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따라잡기] 佛 작가 파브리스 이베르 개인전, 대구·서울 우손갤러리

2025-01-07

“인간을 포함한 모든 자연은 단절되지 않고 지속된다”

회화 등 서울 22·대구 30점 설치

다양한 지식 해부도처럼 도식화

화면 단순해도 서사는 기승전결

‘생성·소멸 반복’ 동양철학 닮아

한국 관객 위해 한글 단어도 새겨

“스스로 질문 계속하는 게 예술”

파브리스 이베르(63)의 작품에서 지식의 해부도를 연상했다면 작가의 예술세계를 제대로 간파한 감상이다. 낭트예술대학에 입학하기 전에 수학과 과학, 생물학, 물리학 등을 공부하고, 대학 졸업 후 예술가와 기업가를 병행하며 역사와 철학, 상업 등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며 축적된 그의 다양한 지식과 통찰들이 작품 속에서 마치 해부도처럼 도식화됐기 때문이다.

“예술 작품은 예술가가 구축하는 하나의 세계를 부분적 또는 전체적으로 담아 묘사하는 오브제입니다. 제 작품은 ‘학문적, 미적, 철학적 요인들로 생명체 이해하기’라는 사적인 관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파브리스 이베르 개인전 ‘삶은 계속된다’가 서울 성북동 우손갤러리와 대구 봉산동 우손갤러리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다. 서울 전시는 ‘에너지’를 주제로 22점을, 대구 전시는 ‘상상’을 주제로 30점을 설치했다. 회화, 드로잉, 조각, 오브제, 비디오 작품을 고루 포함됐다.

프랑스 예술가인 이베르는 우손갤러리가 대구와 서울 이원화를 선언하고 심혈을 기울여 개관전 주인공으로 낙점한 거장이다. 36세였던 1997년에 베니스비엔날레 프랑스관 작가로 참여해 역대 최연소로 국가관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한국과는 1995년 광주비엔날레와 2014년 부산비엔날레 등에 참여하며 인연을 맺었다. 2022년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개인전 ‘더 밸리’와 지난해 이탈리아 루이비통 파운데이션 전시 ‘보이지 않는 숲’으로 큰 화제를 모았고, 4월엔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과 공동으로 상하이현대미술관(Powerstationof Art) 대규모 개인전이 계획돼 있다.

이베르의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단순함’과 ‘순수’다. 문학과 과학을 넘나들며 축적한 방대한 사유체계를 단순함과 순수로 치환했다. 지식이 쌓이면 말이 많든가, 조용하든가, 둘 중 하나인데, 그는 후자다. 축적된 지식들을 ‘단순함’과 ‘순수’라는 키워드로 축출한다. 말인즉슨 작품에 잡다한 사족을 개입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의 예술적 주제는 ‘삶의 지속성’에 맞춰진다. 축적된 지식을 기반으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자연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는 통찰을 도출하고, 순수와 단순함을 키워드로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그가 언급하는 변화의 양상은 “나무에서 떨어진 사과가 다른 쪽에선 체리로 변화하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그의 인식체계는 모든 존재는 상호작용 속에 있고 이들이 끊임없는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며 변화한다는 동양철학의 순환론과 맞닿는다. “세상의 존재들이 상호관계 속에 서로 다른 이면을 흡수하며 변화한다”는 그의 말에서 동양의 순환론적 세계관을 발견한다. 대개 작품들에 구심점을 설정하고, 구심점으로부터 존재들이 연결되고 확산되는 형식을 취한 것이 “상호의존적으로 삶이 지속된다”는 순환적인 생태환경과 맞물린다.

예술적 주제인 ‘삶의 지속성’을 미술언어로 치환하는데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복잡하거나, 간결하거나다. 그는 후자를 택한다. 회화의 경우 유화물감을 수채화물감처럼 운용하며 가볍게 표현하고, 나무나 인간, 집 등도 선적인 요소들로 드로잉적 기법으로 단순화해 묘사한다. 회화는 수채화처럼 가볍게 채색하면서 목탄 드로잉의 흔적을 살리고, 유화물감이 수채화 물감처럼 수직으로 흘러내리게도 한다. 수채화적인 기법과 단순한 묘사가 이끈 어린아이 같은 단순하고 순수한 화면은 “생명체의 순환에 대한 직관적인 설명을 위한 방법론”이다.

그가 주목하는 주제인 ‘삶의 지속성’은 인간이나 나무를 매개로 서술된다. 땅 위의 풍경은 물론이고, 땅 아래 뿌리의 작용까지 섬세하게 표현한다. 땅 위의 자연만 묘사하는 일반적인 풍경그림과 대조된다. 작품 ‘모든 삶(Toutes les vies)’에선 땅 아래 시체가 연상되는 인체를 그리고 인체 곳곳에서 다양한 식물이 지면 아래 뿌리를 내리고 지면 위에 줄기를 키워 올리는 모습을 표현한다. “사람은 흙으로 돌아가 굉장히 자연적인 요소로 변하게 되는 모습을 표현했어요. 털이 뿌리가 되기도 하고. 살이 나무가 되기도 하고, 발이 버섯이 될 수도 있고요. 제가 감자를 먹으면 땅 속에 들어갔을 때 감자가 자랄 수도 있다는 상상을 부가하기도 했어요.”

연못을 배경으로 숲을 그린 작품 ‘계곡과 숲의 목소리(Le voix de lavallee et de la foret)’에선 물 속 나무의 뿌리에 줄기 못지않은 열정을 할애하고 있다. “지면 아래에 많은 미생물들이 존재하고,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자연의 요소들을 잊으면 안된다는 것을 뿌리로 말하려 했습니다. 인간이나 자연은 작은 미생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에 대한 자각이죠.”

그의 작업들이 그렇지만 특히 인간으로 쌓은 탑을 연상케 하는 작품 ‘Hybrr heros totem’에선 이야기가 넘실댄다. 성별과 정체성이 각기 다른 사람들을 탑처럼 쌓아올리고, 연관된 단어들도 적는다. 화면은 단순하고 순수하지만 하나의 서사가 기승전결로 시각화했다. 순간순간 떠오르는 단어나 이미지들을 포착하고 연동되는 단어들을 계속해서 추가하며 화면을 구성해 간 결과다. 이번 전시엔 한국 관객들을 위해 한글 단어도 새겼다.

“제게 단어는 단어이기 이전에 하나의 형태이기도 해요. 이미지가 표현할 수 없는 굉장히 은유적인 표현을 직관적으로 편하게 할 수 있는 장치죠.”

‘삶의 지속성’은 그의 특별한 성장과정의 산물이다. 그는 프랑스 방데(Vendee) 지역의 거대한 숲에서 자랐다. 그러나 사회·정치적 이유로 단 하나의 숲만 남게 되는 것을 지켜보며 삶의 단절을 느꼈다. 그것은 곧 위기의식으로 다가왔다. 아름다운 풍경이 극단적으로 바뀌는 것을 두고 볼 수많은 없었다. 그는 주저없이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30만 평의 숲 조성을 시작했다.

더 자연친화적인 숲 조성을 위해 묘목을 심는 대신 씨앗을 뿌리는 방법을 선택할 정도로 자연을 향해 그는 진심이었다. 그는 씨앗이 나무로 자라고 숲을 이루는 긴 과정을 지켜보며 “마치 우리의 인생을 보는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삶은 단절되지 않고 지속된다는 것을 방데 숲 재생 과정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그에게 예술과 삶은 하나의 톱니바퀴로 맞물려 돌아간다. 다양한 지식과 경험으로 통찰한 ‘삶의 지속성’은 예술로 가시화된다. 그에게 예술은 삶 속에서 느끼는 감정들, 즉 작은 꽃이나 활기찬 누군가의 미소 같은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사소한 경험들을 감정들을 기억하기 위한 방편으로 인식된다. 이는 그의 생각이 자라나듯 예술 또한 어린아이처럼 계속해서 자라난다 것을 의미한다. 삶이 지속되는 한, 예술 또한 자라나는 공식이다. “스스로에서 질문을 던지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이 곧 삶이며 예술입니다.”

전쟁, 정치, 경제, 기후 위기에 대한 반동으로 시작한 생태적 삶을 작업의 주제로 삼아왔다. 하지만 그의 작품 어디에도 고통이나 절망의 흔적은 없다. 어린아이 같은 천진난만함이나 초현실적 상상이 작품을 주도할 뿐이다. “나는 자연과 사회의 긍정적인 이면을 보여주는 데 신경을 쓴다”는 그의 말을 “무욕의 자연 상태에 대한 지향”이라고 이해했다.

“쓰레기 자연, 인간, 그리고 일상의 모든 요소들로부터 영감을 받고 있는데, 이 모든 요소들을 제 자신이 소화해 작업을 통해 새롭고 행복한 에너지를 만들고 상상력을 더욱 풍부하게 하고자 했습니다. 감상자들도 제 작품을 통해 삶의 행복감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전시는 2월 8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저작권자 © 대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