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벽 안에 있는 것처럼 발가벗겨진 느낌”…과거 국정원 사찰 피해자들이 본 국정원의 사찰 방식

2025-02-26

지난 22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인근에서 만난 세월호 유가족 김영오씨(57)는 종이 한 장을 넘길 때마다 한숨을 쉬었다. 지난해 3월 국가정보원이 주지은씨(46)를 사찰했던 ‘대치팀의 카카오톡 대화방’(대치팀방)의 내용이었다. 담담한 표정으로 그가 말했다. “영화 같네요. 나도 이렇게 당했을까요.”

지난 21~22일 경남 진주시와 서울 상암동에서 과거 국정원 사찰 피해자들을 만났다. 국정원 프락치 사건 피해자 최승제씨(50)와 세월호 사찰의 피해자 김씨다. 이들은 “주지은씨와 자신들 사건이 유사하다”며 “같은 일이 또 벌어졌다”고 말했다. 사찰의 책임을 묻기는커녕 피해자인 자신의 정보도 받을 수 없는 게 현실이고, 이 때문에 국정원의 무제한적 정보수집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취지의 말이다.

김씨는 사찰을 당하고 난 뒤 차를 운전할 때 꼭 룸미러로 뒤를 확인한다고 했다. 누군가 뒤를 따라올까 길을 걸으면서도 자꾸 확인한다고 했다. 그만큼 국가기관에 의한 사찰은 “치욕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내가 뭘 하고 다녔는지 또 누구를 만났는지 내가 뭘 먹고 있는지 다 진짜 유리벽 안에 있는 것처럼 발가벗겨진 느낌이거든요. 근데 불법이 아니라고 해요. 저는 그냥 당했다는 사실만 머리에 집어넣고 살아야 하는 입장밖에 안 되는 거죠.”

이들은 주지은씨의 이력을 물었다. 학생운동 이력이 있다고 하자 김씨는 “이분(주지은씨)도 자신처럼 몰아가기 쉬운 사람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김씨는 노동조합 소속 이력 때문에 사찰당했다.

이력이 왜 중요한 걸까. 2014년부터 5년간 국정원에 매수된 ‘프락치’와 함께 살며 24시간 사찰을 당한 최씨는 “국가보안법 위반 건인데 연결이 돼야 한다”며 “그전에 다른 사건과 연결해 시나리오를 만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상 그대로만 보고하면 사찰 이유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는 “이같은 사찰 정보가 진술서를 받는 근거가 된다”고도 했다. 국정원 프락치 사건에서 국정원 직원은 사찰 정보에 기반해 프락치에게 진술서를 받았다고 한다.

이들은 국정원이 사찰을 이어온 데에는 “빠져나갈 길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세월호 사찰 피해자 김씨는 “저를 반국가세력이라고 표현하는데, 그게 ‘빨갱이 지령을 받았다’고 하는 것”이라며 “북하고 연결시켜서 (사찰 사실이) 밝혀지더라도 간첩으로 몰아가려고 하는 거 같다”고 말했다.

이들은 한국 사회의 레드 콤플렉스를 짚기도 했다. 최씨는 “문재인 정부 고위직에게 내 사건을 물었을 때 건너 들었던 답변이 ‘근데 진짜 아이가?(진짜 간첩 아니야?)’였다”며 “이런 인식이 우리 안에 있는데, 개혁이 제대로 될 수 있느냐”고 말했다.

김씨는 “다른 사찰 당한 사람 이야기를 들어보면 진짜인가 반감이 드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빨갱이들이 선동한다고 할까 우려된다”며 “대한민국은 당해보지 않으면 모르니까. 그래서 국정원이 더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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