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벽까지 뜯은 100억 ‘유령’…“사치” 쏟아진 욕, 노림수였다

2025-08-07

한국 뮤지컬사에서 B.C와 A.D를 나눈다면 기원이 되는 작품이 뭘까. 열이면 아홉, 아니 열 명 모두가 ‘오페라의 유령’을 꼽지 않을까. ‘바다여 말하라’ ‘상록수’ ‘달빛 나그네’ 등 초창기 창작 뮤지컬을 이끌었던 박만규 제작자는 『한국 뮤지컬사』(한울·2011)에 이렇게 썼다.

뮤지컬이 국내에서 문화산업으로 떠오른 것은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이 막을 올린 2001년부터라고 할 수 있다. 제작비는 물론 공연에 참여한 스태프들의 규모나 공연 기간 역시 우리 뮤지컬 사상 최초라는 기록을 세웠다.

2001년 12월 1일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현 GS아트센터)에서 한국 초연, 이듬해인 2002년 6월 30일 244회차로 종료. ‘오페라의 유령’은 공연 기간부터 역대급 시도였다. 7개월에 이르는 대형 공연을 돌리기 위해 팬텀(유령), 크리스틴, 라울 등 주요 배역에 3명 혹은 4명 배우를 복수로 캐스팅했는데, 당시로선 전례 없는 시도였다. 제작비 100억원 이상, 프러덕션 참가 인원 200~250명도 역대 최대 규모였다. 예매율 94%, 총 24만여 관객, 150여억원 매출 역시 국내 최고 기록이었다. 초연 이후에도 2005년·2009년·2012년·2020년·2023년 등에 내한 혹은 라이선스 공연이 이어지면서 국내 누적 관객 200만 명을 넘어섰다.

수중에 있는 돈을 박박 긁어모아 60만원짜리 할인 항공 티켓 한 장을 샀다. 어떤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무작정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빈손으로는 귀국하지 않겠다는 다짐만 거듭했다.(중략) 하루도 빠지지 않고 브로드웨이로 가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머제스틱 극장에서 공연되는 ‘오페라의 유령’을 보기 위해서였다.(중략) 1막이 끝나고 관객이 빠져나간 객석을 돌아봤다. 그런데 감동에 겨워 눈물을 훔치느라 자리를 뜨지 못하는 동양인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바로, 저거다. 나만 유령에게 매혹된 게 아니다. 반드시 ‘오페라의 유령’을 한국 무대에 올려야 한다. 이건 숙명이다.”

(『헤이, 미스터 프로듀서』, 다할미디어, 2011, 38~39쪽)

설도윤(66) 프로듀서(에스앤코 예술총감독)가 돌아본 운명의 순간이다. 당시 그는 운영하던 서울뮤지컬컴퍼니가 외환위기(속칭 IMF) 여파로 1998년 문을 닫은 뒤 무일푼 신세로 뉴욕을 찾았다. 모든 것이 끝난 듯 암담했지만 그럴수록 환상의 무대에 취하고 싶었다. 그때 새롭게 눈에 들어왔다. 이미 수차례 봤던 유령의 절규가.

가스통 르루의 소설 『오페라의 유령』을 원작으로 하는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1986년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1988년엔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막을 올렸다. 양대 뮤지컬 허브에서 각각 사상 최장기로 연속 공연된 작품이다. 전 세계 누적 관객 1억4000만 명 이상일 뿐 아니라 1988년 토니상 작품상을 포함해 7관왕에 오르는 등 흥행과 비평을 동시에 잡았다.

내로라하는 공연 관계자라면 누구든 앤드루 로이드 웨버 작곡가의 신들린 선율과 ‘무대의 연금술사’ 카메론 매킨토시 제작자가 빚어낸 마력의 무대를 탐냈다. 한국에서도 1995년 삼성영상사업단과 쌍방울그룹 자회사 EX가 공연 유치를 위해 문을 두드리기도 했다. 하지만 작품 IP(지적재산권)를 보유한 영국 RUG(The Really Useful Group Ltd.)의 눈높이는 깐깐했다. 마치 ‘오페라의 유령’을 공연하려면 한국이란 나라가 자격증을 따거나 오디션에 합격해야 할 것 같았다. 그렇다면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설 감독은 뭐가 달라 그걸 통과한 걸까.

불세출의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RUG

1977년 영국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77)가 설립한 더 리얼리 유스풀 그룹(The Really Useful Group)의 약자. 극장 사업 외에 영화 제작, 콘서트 프러덕션, 음반 사업, 잡지 출판까지 다방면의 비즈니스를 하는 굴지의 엔터테인먼트 기업이다. 영국 런던 본사는 유럽 전반을 직접 매니지먼트하고, 뉴욕 지부가 미주 시장을, 호주를 기반으로 하는 리얼리 유스풀 컴퍼니 아시아 퍼시픽(RUC)가 한국·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을 담당한다.

주요 레퍼터리는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터’ ‘에비타’ ‘캣츠’ ‘스타라이트 익스프레스’ ‘오페라의 유령’ ‘뷰티풀 게임’ ‘사운드 오브 뮤직’ ‘스쿨 오브 락’ 등이다.

비상장기업이라 정확한 기업 가치를 알순 없지만 2023~24 회계연도 기준 공개정보에 따르면 연매출 3430만 파운드(약 430억원) 규모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 작곡의 모든 지적재산권(IP)을 소유하고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한 영화·앨범 등 N차 저작물 생산도 활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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