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채의 센스메이킹] 〈69〉누가 전문가인가

2024-11-04

AI 스타트업 앤트로픽(Anthropic)이 AI 에이전트 기능 '컴퓨터 사용'을 지난달 23일 공개했다. 이전까지의 AI 모델들은 대화, 코드 작성, 글쓰기, 분석 등의 텍스트를 처리하는 수준에 머물렀지만, 이번 '컴퓨터 사용' 기능은 제공되는 API 연결을 통해 AI가 마치 사람처럼 개인용 컴퓨터의 브라우저를 통한 실제 인터넷 검색, 코드 실행, 파일 열기 및 내용 확인, 이미지 생성 등의 직접적인 조작이 가능하도록 한다. 이 기능은 마치 사람이 개인용 컴퓨터의 화면을 보고 마우스 커서를 움직여 버튼을 클릭하고 텍스트를 입력하는 등 컴퓨터를 직접 조작할 수 있도록 한 혁신적인 기능이다. 유튜브 채널에 공개된 시연 영상에서는 엑셀 파일에 정리된 내용을 관련 웹사이트에 옮기거나 친구와 함께 방문할 장소를 검색해 달력 앱에 일정을 저장하거나 90년대 스타일의 웹사이트를 제작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우리가 얼마나 자주 반복적이고 지루한 일에 많은 시간을 쓰는지를 생각해 보면, 단지 해야 할 일을 설명하기만 해도 이를 자동으로 처리해 주는 이러한 경험은 매우 놀라운 순간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AI 에이전트의 등장은 단순히 기술의 진화를 넘어 우리의 일하는 방식과 전문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반복적이고 지루한 작업들이 자동화됨에 따라, 우리는 AI에게 어느 수준까지의 자율성을 부여할 것인지, 그리고 이런 변화 속에서 인간의 전문성은 어떻게 재정의되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된다. 무엇보다 현재 누가 전문가인지 확신할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역사적으로 전문가들의 집단 또는 전문가들로 인정받아 왔던 언론, 학계, 금융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의 전문가들은 이제 스스로를 전문가라 칭하는 데에 있어 조심스러움을 경험하고 있다. 최근 하이브의 업계 인물 평가 보고서 논란은 전문가들의 판단과 대중의 신뢰 간의 간극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맥킨지의 조사에 따르면, 정보의 신속성과 접근성을 중요시 여기는 Z세대는 기성세대보다 틱톡, 유튜브 등의 소셜 미디어를 통한 금융 정보 습득 비율이 5배나 높았다.

신뢰, 책임감, 안정성의 가치를 상징해 온 전문가들이 왜 이처럼 이전만큼 인정받지 못하게 된 걸까? 작가이자 문화 이론가인 매트 클라인은 얼마 전 인문학 기반의 컨설턴시 ReD가 주최한 모임에서 '현재의 전문성'이 두 개의 벽을 마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젊은 세대가 학계나 편향된 저널리즘 같은 전통적인 기관에서 지식을 얻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으며, 이러한 기관들이 드러내 온 한계를 인정하는 겸손함의 부재로 마주한 어려움을 일종의 역풍이라 표현했다. 이에 따라, Z세대는 전통적인 기관에 의존하기보다는 스스로 공부한 지식을 공유하려는 이들에게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이는 전례 없이 모든 것이 연결되고 정보가 빠르게 이동하는 인터넷 시대에서 더욱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따라서 지금의 젊은 세대가 전문 지식을 추구하는 방식, 나아가 진실을 찾는 방식이 기존과는 다르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접근하고 더 쉽고 실용적인 정보 제공자를 찾아다니는 경향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특히 Z세대의 맥락에서 보면, 이들은 전통적으로 전문가로 여겨지는 사람이나 기관의 권위를 무조건 수용하지 않고, 필요할 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지식을 찾아 나서는 경향을 보인다. 전문가가 되는 것은 더 이상 특정 학위나 직위, 기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누가 더 신뢰할 수 있고 유용한 정보를 쉽게 제공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들은 정보를 공유하는 방식, 접근성, 그리고 자신들과의 연관성을 기준으로 전문가를 판단한다. 따라서 그들에게 있어 전문성은 전통적인 권위나 자격에 의존하지 않고, 문제 해결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능력과 그들의 세계에 얼마나 연결되어 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AI 에이전트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더 많은 일상적 과제를 자동으로 처리해 줄 것이다. 이때 우리는 인간으로서 그 여유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해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AI가 반복적 작업을 처리하는 동안 우리는 창의적 문제 해결, 인간적 소통, 그리고 감정적 지지와 같은 고유한 가치를 발전시키는 데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특정 분야의 전문가로 인정받고자 한다면, 이제 단순히 업무 숙달에만 집중하기보다는, 현세대가 원하는 형태로 정보를 제공하고 그들과의 상호작용을 중요시해야 할 것이다. 이 시대의 전문가는 누구인지, 나는 내 분야에서 전문가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이제 우리의 새로운 기대와 역할에 맞게 변화해야 함을 요구하고 있다.

손병채 ROC(Reason of creativity) 대표 ryan@reasonofcreativit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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