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양극화, 그 이면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

2024-10-14

작년 상반기 때였다. 한 경제부처에서 국내외 경제 전문가들과 향후 경제전망 및 정책에 대한 간담회가 있었다. 주요 경제연구소 및 국내외 금융기관의 이코노미스트 등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참여했었다. 당시 1분기 성장률은 1.1%로 속된 말로 ‘죽을 쑤고 있는’ 상황이었던 만큼 언제쯤 경기가 반등할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참석자 모두 나름대로 각종 수치를 들며 열심히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회의가 파할 때까지 필자가 한마디도 얘기하지 않자 장관이 필자의 의견을 물었다. 이에 대해 필자는 한마디만 하겠다고 했다. 오늘 회의 참석자 구성에 문제가 있고, 정말 경기 반등 시점을 알고 싶다면 현재 상황에서는 우리 같은 경제 전문가보다 반도체 전문가에 물어보는 게 더 나았을 거라고 답했다.

경기순환 좌우하는 반도체 산업

소수 주력 산업에 지나치게 의존

산업 양극화는 분배 형평성 위협

다음 세대 먹거리 제대로 챙겨야

당시 반도체는 코로나 이후 글로벌 시장에서 IT제품 수요가 폭등하면서 예상치 못한 대호황을 기록한 후 실적이 급감해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고, 이로 인해 2022년 초부터 마이너스로 돌아선 무역수지는 좀처럼 반등의 기미를 보이지 못했다. 반도체 산업이 본격적 경기회복의 키를 쥐고 있는 만큼 거시경제 분석가보다는 반도체 산업 전문가가 오히려 더 정확한 예측을 할 것이라는 취지에서 그런 답변을 한 것이다. 실제 작년 10월을 기점으로 반도체 경기가 살아나면서 작년 4분기 성장률은 1%대를 벗어나 2.1%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 에피소드에서 보듯 우리나라 수출 및 경제성장률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수출에서 반도체 비중은 2017년 4분기에 처음으로 20%를 넘긴 이후 최근까지도 10% 후반~20% 초반을 오르내리고 있다. 여기에 자동차 및 부품 산업까지 합치면 30%를 넘나든다. 이들과 함께 수출과 성장을 견인했던 석유화학 부문은 중국의 물량 공세에 따른 공급 과잉으로 고전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5대 핵심 수출업종에 K푸드와 K뷰티가 부상했지만, 그 비중은 상대적으로 미미한 상황이다.

그런 만큼 반도체 경기가 곧 우리나라 경기순환까지 좌지우지하는 상황까지 왔다. 반도체 경기 때문에 심지어 세수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까지 몰렸다. 작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실적 악화로 법인세를 한 푼도 내지 못하면서 총 세수의 20%가량을 차지하는 법인세는 올 3월 기준으로 세수 펑크가 났던 작년 동기간에 비해서도 26%나 감소했다. 최근 모건스탠리가 보고서를 통해 반도체 수요가 급감하는 ‘반도체 겨울’이 올 것이라는 경고를 보내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급락하는 등 충격을 주었다. 보고서 내용을 들여다보면 과장된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우려될 수밖에 없고, 특히 삼성전자의 3분기 실적 부진은 이러한 우려를 더 증폭시켰다.

종합해 보면, 우리 경제성장을 견인하는 산업의 분포가 일부에 편중되는 산업간 양극화 현상이 가속하면서 이들 소수의 주력 산업의 실적에 따라 거시경제 전체가 연동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지식정보화 경제체제로의 전환에 따른 불가피한 문제라고 볼 수 있지만, 우리 경제의 경우 하필 재벌체제의 재편과 관련된 시점이라 그 현상이 더 짙어졌다. 재벌들은 현재 대부분 3세 경영체제로 넘어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삼성이나 현대차, SK, LG, 한화와 같은 초대기업을 제외하고는 한때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재벌들이 쇠퇴하면서 산업간 양극화는 더 가속화되고 있다.

우리는 경제 양극화 현상을 비판하며 이에 대한 각종 정책을 도입해 왔다. 그런데 경제 양극화 중 주로 소득 양극화 및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양극화 두 부분에만 집중해왔지, 산업간 양극화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기울였다. 그러나 산업 양극화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대적 분포를 결정하고, 더불어 산업간 임금 격차를 불러올 수 있다. 그런 만큼 산업 양극화가 해소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세제 및 각종 지원책을 통해 인위적으로 조정한다 하더라도 소득 및 기업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산업 양극화에 대한 가장 효과적 대응은 시계열적으로 계속해서 새로운 먹거리 산업을 창출해내는 데 있다. 주력 산업이 쇠퇴할 때 이를 대체할 산업이 끊임없이 공급될 때 해소가 가능해진다. 현재 우리 경제를 먹여 살리는 산업은 온갖 비난에도 과감한 의사결정을 내렸던 1960년대 박정희 대통령의 중화학 공업 육성책과 1990년대 삼성 이건희 회장의 반도체 투자 결정, 이렇게 두 결단의 산물이다. 그러나 이후 이를 대체할 산업의 육성에 실패한 결과물로 산업 양극화 현상이 나타났고, 이로 인한 부작용이 소득 및 기업 간 양극화다. 잠재성장률이 주저앉는 와중에 분배 형평성이 악화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단군 이래 가장 번성했다는 우리 경제의 황금기를 이렇게 보낼 수는 없다. 우리 세대가 후세대에 흑역사로 기억되지 않으려면 더 늦기 전에 다음 세대의 먹거리 하나라도 제대로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