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끈한 색면와 생략된 선만으로 포착된 인물과 사물들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이목구비조차 최소한의 선으로 묘사된 얼굴은 누구인지 특정할 수 없을 뿐더러 어떤 표정일지조차 짐작할 수 없다. 그러나 누군가는 이 화면에서 행복을 읽고 사랑을 상상할 것이다. 단순한 선과 색이 주는 아름다움 속에서 관람객들은 저마다의 일상을 써내려가게 된다.
절제된 화법의 독특한 인물화로 미술 애호가의 사랑을 받고 있는 중견작가 변웅필(55)의 개인전이 서울 삼청동 호리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리고 있다. 4년 만에 열리는 개인전은 '아무렇지 않은 날들'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전시 개막을 앞두고 기자들과 만난 변 작가는 "말그대로 특별할 것이 없는 그림"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많은 작가들이 거창한 예술론과 작가론을 말하는데 때로는 조금 허무맹랑하다는 생각도 한다"라며 "중요한 의미나 철학을 표현하기 위한 회화가 아니라 회화가 가진 그 자체의 매력, 선과 색만으로도 전달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믿음 아래 작업을 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작가는 이번 전시에 선보인 신작들을 작업하며 거창한 주제 의식이나 의미 부여 대신 캔버스 위에서 색을 배치하고 형태를 다듬는 행위 그 자체에 더욱 몰두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선은 더 단순해졌고 색은 더 선명해졌다. 작가는 "젊을 때는 '이래도 되나' 혹은 '좀 더 성의를 보여야 하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에 일부러 좀 더 많은 요소를 넣기도 했다"며 "지금은 소재 고유의 매력을 잘 표현하는데 집중하려고 하는데 앞으로 더 단순해질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인물에 구애받던 소재가 사물까지 확장된 점도 새로운 변화다. 작가는 과거 일그러진 남성의 얼굴을 묘사한 '자화상' 연작으로 이름을 알렸고 이후 눈코입이 사라진 '익명의 얼굴'로 변한 '누군가(Someone)' 연작으로 오리지널리티를 진화시켰다. 이번 전시에는 '누군가'와 더불어 '무언가(Something)'까지 공존해 감상의 재미를 더한다. 작가는 "4년 전 개인전에서 '다음에는 '무언가'와 '어딘가(Somewhere)'까지 해보겠다고 약속했는데 반만 지켰다"며 "내 방식의 풍경화도 언젠가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작가는 예술가의 고집을 넘어 그림을 즐기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많이 고민한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그림 사이즈도 고민했다는 작가는 "그림을 20~30년간 그렸는데 어느날 문득 '나만의 행복이 과연 행복일까'라는 질문을 했다"며 "내 마음에 드는 것을 그리고 품질에 대해서는 타협하지 않돼 그림을 즐기는 분들도 집에 걸어놓고 싶고 소장하는 그림을 선보이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시는 12월 6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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