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 미끼

2025-12-02

옥스퍼드대 출판부는 매년 사회적 변화나 사람들의 관심사를 포착한 단어를 신조어로 정한다. 올해의 단어는 ‘분노 미끼’다. 이 말은 소셜 미디어에서 사용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단계를 넘어 분노나 불쾌감을 의도적으로 유도해 클릭·댓글 참여를 높이는 콘텐츠 전략이다. 지난해보다 사용 빈도가 3배 늘어난 ‘분노 미끼’(rage bate)가 소셜 미디어 시대의 어두운 단면을 가장 잘 표현했다는 것이 선정 배경이라고 한다.

지난해 ‘메타 플랫폼’의 연구에 따르면, 분노·공포 같이 부정적 감정을 유발하는 콘텐츠 공유율이 긍정적 콘텐츠보다 평균 32% 더 높았다. 분노를 미끼로 삼은 콘텐츠가 사용자 참여도를 높이고 더 많이 공유된다는 결론인 셈이다. 빠르고 통쾌한 말일수록 ‘좋아요’가 많아지고, 상대 비난에 가담하면 소속감이 커지는 것이 SNS가 분노를 키우는 방식이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분노→반응→확산→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이 분노 미끼 콘텐츠의 전형적인 특성이라고 분석한다. 양극화 불안과 경제 위기가 겹쳐진 현실, 알고리즘에 기반한 포털·영상 플랫폼 중심 구조도 분노 증폭의 원인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정치는 분노를 생산하고 유통하고 소비하는 힘이 가장 강력한 분야다. 지난 1월 윤석열의 첫 구속 직후 그의 지지자들이 집단 난입해 벌인 서울 서부지방법원 폭동 사건, 보수·극우 단체들이 주도한 반중 집회가 대표적이다. 이런 극단적 행동 뒤엔 ‘불법 구속’ ‘중국인 범죄 유입’ 같은 혐오 콘텐츠나 ‘부정선거’ 류의 가짜뉴스가 어김없이 작동했다. 공포·적대감을 의도적으로 자극한 분노 미끼 전략이 현실 정치에 깊숙하게 파고 들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특정 사건이 아니라도 정치 혐오가 온라인 댓글 여론을 지배하는 현상 역시 오래된 현실이다.

정치가 분노 미끼의 중심지가 된 것은 분노를 즉각 동원하기도, 감정적으로 집단적 소속감을 부여하기도 쉬운 그 특성 탓이다. 분노에 분노로 맞대응하며 지지층 결집만 몰두하는 정치를 하루가 멀다하고 목도하고 있지 않나. 분노를 동력 삼는 정치, 상품으로 만드는 세상의 가장 큰 피해자는 시민들이다. 옥스퍼드대 결정을 분노 미끼가 던지는 환영(幻影)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당부로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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