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로 가는 길목에서

2024-09-19

폭염이 지속될 예정이라고 한다. 태풍이 지나고 모든 정황을 살펴봐야 앞으로의 일기를 예측하는데 그 속에 열기를 식힐 찬 북쪽의 고기압이 내려와야 한다고 연일 전문가들이 나와 심층 분석하며 말한다. 그만큼 지금 견디는 열기가 물러나는 것이 싶지 않다는 뜻이고 올겨울은 유난히 더 추울거라는 전망도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폭염과 혹한의 일상, 얼음을 타고 흘러내리는 검붉은 커피의 색이 영롱하다. 커피향을 맡으며 스비리도프의 ‘올드 로망스’를 겨울 눈보라 날리는 나목의 텅 빈 숲을 상상 하며 폭염을 식히는 심정으로 듣는다.

스비리도프는 쇼스타코비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푸시킨 탄생 200주년 기념하여 그의 소설을 배경으로 만든 영화 ‘눈보라’에 삽입된 ‘올드 로망스’는 슬프고 어두운 단조 선율로 한겨울 시린 날에 듣고 싶은 곡이지만 이렇게 뜨거운 폭염이 지속되는 날에도 문득 떠올려진다.

끝없이 펼쳐진 자작나무숲을 눈보라가 휘몰아치다가 멈춘 설경의 쓸쓸하고 적막하고 구슬픈 러시아 특유의 음색은 한국인들의 ‘한’이라는 정서에 잘 스며들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같다. 애잔하고 구슬픈 음률의 사이사이에 배인, 가슴 한편이 저린 듯 시리도록 차갑고 싸늘한 정서가 묵직하고 축축하게 적셔진다.

당신을 사랑했소,

어쩌면 사랑은 내 가슴속에서

아직 완전히 꺼지지 않았을지 모르오.

하지만 당신이 그로 인해 근심치 않기를

무엇으로도 당신을 슬프게 하고 싶지 않소.

당신을 사랑했소.

말없이, 기대 없이, 때로는 소심하게,

때로는 질투로 괴로워하면서

당신을 사랑했소,

진심으로 절실하게,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기를 바랄만큼.

-푸시킨 단편집 눈보라에서

사랑, 지독하게 조국을 사랑했었던 애국지사들, 모든 것 다 바쳐 사랑하고 사랑한 나라를 위하여 헌신했던 사람들, 그 쓸쓸하고 서글픈 음률에 문득, 홍범도 장군이 떠올려진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숨도 못 쉴만큼 울게 만들었던 죽어가던 의병들의 모습, 그 큰 아픔을 가슴에 묻고 다시 타오를 것이라고 외쳤던 동지들이 이들이었다.

봉오동전투, 청산리전투, 대승을 거두어 일본국에 두려움과 수치심을 심어주고 교전 당사국이 될 수 없었던 시절의 의병으로 민족의 자존심을 보여 주었던 대한민국 독립군 사령관, 부인과 자식들도 독립운동으로 다 잃고 이국땅에서 겪었던 어려움과 고난의 시간들을 어찌 먼 시선으로 바라보고 헤아릴 수 있으랴. 그런데 수십 년 지난 지금 홍범도 장군의 삶의 시간을 비틀어 바라보는 시선과 옥에 티 찾아내듯 흠집을 잡아 그들의 희생이 별것 아니라는듯한 천박한 말들이 으르내리는 상황이 미안하고 죄스럽고 암울하게 가슴에 저며 든다.

'올드 로망스' 후반부에 현악기와 목관악기를 뚫고 나오는 트럼펫사운드가 카자흐스탄에서 쓸쓸히 스러져간 노 영웅과 함께 했던 의병들의 진혼곡처럼 사무친다. 어찌 홍범도장군뿐이랴.

김훈 작가는 그의 산문집 허송세월에서 이렇게 말한다. “악기를 연주하거나 노래를 부르는 순간은 인간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악기를 연주하는 인간은 자신의 생명 앞으로 다가온 미래의 시간 위에서만 음과 선율을 불러낼 수 있다. 지나간 시간 위에서는 악기를 연주할 수 없다. 한 개의 음은 창세기의 새벽처럼 이 세상에 태어나고 또 소멸한다. 모든 악기들은 아직 당도하지 않았으나 곧 다가올 미래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악기는 살아있는 인간의 생명과 시간을 연결해서 시간을 지속된 흐름으로 흘러가게 하고 그 흐름 위에서 선율은 태어난다.”

옛사람들의 희생위에 우리는 진화하고 더 나아갈 수 있는 터전을 가질 수 있었다. 생명과 시간의 지속된 흐름으로 새로운 문화와 가치를 창조해 가며 아름다운 선율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세계로 나아가며 고귀한 우리의 소리를 들려주기도 하지만 늘 그렇듯이 한쪽의 일방적인 소리를 못견뎌하며 때론 불협화음과 아귀다툼을 일삼기도 한다. 그래서 소음이 되어 시끄럽게 울린다.

사람들은 또다시 노래를 하거나 악기를 연주하고 있을 것이다, 그 선율은 옳고 그름이 아니라 다름일 것이다. 지나간 시간속에 아름답게 희생하며 소멸된 시간의 선율에 자격도 없는 자들이 망상의 음표를 덧 칠을 하거나 불협화음을 덧 씌우지 않았으면 한다.

그러나 지금의 느끼는 아픔도 폭염도 소멸하고 또 다른 시간의 지속된 흐름으로 다시 아름다운 선율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기대를 품을 수 있어 상념에 끝에 이를 수 있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지독하고 무겁게 짓누르는 폭염이 곧 수천 년 지속되었던 찬바람에 소멸 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어본다. (솔향 김종태)

< 솔향 김종태 약력 >

픽모아문화관광뉴스 회장

동구, 대덕구축제위원회위원, 위원장

대전세종연구원/정보문화산업진흥원 위원

대전킥복싱연맹고문/ 스포츠공정위원

대전척수장애인협회 허브센터장

CMB대전방송위원, TRA미디어지사장

대전폴리텍대학홍보대사

`93대전엑스포동우회 간사

브레이크뉴스/원데일리뉴스 논설고문

前대전관광공사이사회의장

*네이버에 솔향 김종태 검색하면 더 많은 글 볼 수 있습니다.Solhyang Kim Jong-tae Wi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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