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사로잡은 ‘깐부’ K-철도…현대로템, 협력사 손잡고 해외서 '동반성장'

지난달 25일(현지 시간) 호주 퀸즐랜드주 브리즈번에서 북쪽으로 3시간 30분을 달려 도착한 메리보로 현대로템(064350) 공장. 공장 입구에 들어서자 ‘Operated by Jinyang Tech’ 간판이 한 눈에 들어왔다.

이 공장은 현대로템이 165억 원을 투자한 곳으로 올해 3월 현지 당국의 사용 승인을 받아 본격 가동 준비를 마친 철도차량 부품 공장(CCF)이다. 현재는 부품 생산 공정 개시를 앞두고 시운전을 하고 있는 상태였다.

메리보로 공장에서는 진양테크에서 파견된 직원들이 강판 코일을 롤러로 가공해 열차의 천장, 벽, 바닥 등 프레임을 만드는 롤 포밍 작업과 용접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호주 내에서 롤 포밍을 하는 공장은 현대로템과 진양테크의 메리보로 공장이 처음이다.

메리보로 CCF 공장에서는 현대로템이 퀸즐랜드주로부터 수주한 QTMP(Queensland Train Manufaturing Program) 전동차의 차체 프레임 등 구조물을 생산한다. 생산된 차체 구조물은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토반리 완성열차 조립 공장으로 옮겨져 QTMP 열차로 조립된다.

QTMP는 현대로템이 2023년 6월 수주에 성공한 1조 3350억 원 규모의 프로젝트다. 현대로템은 2032년 브리즈번 하계올림픽에 대비해 390량의 전동차를 2031년 12월까지 투입할 예정이다.

현대로템은 퀸즐랜드주가 QTMP 사업을 토대로 현지 제조업 부흥을 도모하는 것을 고려해 현지화와 기술이전 조건을 내걸었다. 현대로템은 이에 국내 철도 사업의 핵심 협력사인 진양테크와 손을 잡았다. 이번 현지 진출을 통해 호주는 최초로 철도차량 차체 부품 단품 생산 기술을 보유하게 됐다.

진양테크는 공장이 본격 가동된 이후 인력을 30명까지 확충할 계획인데, 절반인 15명은 호주 현지 직원을 채용할 예정이다. 진양테크는 차체 성형에 필요한 금형 설비들을 제작하고 국내 관리자와 기술자를 현지에 파견한다. 현지 채용 인력들은 구조물을 생산하는 기술을 습득하는 식으로 기술이전이 진행된다.

현대로템과 진양테크의 인연은 30년 전인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대로템(당시 현대정공)은 코레일 무궁화 객차 공급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금속 성형 전문 기업인 진양테크의 손을 잡았다. 2002년에도 서울시 1호선 전동차 공급 프로젝트를 함께 수행했다.

진양테크는 2031년까지 QTMP 전동차용 차체 부품 조달을 마친 뒤에는 호주 현지에 다양한 구조물을 직접 제작해 판매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된다. 박휘섭 진양테크 생산기술팀 차장은 “롤 포밍을 활용해 만든 구조물들을 현지에서 건설 자재로 판매하는 방안도 검토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현대로템은 해외 전동차 수주 프로젝트에 국내 부품 협력업체와 함께 진출하는 방식으로 K-철도 생태계의 외형을 확장해나가고 있다. 앞서 9월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준공한 철도 전장품 공장인 ‘현대로템 스마트 일렉트릭 아메리카(HRSEA)’도 대표 사례다. LA메트로 전동차 공급 사업을 위해 구축한 이 공장은 브이씨테크(추진제어장치·보조전원장치), 제이케이에이(헤드라이트 등 등구류) 등의 협력업체가 함께 미국에 진출해 전동차용 전기전자 부품을 생산하고 있다.

이 같은 협력체계는 프로젝트마다 설계와 투입되는 장비가 다르다는 철도 사업의 특성에서 더욱 큰 장점을 발휘한다. 현대로템의 수출 영업과 연구개발, 현지화 노력에 협력업체의 유연하면서도 품질이 좋은 부품 납품 능력이 더해지면 철도 사업의 경쟁력이 한껏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로템 관계자는 “민관 합동으로 이뤄진 고속철 국산화와 동력분산식 고속철 국산화율 90% 달성, 우즈베키스탄 고속철 최초 수출 같은 실적들은 그 자체로 국내 철도 산업계가 해외에서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요인”이라며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인 철도 사업에서 프로젝트마다 납기를 맞추려면 완성차 업체와 부품업체 간의 단단한 구매·조달 공급망과 이윤이 분배되는 선순환 구조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