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르익지 않은 K-제약·바이오, 최초 타이틀에 가려진 '떫은 맛' [기자수첩-ICT]

2025-03-03

삼성바이오·셀트리온 등 지난해 성적표 공개

4조원 클럽 진입·블록버스터 탄생에 터지는 축포

작은 산업 규모 “코로나 특수 이후 장기적인 성장 필요”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연일 축포를 터트리고 있다. ‘최초’ ‘X조원 클럽’ 등 화려한 수식어와 함께 실적을 앞세운 홍보가 끊이지 않는다.

최근 몇 년 동안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이 남긴 성과는 괄목할 만하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 가운데 최초로 연 매출 4조원을 돌파하며 산업 내 이정표를 세웠다. 셀트리온은 3조5000억원이 넘는 자사 기준 역대 최대 매출을 달성했고,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램시마는 대한민국 1호 블록버스터에 오르는 성과를 거뒀다. 유한양행도 전통 제약사 최초로 연 매출 2조원을 기록했다.

이같은 호실적에 기업은 물론 주주, 관련 협회까지 환영 일색이다. K-제약·바이오가 르네상스를 맞이했다는 평가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다.

이제 제약·바이오 산업이 대한민국 경제를 이끌 성장동력으로 자리 잡은 것일까. 미안하지만 어림도 없는 얘기다. 화려한 수식어 뒤에는 아직 먼 길을 남겨둔 제약·바이오 산업의 현주소가 숨어있다.

한국 산업의 주력인 반도체·전자, 자동차와 비교해 보자. 지난해 반도체 수출액은 약 141조원으로 전자 실적까지 더하면 약 160조원까지 늘어난다. 자동차 수출 실적은 약 102조원으로 집계됐다. 반면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 연간 수출액은 평균 8~10조원에 불과하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제약·바이오 산업의 가장 큰 먹거리는 단연 신약 개발이다. 머크(Merck)와 존슨앤드존슨(J&J) 등 글로벌 빅파마들이 파트너십과 기업 인수 등을 통해 신약 개발에 열을 올리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코로나 특수가 막을 내린 지금 국내 제약·바이오 시장이 꾸준히 성장하기 위해선 새로운 성장 동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국내 제약·바이오 시장에서 가장 굵직한 성과를 보여주고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의 경우 CDMO(위탁개발생산)와 바이오시밀러 매출이 압도적이다. 블록버스터에 오른 셀트리온의 램시마 또한 얀센 레미케이드 바이오시밀러로 자체 개발한 신약이 아니다. 지난해 자체 신약 기반 최초 타이틀을 건 기업은 유한양행 정도다.

가장 중요한 신약 개발은 국내 업계 전체를 탈탈 털어 봐도 달랑 38개에 멈춰 있다. 지난해 온코닉테라퓨틱스의 자큐보정과 비보존제약의 어나프라주가 추가되며 다행히 신약 명맥을 이었으나, 2023년에는 식약처의 허가를 받은 신약이 단 한 개도 없었다.

정부는 지난 1월 바이오를 국가 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청사진을 공개했지만, 현재 가지고 있는 38개의 신약, 1개의 블록버스터로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내기엔 가지고 있는 무기가 약하다. 최근 업계는 연구 개발 투자 규모를 늘리고 있지만 여전히 글로벌 빅파마와 비교하면 100배 이상의 차이가 난다.

물론, 태생적으로 CDMO나 바이오시밀러 시장의 메이저를 목표로 하는 기업들도 있다. 그들이 이룬 성과는 성과대로 박수를 받을 만 하다. 하지만 신약 개발이라는 근본적인 성장동력이 뒷받침해주지 못할 경우 한국의 제약·바이오 산업은 해외 빅파마들에 종속될 수 밖에 없다.

제약·바이오 산업 육성이라는 정부의 그럴싸한 목표가 힘을 얻기 위해선 ‘최초’라는 타이틀에 집착해서는 안된다.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이 진정한 글로벌 리더로 도약하기 위해 전반적인 산업을 키우고 신약 개발에 앞장설 수 있도록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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