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키 17' 봉준호 "국민은 이미 비상계엄 극복…법적·형식적 절차만 남아"

2025-02-20

“얼마 전 베를린영화제에서 만난 이탈리아 기자는 독재자 마셜 캐릭터가 무솔리니에서 영감 받은 게 아니냐더군요. 전 세계 인류 역사의 다양한 정치적 악몽의 이미지를 융합해서 마크 러팔로(59)가 훌륭하게 표현했죠.”

20일 서울 강남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린 할리우드 SF ‘미키 17’(28일 개봉) 내한 간담회에서 봉준호(56) 감독이 한 말이다. 마블 히어로 헐크로 출연한 영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2015) 이후 10년 만에 두 번째 내한한 러팔로를 비롯해 주인공 미키(로버트 패틴슨)의 여자친구 나샤 역의 영국 배우 나오미 애키(33), 미키의 친구 티모 역할로 ‘옥자’(2017)에 이어 봉 감독과 재회한 재미교포 배우 스티븐 연(42)이 이날 함께 참석했다.

러팔로 "영화 속 장면 현실로…소름끼쳐"

2054년 근미래, 외계 식민지 개척단의 요지경을 그린 ‘미키 17’에서, 독재자 마셜은 미키 못지않게 회자되는 캐릭터. “나라마다 자기네 상황, 역사를 투사시키며 봐서”(봉 감독)다. 영미권에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연상시킨다는 반응이 많다. 마셜과 아내 일파(토니 콜렛)의 자본가적 성향과 방송 출연을 즐기는 과시적 면모 때문이다. 이달 앞서 영국 런던 시사 땐 영화 속 일부 장면이 지난해 트럼프 저격 미수 사건, 재임까지 내다본 듯하다며 “봉 감독의 집 뒷방에 (미래를 예언하는) 수정공이 있느냐”는 질문이 세 차례나 나왔단다.

이날 러팔로는 “쩨쩨하고 그릇 작은 독재자들을 우리는 오랜 세월 반복해서 봐왔다. 그들은 자기 이익만 좇고 연약한 자화상을 갖고 있고, 결국 실패한다”면서 “특정인과 연결 짓는 게 아니라 더 많은 해석의 여지를 열어두고 싶었다. 극 중 마셜의 액센트, 화법이 (권력에 군림할수록) 조금씩 변하는 부분을 잘 봐 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도 “2022년 ‘미키 17’을 촬영할 땐 몰랐지만, 나중에 현실로 나타난 요소들이 분명 있다. 관객들이 소름 끼칠 것 같다”면서 “신께서 현실을 만들어냈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봉준호 "국민은 이미 비상계엄 극복…법적·형식적 절차만 남아"

정의로운 역할을 주로 해왔고, 실제 환경운동가로 활동하는 그에게 악역 연기는 ‘미키 17’이 처음. 봉 감독의 ‘발굴’에 가까운 출연 제안에 “처음엔 놀랐다”는 그는 “결국 감사하게 됐다. 나 자신도 나를 의심할 때 봉 감독이 믿어준 데 대해서”라 돌아봤다.

촬영 내내 한‧미 정치 역사에 대해 많은 얘길 나눠설까.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당시 러팔로는 봉 감독에게 “괜찮나. 안전하게 잘 있느냐”는 e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봉 감독은 “걱정 말라고 답장은 했는데, 해외 동료들과 블랙핑크 로제 노래가 이번 주 차트 몇 위다, 이런 얘길 하다 갑자기 계엄령이 터져 생경스러웠다”고 돌아봤다. 봉 감독은 또 “다행인 점은 오늘 기자회견처럼 음악도, 영화도, 우리 일상이 거침없이 계속되고 있다. 어제 ‘미키 17’ 시사회에도 많은 관객이 찾아주셨다. 계엄을 이미 극복한 시민들, 국민들의 자랑스러운 모습”이라며 “(계엄은) 이미 극복됐다고 생각한다. 남은 것은 법적‧형식적 절차”라고 강조했다.

스티븐 연 "세상 보는 봉준호 눈빛 아름다워"

“영화를 만들 땐 자본주의를 분석한다거나 무슨 메시지를 던진다기보단, 그런 틈바구니에서 살아 숨 쉬는 인간들의 감정을 같이 나눠보려 한다”는 그는 “‘미키 17’도 프린트에서 출력되는 자기 몸을 봤을 때 어떤 느낌일까. 그런 속마음부터, 그를 버틸 수 있게 해준 나샤로부터의 위안과 위로를 관객과 나누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연약하고 불쌍한 청년이 결국 살아남았다는 게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라면서다.

이번이 첫 내한인 나오미 애키는 결국 ‘미키 17’은 “영웅이 아니라, 무엇을 이룰지 생각하지 않고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비범한 일을 해내는 이야기”라고, 스티븐 연은 “세상을 바라보는 봉 감독의 눈빛이 아름답다”고 돌아봤다. 러팔로는 “미국에서 특히 그랬는데, 국가의 폭력이 극단적으로 다가올 때 여러 사람이 모여 만들어낸 비폭력 운동들이 큰 변화를 만들어냈다”면서 “그런 힘의 근원에는 서로를 향한 존중과 사랑이 있다. 시간이 걸릴 수 있겠지만, 결국 폭력은 와해하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