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기서는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서 저 전봇대 밑을 보고, 이곳에서는 천천히 운행하며 차와 차 사이 틈 속 음식물쓰레기통을 찾아야 합니다. 저 음식물쓰레기통은 칩이 없지만, 내려서 꼭 확인해야 해요. 칩 꽂는 구멍이 헐거워서 자주 통 근처에 음식물 칩이 떨어져 있거든요! 그리고 저기에는 쓰레기 더미 안에 음식물쓰레기통이 숨겨져 있을 겁니다. 저 가게는 음식물 칩이 없어도 그냥 수거해 줘요. 칩 꽂지도 않고 꽂았다고 민원 넣는 식당이기에 속 시끄럽거든요!”
내가 연차를 사용하거나 휴가일 때, 나 대신 담당구역을 맡아줄 신입사원에게 길을 가르치기는 쉽지 않다. 처음 접하는 낯선 지역에 낯선 골목, 거기에다 때론 숨겨져 있는 음식물쓰레기통을 찾는 것은 어렵다. 나 역시 지금의 담당구역이 익숙해지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금은 눈감고도 느낌만으로도 음식물쓰레기통이 어디 있는지 찾을 수 있지만, 처음에는 길을 외우기부터 쉽지 않았다.
나는 나를 대신할 다른 사원을 교육할 때, 지금 작업이 숨은그림찾기와 같은 놀이라고 이야기한다. 이것은 실제로 내 경험담에서 나온 이야기로 가끔 엉뚱한 곳에서 처음 배출된 음식물쓰레기통을 발견하면 민원을 하나 막았기에 보물을 찾은 것처럼 기분이 좋다. 마을버스와 같이 골목 골목을 누비며 일정한 코스를 매일 돌기에 새로 이사 온 집에서 처음 음식물쓰레기통을 배출할 때 단번에 찾는 것은 어렵다. 매일 반복되는 수거와 그로 인해 눈이 바라보는 시야는 매번 같기에 새로 배출한 신규 음식물쓰레기통의 위치를 인식하는 것은 힘들다. 이것은 나뿐 아니라 우리 회사 직원 모두가 공감하는 이야기로 우리는 매일 같은 곳만을 바라보며 일을 한다.
신입사원을 교육할 때, 처음에는 조수석에 태워서 길만 외우게 하며, 신입사원이 길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음식물쓰레기통이 있는 위치를 서서히 익히게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뚜껑 위 홈에 꽂혀 가로와 세로가 3cm도 안 되는 초록색 음식물 칩을 보는 법을 가르쳐 준다. 나는 양쪽 눈이 모두 1.2 이상으로 좋은 편이고 오랫동안 뚜껑 위 칩을 보며 일했기에 훈련이 충분히 되었지만, 눈이 나쁜 초보는 어두운 밤에 칩을 확인하는 것이 힘들다.
“아니, 저기 칩 붙어 있잖아요! 저것 그냥 지나치면 큰일 나요! 수거 안 했다고 민원 들어오면 피곤해진다고요! 도대체 몇 번째 그냥 지나치는 겁니까! 지금 약 올리는 겁니까!” 한번은 교육하던 중, 어이가 없어 심하게 화를 낸 적이 있다. 그런데 나는 잠시 후, 바로 사과했다. 교육을 받으러 온 신입사원이 버젓이 녹색 칩이 붙어있는데도 내게 없다며 ‘오라이’를 계속 외쳤다(보통 칩이 없으면 ‘오라이’를 외치며 빠르게 지나간다). 그 신입사원은 적록 색약이라 어두운 곳에서는 녹색의 구분이 잘되지 않았고, 내가 여러 번 화를 낸 후에야 그는 자기가 적록 색약이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어이가 없어 왜 처음부터 말하지 않았냐며 물었는데, 그는 그날이 첫 출근 날이었고 음식물 칩의 색깔이 녹색이라고는 생각지 못해 자신도 많이 당황했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오히려 아무것도 모르고 심하게 화를 낸 나 역시도 미안했다. 이 경험으로 나는 교육 받으러 온 신입사원이 칩을 잘 보지 못하고 지나치면 꼭 적록 색약인지를 먼저 확인한 후, 마음껏 화를 낸다. 물론 농담이다.
각종 쓰레기 및 재활용품을 수거하는 용역업체에서 일한 지 이제 햇수로 10년이 넘었다. 그리고 같은 담당구역에서 7년 넘게 반복된 일을 하기에 숨은그림 찾는 것에 흥미를 잃어가고 있다. 그래서 다른 숨은그림찾기를 하고 있다.
이제 날씨가 더워지고 있고, 음식물 안에는 초파리 구더기가 꿈틀거리고 있다. 음식물쓰레기통 뚜껑을 여는 순간 날아오르는 초파리는 성가시지만, 이 초파리는 유전학에 도움을 주어 인류의 건강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초파리 연구로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만 7명이나 된다. 매 여름 성가시기만 한 초파리가 현재 유전학을 창시한 생물이라는 이야기에 초파리를 마주하는 내 시선이 달라졌다.
치킨집에서 나오는 음식물쓰레기는 대부분 당연히 닭이다. 그런데 닭은 공룡의 후손이다. 우리가 대다수 알고 있는 공룡은 매우 큰 덩치를 자랑하지만, 지금까지 발굴한 2000종 가까이 되는 공룡 중 절반은 성인의 무릎 높이보다 작다. 그중 우리가 매일 먹는 닭과 달걀은 조류형 수각류(이족보행) 공룡이다. 오래전에 멸종한 공룡, 그의 후손으로부터 단백질을 공급받는다는 사실이 놀랍다.
음식물쓰레기 안에도 과학이 살아 숨 쉰다. 비록 먹고 버리는 음식물쓰레기이지만, 그 안에는 숨은그림(이야기)이 숨겨져 있다. 내가 그 안에 숨겨진 이야기의 가치를 알아보는 순간 그 그림은 달라진다. 앞으로 내가 수거하는 음식물쓰레기 안에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봐야겠다.
이형진 환경미화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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