴시티 필드), 유닛D(아리아드네 정원), 유닛F(프리 하우스)까지 시설 이용료에 따라 다섯 개 유닛으로 나뉘어있다. 나라는 이곳에서 노인들의 불편 사항을 처리하는 상담사로 일한다.
기쁨에 들뜬 나라에게 룸메이트 엘리야는 걱정과 분노의 시선을 보낸다. 엘리야는 이주민 2세대로 노인요양병원의 간호사지만 노인을 혐오한다. 그는 나라에게 “내가 돌보는 노인들이 아직 젊고 기운이 있었을 때, 우리 가족에게 어떻게 대했을지 자주 상상해. 그들 중 꽤 많은 사람이 우리한테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집회를 열고 반대 서명을 하면서 인터넷에 욕을 썼겠지? 근데 나는 이제 그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신세고, 우습지 않아?”라거나 “내 월급의 일정 부분이 왜 사회에 아무 기여도 안 한 그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데 쓰이냐는 거야”라며 불평하는 인물이다.
독자는 나라의 일기를 통해 한국 사회에도 곧 닥쳐올 미래를 간접 경험한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해 12월23일을 기점으로 65세 이상 인구가 20%를 넘긴 초고령사회로 진입했다. 2017년 고령사회(14%)로 진입한 후 7년 만에 초고령사회로 전환한 것으로 굉장히 빠른 속도다. 문제는 저출생 상황으로 인해 노인을 부양해야 하는 청년 인구는 급격히 줄고 있다는 데 있다.
“우리나라가 당면한 문제는 인구수 자체보다 앞으로 수도로 집중될 모든 것, 지금의 아이들이 떠받치게 될 미래의 기형적인 모양새다. 과연 이 시대에 태어난 아이들은 미래를, 절대다수가 될 노인 계층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손원평은 작가의 말에서 이 같은 고민으로 이번 소설을 쓰게 됐다고 했다.
갈등은 세대 간에만 있지 않다. 나라는 집세를 아끼기 위해 엘리야와 함께 살지만 둘은 사이가 좋다고만 할 수 없다. 엘리야는 자신이 ‘진짜 한국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차별받는다고 생각한다. 나라는 엘리야가 ‘사회적으로 공인된 약자’ 타이틀을 가지고 자신을 포함, 타인에게 어느 정도의 갑질을 한다고 생각한다. 나라는 엘리야와 함께 살며 “(엘리야에게 하는 행동이) 차별이라는 카테고리로 분류되지 않게 하기 위해 나는 정말 많은 에너지를 쓴다”고 일기에 적는다.
나라는 유닛A부터 유닛F까지 모든 시설을 경험한다. 이 안에서 노인들 간의 극단적인 계층 차이도 드러난다. 상위 유닛은 안온한 생활에 만족하면서도 시카모어섬과 자신의 현실을 비교하거나 자신을 시설에 넣고 찾아오지 않는 자녀에게 분노한다. 가장 낮은 유닛F는 더 끔찍하다. 입소자들은 시설에서 숙식을 제공받는 대가로 노동력을 제공해야 한다. 노동력을 제공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신약의 임상실험 대상자가 된다. 나쁘게 말하면 실험 쥐로 인생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어떤 이들은 안락사 곧 선택사를 꿈꾼다. 슬퍼하는 나라에게 비서 로봇인 오베론은 말한다. “너무 슬퍼하지마. 네 감정이 현실을 바꿀 수 없으니까.”
가상세계이나 소설 안 사회가 그리 생경하지는 않다. 인공지능이 일상화되고 부유한 노인을 위해 새로운 공동체가 생겨나는 가운데 가진 것 없는 청년과 노인은 점점 더 외곽으로 밀려난다. 소설이 미래를 그렸다곤 하지만, 어느 지점에서는 이 사회가 소설의 상상을 이미 뛰어넘은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