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119구급대원의 고백
늦은 밤 남자는 담을 넘어 집에 들어왔다.
정확히는 ‘옛 집’이었다.
습관적인 주폭과 외도가 원인이 되어
이혼한 뒤로는 접근금지 명령을 받았기 때문에
그 집에 얼씬도 하지 못했다.
전 부인은 112에 신고하는 대신
119에 신고를 했다. 두 가지 이유였다.
하나는 보복이 두려워서였고,
다른 하나는 남자가 실제로
우측 발목부터 무릎 아래까지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신고했다가 칼 들고 찾아오면, 책임질 거예요?”
신고한 집 앞에는 낡은 코란도 한 대가 서 있었다.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온 데 처박고 다녔는지
사면에 성한 구석이 없었다.
차를 지나쳐 현관문을 두드리자
잠옷 차림의 여자가 문을 열었다.
마흔 중반쯤으로 보였다.
여자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
남자는 발목을 부여잡은 채
몸을 웅크리고 거실 바닥에 누워 있었다.
“아악! 다리가, 다리가 너무 아파요.”
“선생님, 몇 가지 검사 좀 할게요.”
남자의 활력 징후를 측정했다.
다른 건 전부 정상이었는데 혈당 수치가 580mg/dL이 떴다.
정상인보다 네 배는 높은 수치다.

“혹시…제가 여기 만졌을 때 감각이 있나요.”
오른발 발등과 발가락 주변을 만지며 말했다.
“전혀 없어요.”
정확한 건 검사를 해야 알겠지만
당뇨발이 진행되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그럼, 여기… 발목 위로만 아프다는 말씀이시죠?”
“악! 아! 아악!”
“저희랑 같이 병원 가시죠.”
“아니요. 저 병원 안 갈래요.”
다리를 조금만 눌러도 악 소리를 내면서도
남자는 병원만은 가지 않겠다고 했다.
남자의 막무가내에 난감해하며
전 부인 쪽을 쳐다보았다.
그녀가 고개를 흔들었다.
“병원 가서 치료받으셔야죠.”
병원 가자는 말에 남자는 점점 더 흥분했고
내 집에서 왜 나가야 하냐며 버티기 시작했다.
결국 경찰을 불렀다.
“아니, 내가 뭔 잘못을 했습니까.
왜 죄인 취급을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