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동상이몽

2025-03-24

지난 21일 오후 4시. 일본 도쿄에 있는 뉴오타니호텔. 짐 검사를 마치자 별도 공간에서 대기하란 안내가 이어졌다. 한쪽에선 “양측 모두 발언이 끝나지 않았는데 혹시 나가라고 해도 그냥 취재하면 된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일순 대기실엔 긴장감이 퍼졌다. 한 시간쯤 기다렸을까. 주일 중국대사관 관계자가 손바닥만 한 판다 스티커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조태열 한국 외교부 장관과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의 회담 취재를 온 양국 취재진용이었다. 안내에 따라 들어가니 일어서있는 왕 부장 모습이 보였다. 조 장관이 들어서자 두 사람은 영어로 “오랜만이다”란 말을 주고받으며 손을 맞잡았다.

말문을 연 건 중국. “올해가 항일전쟁 승리 80주년, 한반도 광복 80주년으로 양국에 각별한 의미가 있다”는 인사말이 시작됐다. “자주 왕래하고 또 갈수록 친근해져야 한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다음은 조 장관의 화답. 발언은 올가을 열리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에 쏠려있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이 이뤄지길 바란다는 것이었다. 이날 외교부가 내놓은 한·중 외교장관 회담 결과 자료엔 ‘한·중 문화 교류 복원’ 논의가 담겼다. 이른바 한한령(限韓令·한류 금지령)이 해제되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을 일으킬 정도로 일부 언론은 이를 속보로 전했다. 서해 잠정조치수역(PMZ)에 중국이 설치한 구조물에 대한 ‘합법적 해양 권익’이 영향을 받아선 안 된다는 내용도 담겼다. 하지만 중국 언론에선 문화 교류 복원이나 해양권익 이야기는 전혀 거론되지 않았다. 시 주석의 APEC 참석에 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였다.

기대를 모았던 중·일 외교장관 회담도 비슷했다. 일본은 수산물 수입 재개, 구속된 일본인 석방, 영해 침입 문제와 같은 ‘현안’ 논의를 하려 했지만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서로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이시바 총리와의 단독 면담에서 ‘전후 80년’ 발언과 함께 왕 부장이 ‘역사에 대한 반성’을 언급했는데 이에 대한 양국 발표가 달랐다. 중국의 “(이시바 총리가) 중국의 입장을 존중한다”는 발표에 일본 정부는 발끈했다. “철회하라”는 요구도 이어졌다.

3국의 동상이몽(同牀異夢)엔 각자 다른 셈법이 있다. 일본은 리창(李强) 총리의 방일과 수산물 협상을, 한국은 올가을 APEC을 성공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컸던 셈이다. 북핵 문제에 대해선 소극적으로 나섰지만, 미국을 의식해 중국이 ‘경제 협력’을 들고나온 것도 그렇다. 요동치는 국제정세 속, 생각이 다른 세 나라의 한목소리는 한동안 요원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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