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대권주자로서는 이화장 첫 공식 방문
춘설 속에서도 이승만 동상 위로 햇살 비쳐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유심히 봐
종전선언 공작 무산시켰던 일화 소개하기도

이 한 발걸음에 수십 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초대 대통령 우남 이승만 박사의 사저 이화장(梨花莊)에 처음으로 대선 출마 선언을 한 대권주자가 공식 방문했다.
6·3 대선 출마를 선언한 국민의힘 대권주자 나경원 의원은 13일 서울 종로구 이화동에 소재한 이승만 전 대통령의 사저 이화장을 공식 방문했다. 대선 출마 선언을 한 대권주자가 초대 대통령의 사저를 공식 방문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날씨도 상서로웠다. 나 의원의 방문이 예고된 오후 2시 직전 돌연 강풍이 불면서 4월에 춘설(春雪)이 내렸다. 그런데도 이화장 한가운데 위치한 이승만 박사의 동상 위로는 한그루 소나무 너머로 햇살이 비쳤다.
오후 2시 정각에 도착한 나 의원이 이화장으로 걸어들어가자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자 이인수 박사의 미망인 조혜자 여사가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맞았다. 조 여사는 대권주자로서 초대 대통령의 사저를 처음 찾은 나 의원을 격하게 끌어안으며 환영했다. "여성 대통령 나와야지"라는 덕담도 건넸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김종필 자민련 총재가 이화장을 찾은 적은 있었다. 하지만 당시 대선은 'DJP연대'로 치러졌기 때문에, 대권주자가 아닌 대권주자의 러닝메이트 지위였다. 색깔 시비에 골머리를 앓던 DJ를 측면지원하는 행보이기도 했다.
2015년과 2020년에는 보수정당 대표였던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가 각각 이화장을 찾았지만 잠재적 대권주자였을 뿐, 대선 출마 선언을 한 것은 아니었다. 2008년에는 김형오 국회의장이 이화장을 찾았지만 '초대 대통령'이 아닌 '초대 국회의장' 사저 방문으로 의미가 부여됐다고 한다.
"조각당에서 제헌내각 구성하고 대한민국의 미래, 한미동맹 설계했다"

조 여사의 인도로 이승만 전 대통령 동상 앞에 선 나경원 의원은 단하에 새겨진 이 전 대통령의 명언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를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유심히 쳐다봤다. 이후 조 여사의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들어 다시 동상을 물끄러미 한동안 올려다보는 모습이었다.
본관으로 향하던 나 의원은 고개를 돌려 조각당(組閣堂)을 찾았다. 팔을 들어 반대편 한옥을 가리키며 조각당인지를 물었다. 1948년 7월 20일 초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승만 박사가 8월 15일 건국 때까지 한 달 못 미치는 기간 동안 초대 내각의 조각을 고심했던 곳이다.
이화장 본관에 들어선 나 의원은 이승만 전 대통령의 초상화 앞에 앉아 이영일 전 의원과 대담을 가졌다. 3선 국회의원을 지낸 이영일 전 의원은 서울대 문리대 재학 중 4·19 혁명을 이끈 혁명유공자 출신이다. 최근 아직 생존 중인 4·19 혁명유공자들을 이끌고 이승만 박사 묘역 참배를 성사시켰다. 초대 대통령과 4·19 세대의 '역사적 화해'를 이끌어낸 장면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나경원 의원은 "이승만기념사업회 부회장을 오래 했다"며 "이승만 대통령은 엄혹한 시절, 공산주의의 위협 속에서 자유민주주의를 고민하고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드셨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조각당을 가리켜 "위의 자그마한 집에서 제헌내각을 구성하고 대한민국의 건국을 고민했고 미래를 설계했다"며 "6·25 이후에는 서울로 돌아와 한미동맹을 만들어냈다"고 평가했다.
"춘설(春雪), 영화 제목으로만 있는 줄 알았는데…좋은 결실 있을 것"

이에 이영일 전 의원은 "나경원 의원은 국민의힘 내에서 '이승만기념관 조기건립추진위원회'를 맡아 국회의원들을 조직해 동참시켰다"며 "대선 출마 선언을 하고 이렇게 이화장을 찾아 포부를 밝혀줘 정말로 고맙게 생각한다"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아울러 "아까 보니까 눈이 섞여 내리던데 춘설이라는 것은 영화 제목으로만 있는 줄 알았더니 나 의원이 이화장을 찾으니 춘설이 다 내린다"며 "좋은 결실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응원을 건넸다.
대권주자로서 수십 년 세월만에 초대 대통령 사저인 이화장을 첫 공식 방문한 나 의원은 자신의 대선 출마 명분을 이승만 전 대통령의 '담판외교'에서 찾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승만정부 시절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대한민국 외교사의 기적적 성과로 평가받는다. 2차대전 직후 세계에서 혼자 잘 살던 초강대국 미국이, 전쟁으로 온국토가 폐허가 된데다 세계 최극빈국인 대한민국과 '동맹'을 맺어줘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전 대통령이 '담판'을 통해 한미동맹을 이끌어내 우리나라는 방위비 부담을 덜고 경제성장에 진력하면서 '한강의 기적'을 이룰 수 있었다. 안보 불안을 걷어냄으로써 아시안게임·올림픽·월드컵을 잇달아 개최하며 국격을 높이고 지금과 같은 평화와 번영의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었다는 평가다.
나 의원은 이날 대담에서 이 박사가 만든 한미동맹의 틀을 허물려는 시도를 자신이 한몸 던져서 막아냈다는 점을 어필했다. 문재인정권 시절 추진됐던 종전선언 공작을 저지했다는 것이다. 종전선언이 체결되면 주한미군 주둔의 명분이 사라져 주한미군 철수와 안보 불안으로 이어지게 된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통합의 정치, 반드시 해내겠다"

나경원 의원은 "문재인정권 때 종전선언을 추진하려 할 때 당시 국가안보보좌관이었던 볼턴과 담판을 지어서 꼭 막아달라고 약속을 받았다"며 "문재인정권 말기에 종전선언을 한 번 더 추진을 해서 미국 의회에 종전선언 촉구결의안이 정식 의안으로 채택되려 하기에, 직전에 미국으로 날아가서 의원 34명을 설득해 막아냈다"고 자부했다.
이어 "이승만 대통령이 이런 기적을 만든 것은 이 대통령께서 외교적 능력과 정치력이 있으셨기 때문으로 생각한다"며 "이 대통령이 한미동맹을 만들어내신 것도 결국은 담판외교의 성과"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지금 대외적으로는 트럼프 정부의 등장으로 인해 안보와 경제의 위기인데, 나도 정치를 오래 한데다 외통위원장을 했다"며 "그래서 이번에 용기를 내서 국민을 위해 한 번 해보겠다고 나섰다. 이승만 대통령의 리더십을 다시 한 번 생각하면서, 특히 해방 이후와 6·25 이후의 리더십을 배울 것"이라고 다짐했다.
대담 직후 기자들과 만난 나 의원은 다시 한 번 이승만 전 대통령의 명언을 상기시키며 '통합의 정치'을 천명했다.
나경원 의원은 방문 소감을 묻는 질문에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이승만 대통령의 중요한 말씀"이라며 "지금 우리 대한민국이 큰 위기다. 국민 모두를 함께 뭉치게 하는 통합의 정치가 필요할 것"이라고 답했다.
나아가 "이승만 대통령의 생각을 받아서 우리 국민의 에너지를 하나로 만들겠다"며 "대한민국의 위기 속에서 다시금 도약할 수 있도록 정말 반드시 해내겠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