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하얼빈>, 얼어붙은 두만강 건너 그곳으로 …고뇌하는 독립 투사들

2024-12-19

CG최대한 줄이고 몽골·라트비아 등서 촬영 … 당시 배경 잘 살려내

감초 캐릭터 빠지고 연극적 장면도 …‘CJ’영화 전형 벗어나려 고심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를 다룬 영화 <하얼빈>이 24일 개봉한다. 2024년 최고 기대작 중 하나인 이 영화는 12·3 비상계엄 사태로 직격탄을 입은 극장가에 훈풍을 불어넣을 수 있을까. <하얼빈>이 18일 언론·배급 시사를 통해 베일을 벗었다.

한국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이야기다. 1908년 함경북도 신아산에서 안중근이 이끄는 독립군과 일본군이 전투를 벌인다. 적은 병력으로 승리를 거둔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은 전쟁 포로인 일본군을 풀어주고, 이는 곧 독립군의 희생으로 이어진다. 1년 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안중근과 동지들이 다시 모인다. 조선 식민지화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와 협상을 위해 하얼빈으로 향하자 그를 제거할 계획을 세운다.

영화는 신아산 전투를 시작으로 하얼빈 의거라는 정해진 결말을 향해 달려간다. ‘역사가 스포일러’라는 말처럼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지만, 영화는 의거 자체보다 거사를 치르기까지 독립투사들이 느끼는 고뇌와 서로를 향한 의심을 주된 재료로 삼는다. 일본이 심은 밀정은 은밀한 작전 정보를 흘리는 한편 독립군들 사이에 균열을 낸다.

<남산의 부장들>, <내부자들>의 우민호 감독이 연출했다. 한국의 굴곡진 현대사를 스릴러 장르 안에서 유려하게 풀어온 감독이다. <하얼빈>에서 그는 특유의 묵직하고 차가운 연출, 미장센 안에 1900년대 초 혼란기를 끌어들인다. 무채색을 제외한 컬러를 극도로 제한하거나 빛과 어둠을 활용하는 연출 방식도 그대로다.

감독의 야심은 미니멀한 서사와 대조적인 촬영에서 특히 드러난다. <하얼빈>은 전체 분량이 아이맥스 포맷으로 제작됐다. 한국 영화로는 처음이다. 컴퓨터그래픽(CG)의 사용을 최대한 배제하고, 6개월에 걸쳐 한국·몽골·라트비아 3개국을 오가며 당시의 풍경을 살려냈다. 독립군을 괴롭힌 영하 40도의 극한의 추위는 화면 밖을 뚫고 나온다. 그중에서도 동지를 모두 잃은 안중근(현빈)이 꽁꽁 언 두만강을 홀로 건너는 장면은 압도적이다. <기생충>, <곡성>으로 잘 알려진 홍경표 촬영 감독의 손길로 탄생한 명장면이다.

<하얼빈>은 여러모로 관객의 기대와 예상을 빗나가는 영화다. <밀정>, <암살> 등 일제강점기 독립투사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 종종 등장하나, 이들과는 다른 길을 간다. 관객의 눈물을 노리는 노골적인 연출은 자제한다. 한국형 블록버스터에 흔히 등장해 웃음을 선사하는 감초 캐릭터도 없다. ‘CJ ENM 표 대작’ 하면 떠오르는 전형에서 벗어나려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 이 지점에서 <하얼빈>은 개성을 획득한다. 다만 어떤 선택은 의아하게 느껴지거나 우선순위가 뒤바뀌었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톱스타 현빈이 안중근을 연기했다. 인간적 면모를 갖춘 영웅의 모습은 현빈의 안정적인 연기로 재현된다. 조우진, 박정민, 전여빈, 유재명, 이동욱 등은 안중근의 동료들처럼 영화를 든든하게 떠받친다. 안중근에게 집착하는 일본군 모리 역의 박훈은 <서울의 봄>에 이어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다.

이토 히로부미 역의 일본 배우 릴리 프랭키는 짧은 등장만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어느 가족> 등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작품 속 다소 나른한 연기로 국내 관객에게도 친숙한 배우다. 시나리오에 반해 출연을 결심했다는 그는 영화 속 독립군들의 말처럼 한 마리 ‘늙은 여우’ 같은, 그러나 위엄 있는 인물로 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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