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70년 비확산체제 스스로 부정한 셈
韓서 건조문제도 ‘동상이몽’ 논란 예고
국내 핵잠 찬성 강대국 진입 환각 때문
정치 이슈 되면서 사활 문제로 과포장
軍에 더 필요한 건 스마트한 무기체계
中 좌시 않을 듯… 제2 사드사태 우려
잠수함은 비밀스럽다. 비대칭 전력의 핵심으로 불린다. 많은 이의 호기심을 자극하나 노출은 드물다. 그런 잠수함이 세간의 관심사로 부상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핵잠수함(SSN)의 연료인 농축 우라늄 공급을 요청하면서다. 다음 날 트럼프 대통령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승인한다”며 화답했다. 이어 한·미는 지난 14일 양국 정상회담 결과를 요약한 ‘조인트 팩트시트’(공동설명자료) 문안에 최종 합의했다. 미국이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건조를 공식 승인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군의 30년 숙원이 성사 직전이다. 너도나도 곧 핵잠수함이 도입될 것처럼 부푼 기대에 들떠 있다. 반대편에 선 이도 있다.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은 지난달 31일 SNS에 이와 관련해 “우리가 얻는 것은 체면이고, 잃는 것은 돈·시간·외교적 자율성”이라며 “그것은 강대국 환상에 취한 ‘국가적 허영’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고는 이재명정부가 추진하는 핵잠수함 도입 계획이 순탄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오랫동안 군사 문제에 천착해온 전문가다. 지난 17일 세계일보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된 김 전 의원과의 인터뷰에서 이유를 들었다.

─미국의 ‘한국 핵잠수함 건조 승인’ 의미를 평가한다면.
“미국이 70년 핵 비확산체제를 스스로 부정한 것이다. 더 나아가 미국 내 핵 정책에도 위배되는 파격적인 결정이다. 전환기적 사건임이 틀림없다. 그럼에도 숙고한 결론이라기보다 한·미 관세협상의 부산물로 일종의 정치적 성의 표시 내지는 한국 정부의 체면을 살려주기 위한 제스처란 생각이 든다. 냉철한 평가가 있어야 한다.”
─원자력 발전소 건설에는 인색한 이재명정부가 왜 핵잠 도입 얘기를 꺼냈다고 보나.
“사실 핵연료의 자립화, 다음에 핵폐기물 재처리 등 산업적 요구가 더 절실했다고 본다. 그런데 핵잠이 치고 들어왔다. 본의 아니게 에너지 주권을 잠식한 모습이 됐다. 관세협상이나 주한미군 ‘동맹 현대화’를 놓고 우리의 ‘양보’ 일색으로 판이 짜이다 보니 정치적 부담이 있었을 거고, 그래서 우리가 마냥 퍼주기만 한 협상을 한 것은 아니라는 걸 보여주려는 의도로 핵잠수함 카드를 꺼내 든 게 아닌가 싶다.”
─한·미 간 쟁점이었던 핵잠 건조 장소는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앞으로 매우 지루한 논쟁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최근 미국 언론이나 유력 군사저널은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했던 필리조선소를 거론하며, 한국의 핵잠 개발 요구를 미국의 조선업 육성으로 환치(換置)해 미국 내 건조를 당연시한다. 심지어 이재명정부를 친중 정권이라 규정짓고는, 친중 정권에게 어떤 핵 주권이나 에너지 주권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활용될 것이라며 분위기를 띄운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정상 간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것을 전제로 진행됐다”고 밝혔는데.
“동상이몽이다. 물론 우리가 한국 건조를 강력히 주장한다면 미국이 가져가긴 쉽지 않다. 현재 미국 조선소는 매년 미 정부가 요구하는 두 척의 버지니아급 핵잠 건조도 힘에 부친다. 여기에다 미국이 호주에도 핵잠을 제공하기로 한 상태가 아닌가. 한국 핵잠까지 건조할 인프라가 아니다.”
─한·미가 접점을 찾을 수 있다고 보나.
“한국을 벗어난 건조는 군사적으로나 산업적으로 사업 취지와 맞지 않는다. 그래서 미국이 절충안으로, 예컨대 원자로 설계 안정성이나 운용 능력 등 미국과의 기술 공유를 통해 물량을 절반씩 나눠 건조하는 방안 등을 차후 협상에서 제시할 수 있다고 본다. 대비해야 한다.”
─국내 전문가 상당수가 핵잠 건조에 찬성하고 동조한다. 왜 그런가.
“그것은 어떤 거대한 상징에 대한 유혹, 마치 강대국 반열로 들어선다는 착각을 일으키는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환각) 효과 때문이다.”
─잠수함 전력을 운용하는 해군도 동조하지 않는가.
“해군 구성은 수상함 위주로 편제돼 있다. 잠수함은 소수병과 처지다. 기피하는 자리란 얘기다. 이런 작은 병과의 입김이 해군 전체 입장이라고 보진 않는다. 해군 내에서 잠수함 전력을 절대시하고 우선시하는 평가가 많다고도 인정하기 어렵다. 핵잠이 국가적 차원의 정치적 이슈가 되면서 마치 해군의 사활적인 문제인 양 과대 포장됐다.”
─공론화 작업과 숙의 과정 없이 전격적으로 결정됐다는 얘기도 나온다.
“현상에 도전하는 국가로 인식되지 않도록 각별하게 관리해야 할 사안임에도 정상회담에서 갑자기 툭 튀어나왔다. 집단지성을 활용하지 않은 나쁜 선례로 남을 거다. 안보 포퓰리즘적인 요소가 상당하다고 여겨진다.”
─북한 잠수함을 연안에서 밀착 감시하는 데 핵잠보다는 소형 디젤잠수정이나 무인잠수정이 더 효과적이라는 주장도 폈는데.
“이를 한국형 ‘킬 웹’(Kill web)이라고 규정짓고 싶다. 소수의 고가 자산이 아닌 다수의 스마트한 소형 무인체계가 네트워크로 연결된 분산형 전력 구조다. 그런 점에서 길이가 100m가 넘는 강철 덩어리 핵잠을 운영하는 것은 과도한 가치 집중이다. 물론 특정 영역에서 특화된 능력은 발휘할 수 있다. 하지만 전체 해양을 통제하고 관찰하는 투명한 바다를 만들기에는 거리가 있다. 거기다가 핵잠 한 척의 건조비용은 약 2조원, 하루 운용비는 23억원에 이른다. 반면 이 예산으로 수백 대의 무인잠수정을 확보하면, 서해·동해 전역을 감시하고 실시간 대응 가능한 전술적 지능망을 구축할 수 있다. 한국 해군이 가야 할 길이라 생각한다.”
─여당뿐 아니라 해군과 전문가들도 “핵잠은 북한이 건조 중인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탑재 전략 핵잠수함(SSBN) 추적 감시작전에 필수적이다”, “주변국 해양 영토확장 위협에 맞서기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제기하는데.
“핵잠이 좋은 무기는 맞다. 원거리 이동과 탁월한 잠항 능력, 부인하지 않는다. 이 무기가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과연 합리적 선택인가를 묻는 것이다. 고정관념을 버리고 북한의 수상·수중 전력에 맞서 무엇이 미래형 억제력이냐는 부분에 대해 제대로 된 토론이 필요한 시점이다.”
─최근 대릴 커들 미국 해군참모총장이 기자회견에서 한국의 핵잠 건조와 관련해 “그 잠수함이 중국을 억제하는 데 활용되리라는 것은 자연스러운 예측”이라고 했다.
“미 해군 총장 발언이 있기 전날 중국에서 한국 정부더러 핵잠 도입은 지정학적으로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으니 신중하게 하라는 경고 메시지가 나왔다. 그러자 미 해군 총장이 간담회를 자청해 작심하고 발언했다. 미국이 중국과 주고받는 공방이다. 계속될 거다. 내년 4월 베이징에서 열릴 미·중 정상회담 때 의제화될 가능성도 있다. 한국의 핵잠 도입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든든한 초석을 놓는 것이다. 이걸 중국에서는 눈 뜨고 보려 하지 않을 거다. 과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
─이재명정부의 친중·실용외교 노선과 충돌하지 않겠나.
“우리가 첨단 군사역량을 보유한다면 주변국들의 관심과 개입은 당연히 확장된다.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정권을 지지한 국민은 상실감에 진보적 대통령을 보수에 납치당했다고 여길 수도 있겠다.”
─문재인정부 때 프랑스 핵잠 도입을 추진했다가 무산된 거로 안다.
“2018년 당시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이 회동했을 때 핵잠 도입 얘기가 나왔다. 매티스가 ‘내 권한 밖’이라고 말했다고 들었다. 그래서 우리 국방부가 비밀리에 프랑스와 러시아에서 핵연료 구매를 타진했다. 고농축 우라늄(HEU)이 아닌 저농축이었다. 미국의 반대로 무산됐다.”
─핵잠 논란은 해결된 것이 아니고 시작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상당수다.
“핵잠 건조는 장소에 대한 이견 외에도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등 법적·제도적 과제가 한둘이 아니다. 우선 걸림돌이 미 상원의 비확산 보수주의자들을 어떻게 설득할 지다. 미 국무부·에너지부와 학계가 주장하는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대한 장벽도 매우 높다. 장애 허들을 넘고 미국과의 새로운 특별 협정 또는 합의안을 만드는 데 최소 2∼3년은 걸릴 거라고 본다. 이마저도 내년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하면 공염불이 될 수 있다. 여기에 핵잠의 실질적 운영 주체인 우리 해군이 재정적·정치적 비용을 감당할 수 있겠냐는 문제도 있다. 냉철하게 보지 않고 감정으로 밀어붙일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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