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론직설] “석화 구조조정 ‘기업 자율’ 우선…화평·화관법도 수술해야”

2025-08-25

정부가 최근 중국의 물량 공세에 밀려 위기에 처한 석유화학 업종에 대한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했지만 실행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크다. 정부와 민간 기업이 구체적 로드맵과 실행 방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골든타임을 놓칠 경우 반도체·자동차·조선·섬유 등 여타 주력 산업도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25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석유화학 구조조정은 민간 기업의 ‘자발적인 빅딜’이 우선이고 정부는 세제 혜택과 규제 완화를 측면 지원하는 방식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중국이 추격해온 범용 분야에서 탈피해 스페셜티(고부가가치) 분야로 빠르게 궤도 수정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우선 규제 완화 방안으로는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과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을 꼽은 이 교수는 “화평법과 화관법은 석유화학 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려 기업을 퇴출시키는 악법”이라며 “앞으로 정밀화학 분야로 구조조정이 이뤄지는 만큼 이참에 이들 법안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석유화학 산업의 위기 원인은 무엇인가.

△중국의 과잉 투자와 물량 공세 탓이 크다. 지금까지 중국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교역 상대국이었지만 이제는 두려운 존재로 둔갑했다. 공급자 우위 지위를 십분 활용해 처음에는 요소 부문에서 물량 공급을 늘리더니 지금은 석유화학, 앞으로는 정밀화학 분야로 공세 범위를 확대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중국이 우리 산업을 추격해왔는데 언제 한국이 추격자 신세로 전락할지 알 수 없다. 우리의 내수 시장을 지켜내지 못하면 언제든지 차이나 공세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 요소수 사태가 대표적이지 않나.

-좀 더 자세히 설명한다면.

△우리가 석유화학 산업을 시작한 때가 1960년대 중반이다. 충주비료를 비롯해 호남비료·한국비료 등 공장을 대거 지었고 이것이 정유 분야, 석유화학 산업으로 이어졌다. 중국은 2000년대 들어서야 요소 생산을 시작했다. 요소는 독일인 프리츠 하버가 개발했는데 지금은 특허권도 소멸된 상태다. 중국이 대규모 투자와 물량 투입으로 저가 요소 생산에 나서면서 시장을 장악했다. 반면 한국은 환경오염 문제가 제기되는 데다 중국 저가 제품을 수입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해 결국 2012년 요소 생산을 중단하고 말았다. 2021년 요소수 사태는 국내 생산 기반이 취약하면 언제든지 중국의 물량 공세에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국 주력 산업이 요소수 사태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말인가.

△그렇다. 석유화학 업종은 시작에 불과할 수 있다. 우리 경제를 지탱하는 반도체·자동차·조선·철강 분야에 언제든지 중국이 대규모 투자와 물량 공세를 앞세워 추격해올 수 있다. 일부 업종은 이미 역전된 상태 아닌가. 벼랑 끝에 몰린 석유화학 산업이 내수 시장을 중국에 내준다면 우리는 이 분야에서 중국의 속국이 될 수 있다. 지금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는데 정부 관계자, 기업 오너, 금융권이 명심해야 할 부분이다.

-석유화학 산업은 어디에서 생존 전략을 찾아야 하나.

△중국이 따라올 수 없는 분야에 투자해야 한다. 1980년대부터 범용화학 생산에서 스페셜티 분야로 무게중심을 옮겨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는데 정부도 기업도 외면했다. 40년 동안 현실에 안주하며 행동하지 않은 결과가 지금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대규모 투자로 공급을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었는데도 우리 정부는 안이하게 대처했고 기업도 투자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이것이 큰 패착이다. 일본도 우리와 같은 길을 걸었다.

-지금이라도 우리 정부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나.

△기업들은 고부가 스페셜티로의 전환에 속도를 높이고 정부는 세제 혜택과 규제 완화 등 지원에 적극 나서야 한다. 대기업에 대한 특혜 운운하는 것은 현실을 모르는 소리다. 스페셜티 제품은 종류가 다양하고 제품 개발에도 막대한 투자 비용이 들어간다. 정부가 측면에서 지원해야 한다. 우리 스스로 석유화학 소재를 지켜내지 못하면 여타 주력 산업의 기반도 하나둘 무너질 수 있다.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정부 역할이 중요할 텐데.

△지난 15년간 우리 사회는 석유화학 산업에 대해 굉장히 왜곡된 인식을 갖고 있다. 더럽고 위험하다는 인식이 팽배하면서 화평법·화관법이 만들어졌다. 이 두 가지 법은 ‘화학산업 퇴출법’에 다름 아니다.

-왜 그렇게 보나.

△법 제정의 취지와 목적을 상실했다. 화관법은 기업이 생산·사용하는 화학물질에 대한 위해성 정보를 환경부에 등록하도록 하고 있다. 환경부가 기업 비밀을 지켜준다고 하는데 그렇게 한다고 국민이 안전해지고 환경이 깨끗해지나. 국민 기만적인 규제로 가득하다. 화평법은 더 심각한 규제 내용을 담고 있다. 유럽의 화평법인 ‘리치(REACH)법’을 벤치마킹했는데 잘못 적용하고 있다. 리치법은 환경과 국민 안전 확보, 상거래 활성화, 산업 육성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지만 한국은 산업 육성을 쏙 빼버렸다. 규제만 강요하고 산업 육성은 없는 ‘기업 죽이는 악법’이 되고 말았다.

-정부와 기업이 석유화학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고 있는데.

△많이 늦었다. 정리해야 할 기업이 많지 않았던 조선 업종과 달리 10개가 넘는 기업이 있는 석유화학은 구조조정에 난항을 겪을 것이다. 공정거래법 때문에 자유롭게 이합집산하는 것도 제한적이었다. 우선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민간 기업이 자발적인 구조조정에 나서야 한다. 민간의 ‘자율적인 빅딜’이 우선이다. 정부 특혜 시비를 줄여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정부는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구조조정을 단행해서는 안 되고 세제 지원과 규제 완화에 초점을 둬야 한다.

-여당 주도로 노란봉투법과 상법 2차 개정안이 통과됐다.

△미국 관세 협정 등 아쉬울 때는 기업에 손을 내밀더니 뒤돌아서는 기업의 발목을 잡는 법안을 양산하고 있다. 기업을 바라보는 정치권의 시각이 반기업으로 흘러가고 있어 걱정이다. 이런 법안은 ‘대선 청구서’를 들이밀고 있는 노동조합에 힘을 실어주는 것인데, 이제는 이런 부분들도 우리 현실에 맞게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논의가 진행돼야 한다. 이전에는 야당의 동의를 얻거나 의견 차이를 좁히는 과정이 있었는데 지금은 여당 단독으로 일방적으로 처리되고 있다. 다수당의 횡포라고 볼 수 있다.

-밖으로는 미국의 관세 압박이 거센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압박은 세금을 높이는 차원을 넘어 미국으로 공장을 이전하라는 강력한 메시지다. 실제 자동차와 반도체 공장이 미국에서 추가로 건설되고 있고 조선·철강도 사정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우리 주력 산업이 ‘트럼프 라운드’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데 무섭다는 느낌이 든다. 일각에서 트럼프에 대해 ‘현대판 제국주의자’라고 비난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이 앞으로 더 강화될 것으로 보여 불안하다. 우리 정치권도 트럼프처럼 기업을 챙기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힘이 팬덤 세력의 눈치를 보며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데 지금은 힘을 모아 미국 관세 압박에 대응해야 한다.

-화제를 기초과학 분야로 돌려보자. 역대 정부의 대응이 아쉽다고 했는데.

△사람들은 역대 정부가 과학기술에 대규모 투자를 해오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착각이다. 기술에 대한 투자에 집중돼 있고 기초과학 투자는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한국이 노벨상을 받기 어려운 것은 이러한 현실적인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 때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를 시작했지만 윤석열 정부 때 ‘카르텔 발언’ 사태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이재명 정부는 ‘인공지능(AI) 3대 강국’을 기치로 내걸었는데 AI 분야에만 매몰되지 말고 기초과학 분야에 대한 투자와 지원도 병행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과학기술혁신본부장에 실험 물리학자를 발탁했는데 여기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이재명 정부의 원전과 신재생에너지 정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이재명 정부의 에너지 믹스 정책은 한마디로 ‘소극적인 탈원전’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탈원전에서 불거지는 심각한 사회문제를 경험했기 때문에 탈원전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있을 뿐이다. 또 헝가리·체코 등 원전 수출이 성과를 내면서 이전보다 원전에 대한 거부감도 줄어들었지만 기본적으로 탈원전 색채가 강하게 남아 있는 것은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이재명 정부가 시그니처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는 서해안 에너지 고속도로는 태양광과 풍력을 이용한 재생에너지 사업이다. 우리나라는 지형적인 여건상 태양광의 경우 연평균 하루 4시간, 풍력은 5시간가량 가동할 수 있는 수준이다. 제대로 된 에너지 믹스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에너지 정책이 주민 생활 수준 개선과 연계된 복지 정책이나 지역 활성화 정책으로 변질되고 있어 걱정이 앞선다.

He is…

1954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화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쳤다. 미국 코넬대에서 비선형 분광학, 양자화학, 과학커뮤니케이션 분야를 연구하고 이론화학 박사를 받았다. 서강대에서 35년간 화학을 가르치고 대한화학회 회장, 국제화학올림피아드 조직위원회 사무총장,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 기초과학단체협의회 회장 등을 지냈다. 사회와 과학, 과학과 정책, 인문사회학과 자연과학 간 소통을 확장하는 ‘과학커뮤니케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2006년 과학기술부가 선정한 ‘닮고 싶고 되고 싶은 과학기술인상 사회문화 부문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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