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목대] 유산 14만원

2025-05-01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21일 선종했다. 아르헨티나 언론은 그가 남긴 유산이 100달러(약 14만원)라고 전했다. 평생 그의 청빈한 삶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전세계 가톨릭 신자 13억명의 영적 지도자인 교황에게는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지만 2500유로(약 405만원) 가량의 월급이 주어진다(월급이 4600만원이라는 보도도 있음). 교황은 재위 12년뿐만 아니라 추기경에 임명된 2001년 이후 월급을 모두 교회에 기부했다. 76세 때인 2013년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된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 이름처럼 가난하고 약한 자의 수호성인이었다. 교황청 개혁을 비롯해 빈곤 퇴치, 환경문제, 난민 보호 등에 앞장섰으며 성 소수자와 무슬림, 비신도들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한국과의 인연도 깊다. 2014년 8월, 4박5일 일정으로 방한한 교황은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다. 의전차량으로 방탄 리무진 대신 소형차인 ‘쏘울’을 택했으며 헌구두에 낡은 가방을 직접 들고 다녔다. 가장 먼저 팔을 벌려 만난 사람은 세월호 사건으로 슬픔에 빠진 유족이었으며 그들이 건넨 노란 리본을 끝까지 단채 기도를 올렸다. 세월호 유족들에게 “울어도 됩니다. 그러나 결코 희망을 놓지 마십시오”라고 위로해 큰 울림을 주었다. 또 위안부 할머니와 장애인, 북한 이탈주민, 외국인 근로자들과도 함께했다. 남북문제에도 관심을 가져 방북도 추진했다. 겸손하고 근검한 평소의 성품처럼 묘지석도 고급 대리석 대신 증조부 고향에서 가져온 돌에 고황의 라틴어 이름 만을 새겼다. ‘프란치스쿠스’. 생몰연도, 재위기간도 새기지 않았다.

이처럼 청빈하게 살다간 종교인은 우리나라에도 없지 않다. 성철스님과 법정스님, 김수환 추기경 등이 그들이다. 법정 스님은 “장례식도, 수의도, 관(棺)도 짜지 말고, 사리도 찾지 마라”고 유언했다. 평소 ‘무소유’ 등 30여권의 베스트셀러에서 나온 인세 수십억원은 장학금으로 내놓았다. 부처님에게 3000배를 올려야 만나주기로 유명했던 성철 스님은 돌아가실 때 염의(染衣) 한 벌과 돋보기, 검정고무신 한 컬레만 남겼다. 또 우리나라 최초의 추기경인 김수환 추기경은 선종시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눠주기 위한 비상금 300만원을 통장에 남겼으며, 사후 그의 뜻에 따라 자선단체에 기부되었다.

이들 종교인 외에도 진주에서 한약방을 운영했던 김장하 선생은 종교인 못지않은 유산을 남겼다. 1000명이 넘는 학생들에게 평생 번 돈 300억원을 장학금으로 주었으며 “돈은 똥과 같아서 모아두면 구린내가 나지만 흩어버리면 거름이 된다”는 돈철학을 남겼다. 우리는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조상진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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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진 chos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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